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관술 (문단 편집) == 오해와 진실 == Q. 조선인민공화국이란 무엇인가? A. 한겨레가 [[https://n.news.naver.com/article/028/0002620559?sid=103|임경석의 역사극장]]을 내보낸 후 댓글을 보면 예기치 못하게도 [[조선인민공화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을 구분하지 못하고 조선인민공화국 선전부장 경력을 문제삼는 댓글이 대부분이다. 어서 빨리 [[조선인민공화국]] 문서로 가서 조선인민공화국이 무엇이고 조선인민공화국 각료가 누구이고 조선인민공화국 각료 중 대한민국 건국훈장을 받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보길 바람. Q. 이관술은 남로당 간부였다? A. 미군정의 수배령이 1946년 5월 15일, 이관술 체포가 7월 6일, 남로당 창당은 11월 23일이다. 남로당 활동을 할 수 없었다. Q. 이관술의 국적은? A. 대한민국에만 있었고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다 죽었으니 본래 대한민국 국민이었다. 진실화해위원회에서 2010년 진실규명도 하고 사법부가 2015년 국가배상판결도 내린 정상적인 대한민국 국민이다. Q. 이관술은 노덕술에게 고문당해 세 번 기절했다? A. 몇 번 기절했는지는 이관술 회고록과 인터뷰에 안 나와 있고 관련 증언도 없기 때문에 당연히 알 수 없다. [[안재성(작가)|안재성]]이 <이관술>, <이현상 평전>, <박헌영 평전>등에서 항상 이관술이 세 번 기절했다고 쓰는데 안재성 평전의 소설같은 면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소설 <남로당>의 다음 구절을 안재성은 세 번 기절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그런데 다른 고문 피해자의 증언을 보면 고문으로 피를 토할 지경이 되면 하루에도 수도 없이 자주 기절한다는데 피를 토할 정도로 고문받은 이관술이 겨우 세 번 기절했을 리는 없다.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padding: 14px; border: 2px #cccccc dashed; border-left: 5px solid" 이관술은 몇 번 체포되고 어떤 혹독한 고문을 받아도 전향하지 않았다. 일제시대 고문왕으로 알려진 노덕술이란 경찰관이 있었는데 그의 손에 걸리기만 하면 어떤 애국지사도 배겨내지 못했다. 그런데 이관술은 노덕술의 손에 세 번 걸려 세 번 죽었다가 네 번 되살아나는데도 전향을 하지 않았다. 따라서 항일운동을 하다가 왜경에 잡혀 그들의 고문을 못 이겨 전향한 사람들에게 이관술은 눈부신 존재였다. ---- {{{#!wiki style="text-align: right; margin-top: -20px" [[이병주]], 남로당}}}}}} Q. 유언 "조선 민족 만세"의 의미? A. 1950년의 이관술 입장에서는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 하나를 고르며 분단을 인정하는 유언을 남길 수 없었던 것이다. 이관술 연구자들은 이관술이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것을 보여주는 대답이라고 해석한다. 죽음을 눈 앞에 두었음에도 짧은 시간 내에 어느 한 체제 편을 들지 않을 수 있는 천재적인 대답을 고른 감탄스러운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