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의종(고려) (문단 편집) == [[묘호]], [[시호]], [[존호]] == 공식 묘호는 '의종'(毅宗)이다. 본디 [[동경(고려)|동경]]으로 쫓겨나 참혹하게 시해당한 의종은 묘호도 시호도 없었으며 제사조차 모셔지지도 않았다. 그를 불쌍하게 여긴 백성 필인이 작은 [[무덤]]을 만들어 놓기는 했다. 이를 고려 내 [[중방]] 반대파가 문제삼자 부랴부랴 올린 묘호가 바로 '의종'이다. 뒤늦게야 천자의 대우를 받은 셈이다. 시호는 '강과장효대왕'(剛果莊孝大王). 원래 시호는 동생 명종(제19대)이 올린 '장효대왕'(莊孝大王)으로 꽤나 다급하게 올려진 시호다. 후손인 고종(제23대)이 '강과'를 추가했다. 제18대 의종 대부터 제24대 원종까지 고려 국왕들의 시호가 크게 줄어드는데 이는 무신정변이 터지고, 몽골과의 전쟁이 시작되어 국가가 혼란스러워진 것과 왕권 추락 등의 원인이 있다. 단 제22대 강종은 예외로 그의 아들인 고종과 손자인 원종이 계속 추가했다. 생전 의종은 자신에게 표문을 지어 스스로를 '만승'(萬乘), '천'(天)으로 표현했고, 일본이 자신을 '황제'라 부른다며 자찬했다. 신하들로부터 '대평호문지주'(大平好文之主)라는 존호를 받은 적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