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강철 (문단 편집) == 피칭 스타일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이강철/52e8ec121dc1d32f54fb.gif|width=100%]]}}} || [[선동열]]의 별명이 무등산 폭격기였다면, 이강철의 별명은 "무등산 핵잠수함"이었다. 특유의 물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투구폼으로 당시 한국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언더핸드 스로|언더핸드]] 투수로 유명했다. 전성기 시절 빠르지 않은 130km/h 중후반대의 구속을 가지고 있었지만, 당시 해설자들의 단골 레퍼토리가 '이강철의 속구가 속도는 느리지만 우완 정통파 투수의 140km/h대 패스트볼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을 정도로 속도에 비해 위력적인 속구를 뿌렸다. 이강철의 주무기는 떠오르는 패스트볼이었는데, 낮게 깔려서 오다가 대략 포수 머리 근처 또는 약간 높은 정도의 범위에서 형성되었다. 당시에는 이 볼이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제대로 들어가면 타자는 맞히기도 어려운 마구급 구질이었지만, 반대로 홈런을 맞기도 쉬웠다. 또한 언더핸드답게 공 끝의 움직임이 상당히 변화무쌍했고, 커브와 슬라이더는 당대에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았던 구질들이었다. 특히 이강철의 주무기였던 슬라이더는 남아있는 영상을 보면 살짝 떠오르면서 우타자 바깥쪽이나 좌타자 몸쪽으로 예리하게 휘어져 들어가는데, 이강철이 선발로 오래 기용될 수 있었던 이유도 이 슬라이더가 당시 좌타자들에게 잘 먹혀 들어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외로 언더핸드 투수들의 주무기로 많이 이용되는 싱커는 별로 안 던졌는데, 많이 맞아나가서인지 당시 배터리를 이루던 [[장채근]]과의 상의 끝에 봉인했다고 한다. [[http://news.naver.com/main/ranking/read.nhn?mid=etc&sid1=111&date=20140613&rankingSectionId=107&rankingType=popular_day&rankingSeq=8&oid=456&aid=0000000694|#]] 사실 이강철의 플레이 스타일이 삼진을 잡는 데 맞춰져 있어 땅볼 유도에 효과를 보이는 싱커를 쓸 필요는 크게 없었다. 그래도 별로 안 던졌다 뿐이지 주력 구종 중 하나였는데, 주로 삼진을 잡기 힘든 선수를 처리하거나 투구 패턴에 변화를 주기 위해, 혹은 체력 소모를 막기 위해 쓰곤 했다. 싱커 자체도 꽤나 훌륭했던지라 당시에도 최고의 싱커볼 투수로 정평이 나 있었다. 여기에 이강철은 완급조절에 있어서도 리그 수준급으로, 다른 타이거즈 에이스들에 비해 떨어지는 구위를 완급조절을 통해 커버하는 영리한 투구를 보여주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구위가 떨어지는 나이에도 선수로 뛰며 롱런할 수 있었다. 언더핸드 투수지만 땅볼을 유도하진 않았고, 슬라이더와 패스트볼의 변화각과 완급 조절을 이용해서 삼진을 많이 잡아내던 투수이기도 했다. 언더핸드 투수 중 이닝 대비 탈삼진율이 매우 높은 게 그 증거. 그래서 [[선동열]], [[정민철]], [[주형광]]처럼 괴물 같은 탈삼진 능력을 가진 투수들이 리그를 호령하던 1990년대에도 심심찮게 탈삼진 순위에 이름을 올리던 투수였고, 타이거즈 프랜차이즈 중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갖고 있는 [[송진우(야구)|송진우]]보다 앞서 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을 세웠다는 것은 특기할 점이다.[* 송진우가 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을 뺏긴 했지만 이는 송진우가 이례적으로 롱런했기 때문이다. 둘은 같은 1989년에 데뷔했고, 송진우가 약 5년 더 뛰었다. 이강철이 송진우와 비슷한 커리어를 썼다면 지금까지도 통산 최다 탈삼진 기록 소유자는 이강철이었을 것이다. 단, 송진우는 주민등록이 잘못되어 학교를 1년 늦게 들어가고, 실업야구생활로 프로데뷔도 1년 늦은 케이스로 실제로는 음력 1964년생(양력 1965년 1월)이라고 본인이 주장하였고, 어릴때는 빠른 1966으로 1965년생들과 친구였으나 프로에 와서 자기 사연을 밝히고 1964년생, 빠른 1965년생들과 친구를 했다고 한다. 즉 이강철보다 원래는 2년 위이며, 주민등록 문제를 인정하지 않아도 실업야구 경력때문에 여전히 1년 선배고 이강철도 선배로 대우한다. 그렇기에 송진우가 제 나이에 프로데뷔했다는 가정을 하면 이강철이 롱런했다는 가정에도 송진우가 기록에서 우위에 선다.] 다만 당시 대표적 홈런 공장장 중 하나가 이강철이었데, 통산 218개의 피홈런을 맞아 통산 3위에 올라와 있다. 투고타저 시기에 주로 활동했음에도 홈런공장장이라는 별명이 있었을 정도. 하지만 언더핸드는 투구폼 특성상 배팅볼로 던져주는 각도와 비슷한데다 구속도 다른 폼에 비해 느리다 보니 피홈런에 매우 취약하다. 이 때문에 이강철에 앞선 언더핸드 에이스였던 [[한희민]] 역시 8시즌 동안 104홈런을 맞아 홈런 공장장이라는 오명이 붙곤 했다. 더군다나 유독 이강철의 피홈런은 임팩트 있는 경우가 많아 더욱 그 이미지가 지워지지 않는 편이다. [[김기태(1969)|김기태]]와 [[이승엽]]의 프로 커리어 첫 홈런을 허용했고, [[KBO 준플레이오프/2004년|2004년 준플레이오프]]에서 [[홍성흔]]에게 만루홈런을 맞고 나서는 [[빵 사건]]이 일어났다. 다만 피홈런이 많은 것은 그만큼 오래 뛰고 많이 던질 기회를 받았기에 그런 측면도 있다. 실제 이강철은 통산 이닝도 2204⅔이닝으로 KBO리그 3위이다. 간단히 말해 많이 던졌으니 그만큼 홈런 맞는 빈도수도 많았던 것이다. KBO 최다승, 최다 이닝 투수인 [[송진우(야구)|송진우]]가 최다패, 최다 피홈런 투수인 것과 비슷한 이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