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관술 (문단 편집) == 울산 향토사회의 이관술 설화 == 향토사회에 이관술 관련 설화가 전해져 내려와 향토사학자들의 연구대상이다. 이일환에 따르면 이관술은 "선바위가 있는 울산 입압마을 출신의 전설적 인물"이다.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padding: 14px; border: 2px #cccccc dashed; border-left: 5px solid" 해방 후 울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이들 중에는 이관술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일정 때 이관술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축지법을 써서 하룻밤에 백리 길을 달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기 때문이다. 선바위 아래 급류를 헤엄쳐 건너 바위절벽 동굴에 돼지머리를 갖다 두었다는 이야기와 함께 일경의 삼엄한 감시를 뚫고 자유자재로 돌아다닌 이관술의 전설은 축지법을 썼다는 과장 외에는 대개 사실이기도 했다. ---- {{{#!wiki style="text-align: right; margin-top: -20px" 안재성, 이관술 1902-1950, 2006}}}}}} 배성동 작가가 수집한 퇴역 빨치산 증언: "보급투쟁에 나가게 되면 반동 지주들을 건들기 마련인데 이관술 집이 있는 선바위마을은 건들지 않았어요. 물론 같이 간 동지들도 잘 알고 있었지만 이관술 하면 물밑 50리를 가고 축지법으로 산을 넘는다는 영웅 아닙니까?" 울산 사람들이 이관술을 기리는 명문을 대곡천 백보반석에 새겼다는 이야기(현재는 수몰된 상태). 그리고 빗자루 설화가 있는데 정봉진 작가의 판화로 나왔다. [[파일:정봉진선바위.jpg]]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padding: 14px; border: 2px #cccccc dashed; border-left: 5px solid" 3개월의 보석기간이 끝나가고 있었다. 여전히 태연하게 요양하고 있던 이관술이었지만 병보석을 마친 뒤 형무소로 다시 잡혀갈 생각이 없었다. 주변에서 눈치채지 못하도록 날을 잡아 도주할 계획을 짜게 된다. 그리고 병보석이 끝나기 직전 결행한다. 달이 뜨지 않아 칠흑처럼 어두운 밤 집 뒤편 대나무 숲을 통해 아주 간단히 짐을 꾸려 탈출을 감행했다. 다음 날 아침 이관술 집 앞에 보초 서듯 지키던 주재소 순사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온 동네에 비상이 걸렸고, 경찰들은 이관술이 도주한 행방을 찾느라 난리가 났다. 그러나 이관술은 도피한 경로도 흔적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감쪽같이 사라졌다. 반대로 어떻게 귀신처럼 도주했는지 여러 소문만 무성했다. 그중 하나가 ‘빗자루 전설’이다. 이관술이 사라진 날 밤에 망성 쪽 태화강 위로 빗자루 같은 것이 떠서 건너는 것을 봤다는 목격담이다. 아니면 선바위 뒤쪽 야산 위로 훌쩍 날듯이 넘어가는 것을 봤다는 목격담도 있었다. 이런 것들이 묶여서 이관술의 탈주는 홍길동 같은 전설처럼 부풀려지기도 했다. ---- {{{#!wiki style="text-align: right; margin-top: -20px" 배문석, 일제강점기 후반부를 뒤흔든 항일 독립운동가 학암 이관술, 202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