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의제(초) (문단 편집) == 사후 == 다행히 강 건너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이 이를 보고는 밤중 몰래 초 의제의 시신을 건져내서 장례를 치렀다. 역사가들 사이에서, 초 의제 시해[* 항우가 천자를 죽이는 데에 동원된 왕이 세 명씩이나 되었다는 점에서, 모략에 의한 단순 암살이 아니라 실제로 대규모 전투가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는 경우도 있다.] 사건은 '''[[사망 플래그|항우의 결정적 몰락 원인]]'''으로 꼽히곤 한다. [[신하]]가 [[황제]]를 시해하는 [[패륜]] 행위 때문에 [[항우]]는 그 후로 [[제후]]들에게서 믿음을 얻지 못한다. 어떤 제후에게도 진심어린 충성을 얻지 못하게 되었기에 툭하면 제후들이 편을 바꿔타거나,[* 심지어 의제 시해에 가담했던 구강왕 [[영포]]마저 유방에게 투항한다.] 건성으로 지원하는 것에 골치를 썩여야 했다. 이런 악영향은 항우에겐 어마어마한 타격이었다. 초 의제가 [[이세황제]]처럼 답이 없는 [[폭군]]이라 죽인 것도 아니고 멀쩡한 황제를 명분도 없이 그냥 자기 눈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부하들을 보내 죽였으니 이런 말도 안 되는 대역죄가 벌어진 [[중국 대륙]]이 얼마나 큰 충격에 휩싸였을지 알만하다. 당장 [[진(영성)|진나라]]의 간신, 역신이자 중국 역사상 최초의 황제시해자 [[조고]]가 자기가 모시던 [[이세황제]]를 시해한 사건이 아직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인데 항우가 조고처럼 자기가 모시던 의제를 죽이면서 항우는 더 이상 천하를 구한 영웅이 아니라 [[조고]]와 똑같은 [[역적]], 황제시해자로 낙인찍혔을 것이다. 항우의 저러한 황제 시해 행위는 천하에 대놓고 "나는 천하를 망친 진나라의 간신, 역적, 황제시해자 [[조고]]와 다를 게 없는 놈이다."라고 고래고래 소리지리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는 행위였다. 자기들이 조고의 폭정 때문에 진나라에 반기를 든 것인데 조고와 똑같은 짓을 했으니 이때부터 항우는 조고처럼 토벌되어야 하는 극악무도한 [[역적]]이 되었고 제후들에게는 황제를 시해한 천하의 역적 항우를 죽여도 된다는 좋은 명분을 준 것이다. 그래봐야 초나라 안에서 벌어진 일인데 왜 다른 나라 제후들이 남의 나라 일을 신경쓰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초 의제는 말그대로 초나라를 대표하는 군주이고 다른 나라에 주는 소속감은 미미했다. 이후 한나라만 해도 의제 살해범인 [[오예]]와 [[영포]]가 평범하게 부귀영화를 누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한나라가 외국이기 때문이고 항우는 그 초나라에서, 초나라를 일으키겠다고 일어난 사람이며, 아무리 명목상 데려다 앉혀놓은 황제라 해도 일단은 섬겨야 하는 것이 [[신하]]된 도리였다. 그 나라의 황제를 그 나라의 신하가 죽였으니 다른 나라 사람이라고 해도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항우는 이전에도 초 의제를 죽이기 전에 이미 항복한 진왕 [[영자영]]을 의제의 허락도 받지 않고 멋대로 죽였다. ~~[[킹슬레이어]]~~] 그리고 다른 나라라지만 어쨌건 일개 제후 따위에 불과한 각 나라의 제후들 입장에서는 바지사장이라지만 초 의'''제'''보다는 낮았으니 속마음은 몰라도 어쨌든간에 상하관계다. 명분상으로나 실리적으로나 제후들이 항우는 초 의제를 죽인 것에 관심을 갖는건 말이 된다. 게다가 항우가 아버지처럼 따르는 그 [[범증]]이 의제가 시해당했다는 보고를 받고 "의제는 반진의 상징인데 그런 분을 죽였으니 제후들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라며 경악할 정도였으니 항우의 의제 시해는 [[신하]]가 [[임금]]을 살해한 정도를 넘어 반진이라는 거병 대의마저 거스른 패악무도한 행위였다. 일단 항우의 기존 부하들은 대부분이 항우가 그런 인간인줄 진작부터 알고 있었거나 그의 용맹함을 보고 모여든 자들이라, 의제 시해를 이유로 당장 실망하는 부하는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부하들에게도 아무 영향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그 사례로는 [[영포]]가 있는데, 의제 시해 전까지만 해도 [[신안대학살]] 등의 악행을 일선에서 수행했던 영포는 이때부터 항우와 유방 사이에서 간을 보기 시작한다.[* 정확히는 의제 시해 사건이 있기 전, 영토 분봉 때부터 항우에게 불만이 많았다. 그가 항우의 직속 부하들 중 유일하게 왕작에 오른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그러던 중에 유방이 파견한 수하가 '''"한나라가 져서 망한다고 칩시다. 그런다고 초나라가 잘 돌아갈 리 없지 않습니까. 항우는 의제를 시해한 역적이오. 천하가 항우를 순순히 따르며 두고볼 것 같소?'''"라고 지적하자 반박하지 못했고, 이후 한나라로 오면 구강 땅의 통치권을 완전히 보장해줄 수 있다고 제안하자 한군으로 귀순하고 항우를 공격했다. 영포뿐만이 아니라 서초패왕의 부하 장수 중에서 한왕 유방이 쳐들어오자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투항한 경우도 있다. 죄없는 황제를 시해한 흉악한 역적 서초패왕이 무서워서 억지로 섬기고 있었지만 그 황제의 원수를 갚기 위한 정의로운 군대를 이끄는 유방이 오자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명분의 차이를 극대화 하기 위해, 한고제는 출병 전 의제를 추모하는 의식을 치르기도 하였다. 이렇게 명분이 떨어진 상황에서 그나마 영토 분봉이라도 후하게 해주었다면 세력을 강하게 유지하는 것은 가능했을 터였다.[* 영토 분봉은 당시 제후들이 얻을 수 있는 실리 그 자체였다. [[장량(전한)|장량]]도 유방에게 지적하기를 "사람들이 지금 따르는 것은 순전히 땅을 얻기 위해서인데, 그걸 미리 줘버리면 모조리 항우에게 붙을 것입니다."라고 했으며, 젓가락 설교를 통해 [[역이기]]의 육국 부활을 저지했다. [[왕릉(전한)|왕릉]] 역시 나중에 비슷한 말을 한다. 당시에 유방 쪽 세력은 의제의 복수를 위해 항우에게 저항할 것을 부르짖기도 했으나 어디까지나 명분이며, 영토 분봉 문제가 실리 중의 실리였다.] [[항우의 18제후왕 분봉|하지만 항우는 그런 유리한 면마저 스스로 버린다.]] 항우의 지랄맞은 성품과 졸렬함은 익히 알려져 있었다. 항우는 결국 실리도 명분도 잃고 임금을 시해한 역적으로 전락하여 천하에 혼자만 남아 싸우다가 패망하는 상황을 맞이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