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경수 (문단 편집) === 이경수 파동 === [[http://legacy.www.hani.co.kr/section-006003000/2003/01/p006003000200301291624855.html|이경수 파동에 대한 요약기사.]] 이경수의 [[V-리그]] 입단 과정은 [[대한민국]] 배구 [[드래프트]]의 [[흑역사]]와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자세한 사항은 해당기사를 읽어보는 편이 좋다. 본래 이경수는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G화재]]에서 뛰고 싶어했지만, 당시 드래프트 상황으로는 무조건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으로 가야 했고 드래프트 합의 대상인 신인 계약금 제한 때문에 이경수는 드래프트를 수용한다면 계약금 포함해 5년 5억원이라는 네임밸류와 실력에 비하면 헐값에 입단하게 될 상황이었다. 실제로 아버지 이재원 씨와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했으며, [[한양대학교]] 대학원 체육교육과에 입학해 배구 코트를 떠날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당시 드래프트가 된다면 정말로 배구를 그만두고 체육 교사로 진로를 수정했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그는 이에 대해서는 확고한 입장이었다. 하지만 드래프트제에 대한 합의 결속력이 약했기 때문에 자유계약제로 돌아설 것으로 판단한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G화재]]는 역시나 이 대어급 선수로 지원금을 타낼 계획이었던 [[한양대학교]]의 [[송만덕]] 감독과 밀실 협의 끝에, 16억 원(학교 지원금 4억원 포함)에 이경수를 영입했다. 이후 협회의 드래프트 방침 고수가 발표됐지만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G화재]]는 그 동안 빼앗겨 온 선수들을 생각하면 이경수를 도저히 손을 뗄 수가 없었고, 결국 그를 영입하며 파문이 시작됐다. 이 때문에 뒤통수를 맞은 구단들이 반발하여 V-리그 출범에 문제가 생길 상황이 되었다. 다만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G화재]]는 사안을 최대한 원만하게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송만덕]] 감독과 오랜 유대를 가지고 있던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현대캐피탈]]은 형식적인 반발에 그쳤다. 이러한 흐름을 통해 배구협회의 중재안은 '''일단 이경수가 드래프트에 참가해 거취를 정한 다음,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G화재]]가 그 팀과의 협상을 통해 이경수를 트레이드로 데려가도록 길을 마련한다'''로 합의안을 정하고 가장 거세게 반발하던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과 합의할 것을 제안했는데... '''갑작스럽게 [[신치용]] 감독과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삼성화재]]가 이의를 제기했다.''' [[신치용]] 감독은 당시 드래프트제의 원칙과 취지, 근간을 해치는 타협안이므로 동의하지 못하겠다는 주장을 하고 이와 더불어 이경수의 선수 자격 박탈을 요구했다.~~다른 놈도 아니고 그 시절 [[신치용]]의 입에서 원칙과 근간이란 말이 나오다니 가증스럽기만 하다 [[신치용]]도 선수 많이 빼앗아 갔으면서~~ 이에 타 구단들은 그러한 [[신치용]]의 발언에 반발했고, 이경수 본인도 잘못하다간 [[2002 부산 아시안 게임|부산 아시안 게임]] 출전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서 일이 심각해진다. 이 문제는 결국 법정까지 끌고 간 끝에 다음과 같은 판결이 내려진다. >'''1. 200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G화재]]가 아닌 구단이 이경수를 지명할 경우에, 해당구단은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G화재]]에 이경수를 내주는 대신 신인 1라운드 지명권을 받게 된다.''' >'''2.그리고 그 '선 드래프트 ~ 후 협상' 의 보증은 협회장이 선다.''' 그런데 이 합의안은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의 반발로 처리가 지연되었고[* 이 와중에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 [[한장석]] 감독(야구선수 [[한승혁]]의 아버지)이 박석윤에게 물컵을 던져 상처를 입힌 일에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고, 그는 10년 넘게 배구판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 분위기에 편승한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삼성화재]],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현대캐피탈]]의 단장은 더 이상 신인 선수 수급을 늦출 수 없으니 드래프트를 접고 자유계약으로 가자고 선언해서 2003 드래프트는 결렬됐다. 이에 따라 [[이형두]], [[고희진]], [[권영민(배구)|권영민]], [[윤봉우]], [[장광균]] 등 99, 00학번 선수들(+ 01학번이지만 [[신선호]]처럼 3학년 중퇴라는 방식으로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현대캐피탈]]이 입도선매한 [[이선규(배구)|이선규]]와, 고졸로 입단한 [[박철우(배구)|박철우]]까지 포함)은 자유계약으로 소속 팀을 찾게 된다.[* 이들 중 가장 대어였던 고졸 신인 [[박철우(배구)|박철우]]는 결국 당시 배구단 단장들 간의 합의 내용이었던 드래프트 신인 계약금 상한선인 5억원을 뛰어넘는 총액 8억 원을 받고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현대캐피탈]]에 입단했다.] [[육성선수|수련선수]]로 많이 알려졌던 리베로 오정록도 사실은 동 시기에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얼마 후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현대캐피탈]]에 자유계약으로 입단한 케이스라 수련선수로 보기 어려운 것도 이 때문이다. 이 타격으로 결국 피해를 본 건 대학 선수들이었고, [[V-리그]] 출범에 드래프트가 필수 조건이었던 배구협회와 구단들의 결정으로 결국 1년 8개월 여만에 이경수가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것으로 최종 결정을 보고 합의 사항을 이행해 이경수는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G화재]]가 가진 2005년 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에 양도하는 조건으로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G화재]]의 선수가 된다. 다행히 [[2002 부산 아시안 게임|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로 병역 특례까지 받아 놓은 상태였다. 대신 기초 군사훈련을 받게 되어 리그에는 훈련을 마친 후 합류했다. 이 파동의 여파로 인해 이경수를 양도한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이 2시즌 후 드래프트가 부활했을 때 지명한 1, 2라운더 선수는 [[신영수(배구)|신영수]]와 김형우였다. 그리고 고등학교와 대학교 3년 후배인 신영수가 [[인천 대한항공 점보스|대한항공]]의 주포가 되었으니..... 이 때의 이경수 파동은 정말로 [[대한민국]] 배구의 역사를 바꿨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후 대한항공은 배구의 명문가가 되었고 지금도 다른 팀에 풍부한 윙자원을 바탕으로 황금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반면 [[의정부 KB손해보험 스타즈|LIG]]는 이경수를 품에 안는 데 성공한 대신 제대로 된 전력 보강을 하지 못하면서 후유증을 톡톡히 앓고 있고, 프로 출범 후에는 KB로 간판을 바꿀 때까지 단 3번의 봄 배구[* 그것도 원년(2005) 시즌은 시범경기나 마찬가지였고, 2005-06 시즌은 대한항공이 외국인 선수 문제로 빌빌거린 덕을 봤고, 2010-11 시즌은 준 플레이오프 덕에 간신히 4위로 올라간 것이었으니 사실상 제대로 된 봄 배구 시즌은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에 그쳤다. 이후 봄배구는 케이타가 들어왔던 2020-2021시즌이었다. 그리고, 초특급 대학 유망주와 그 유망주를 가지고 돈을 더 받으려던 대학교와 V-리그 간 선수 이권 싸움은 2년 뒤 [[김요한(배구)|김요한]], [[문성민]] 사태로 그대로 반복되고 말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