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의제(초) (문단 편집) == 기타 == 훗날 [[위(삼국시대)|조위]]의 황제 [[조모(삼국지)|조모]]도 초 의제처럼 신하 [[사마소]]에게 대낮에 살해당하면서 역사는 반복되었다. 당연히 사마소는 당대에 천하의 역적 [[조고]], [[항우]]같은 놈으로 취급받았을 것이다.[* 다만 당대 중국인들이나 군벌들 입장에선 위나라의 조씨 일족 역시 400년이나 이어진 한나라를 마지막 황제 [[유협]]을 무력을 통한 협박을 통해 끌어내리고 선양받는 식으로 황위를 찬탈하여 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조모 개인의 죽음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했어도 조씨 황실이 박살나는 것을 측은하게 여기는 군벌이나 사람들도 적었고 그저 업보라고 여긴 사람들이 더 많았다. 반면 항우는 아무 잘못도 없는 초 의제를 죽였으니 욕을 먹었던 것이다.] [[진명제]]가 재상 [[왕도(동진)|왕도]]에게 조상들이 어떻게 나라를 얻었냐고 했을 때 그가 [[고평릉 사변]] 당시 조상과 그 일가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제거한 일과 [[공손연]]을 제거할 때 대거 살육을 행한 일, 그리고 '''조모를 시해한 일'''을 말하자 진명제는 "만약 공의 말대로라면 진(晉)의 제업이 어찌 길고 멀겠는가!" 라고 한탄하며 부끄러워 책에 얼굴을 묻었다고 한다. [[조선]]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이 사람을 기리기 위해 썼다. 물론 이는 항우의 의제 시해를 [[세조(조선)|세조]]가 [[단종(조선)|단종]]을 폐위하고 사사한 일에 비유한 것이다. [[무오사화|이로 인해 결국 화를 입었다.]] [[조선]] 중기의 의병장 [[정문부]]도 초 의제를 기리기 위한 시를 썼다가 역모 혐의에 몰려 사망하기도 했다. 그만큼 초 의제는 군주의 역린을 거스르는 주제였던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