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의인(구원론) (문단 편집) ==== '의로움'의 개념 ==== >하느님의 의로움{{{-2 (의로우신 하느님)}}}은 구약성서에서 볼 수 있듯이 본디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원의{{{-2 (뜻)}}}와 권능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게 하는 데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진실함과 성실함이다. 달리 말하면, 하느님의 의로움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2 (인간)}}}과 맺으신 계약의 진실함과 계약 준수의 성실함을 가리키는데, 하느님의 진실함과 성실함으로 맺어지고 지켜지는 구원 계약을 뜻한다.[* (책 속 주석) 이 점에 대한 구체적 설명은 이영헌, "바오로의 의화론에 대한 성서적 고찰", 「신학전망」 154(2006), 2-34 특히 16-19참조.] >---- >-이영헌. 『바오로 신학의 기본사상』. 175쪽 가톨릭 성경과 개역개정에서 의(로움)으로 번역된 δικαιοσύνη(dikaiosynē)는 (특히 영어 번역 justice에서 연상하기 쉬운) 징벌적 정의만을 뜻하지 않는다. >Liddel & Scott의 대사전에서 dikē에서 파생된 형용사 [[https://stephanus.tlg.uci.edu/lsj/#eid=27766|dikaios]][* (발췌자 주석)δικαιοσύνη의 어원.]에 대한 뜻풀이는 대개 이러하다. (A) 사람의 경우에는, 관습(dikē)이나 규칙, 특히 사회 규범을 준수하거나, 신들이나 사람들에 대한 도리 또는 의무를 준수하는 걸 그리고 (B) 나중에는, 공평한, 공정한, 합법적인, 적법한, 정의로운, 올바른, 정당한, 마땅한, 적절한 등을 뜻하게도 된다. >---- >-플라톤. 『국가·政體』. 박종현 번역. 개정 증보판 765쪽[* 박종현 교수는 dikaiosynē의 번역어로 '올바름'을 미는데, 이를 '정의'로 번역하는 것은 중역의 폐해라고 주장한다. 한국어 성경 중에서는 공동번역성서가 박종현 교수와 비슷하게 dikaios 등을 번역할 때 '올바름'의 어간을 사용한다.] 뿐만 아니라, [[칠십인역]]에서 dikaiosynē 등으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צַדִּ֖יק류의 단어도 비슷한 뜻을 가진다. >성경, 특히 구약성경에서 정의를 지칭하는 용어인 '체데크'{{{-2 (''tsedeq'')}}} 또는 '츠다카'{{{-2 (''tsedaqat'')}}}는 어떤 규범에 들어맞는 것을 지칭한다. 그러나 동시에 이 개념은 공동체에 대한 충실함, 질서에 부합함, 올바름 등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처럼 성경에서는 규범에 적합한 그 무엇이라는 의미에서 '올바른' 균형들, '올바른' 수단들에 대해 말하고 있다. 따라서 하느님의 율법에 따라 행하는 사람을 '차딕'{{{-2 (''tsaddiq'')}}}, 즉 '의로운 이' 또는 '올바른 자'라고 불렀다. 이러한 의미에서 '츠다카'{{{-2 (''tsedaqah'')}}}란 개념은 '미쉬파트'{{{-2 (審判[* (발췌자 주석) 심판], ''mishpat'')}}}와 연관된 개념으로 드러난다.[[LXX| 『70인 역 성경』{{{-2 (LXX)}}}]]은 이 '츠다카'를 '디카이오쉬네'{{{-2 (正義, ''dikaiosyne'')}}}로, '미쉬파트'{{{-2 (''mishpat'')}}}를 '크리시스'{{{-2 (審判, ''crisis'')}}}로 번역하고 있다. >---- >-Jose Antonio Sayes. 『은총론』. 윤주현 번역. 290-291쪽 즉 성경에서 말하는 '의로움'은 기본적으로 주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계약 관계의 진실함, 성실함을 뜻한다. 이 이스라엘에 주님은 "야생 올리브 나무 가지를 접붙였"[* 로마서 11장 17절(공동번역)]으며 이를 통해 구약의 백성과 맺은 계약을 성실히 준수하면서도, 보편적인 인류를 구원하신 것이다. 신약의 이스라엘(=교회)의 관점에서 보자면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된다'는 명제는 이미 그 자체로 '율법에 따른 행위와 상관없이'를 함축하는데, '의롭다는 인정'은 희랍어로 풀이하자면 '계약 관계에 충실하다고 인정'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곧 믿음을 통하여 '율법의 의미(계약에의 충실)'가 충족된다는 것이고, 더 정확히 말해서 믿음이야말로 이스라엘이 계약에 충실하기 위해 요구되는 율법이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때로는 율법에 대해 너무 가혹해보일 수도 있는 바울로의 진술은 결코 율법을[* 바울로가 율법을 비판할 때, 강조점은 율법보다는 율법 행위에 있고, 더 정확히 말해서 '율법 행위로 구원 받으려는 태도'를 말한다. 그렇기에 마치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바울로 서간과 야고보서의 진술도 함께 긍정할 수 있는 것이다. 야고보서 2장 17절이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2 (공동번역)}}}이라고 할 때 '행동'은 바울로의 언어로 말하자면 '사랑'이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습니다."'''{{{-2 (로마서 13장 8절, 공동번역)}}} '''"산을 옮길 만한 완전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2 (고린토1서 13장 2절, 공동번역)}}}] 무효가 되게 하자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율법을 굳게 세우"[* 로마서 3장 31절(가톨릭 성경; 개역개정)]자는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