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관우 (문단 편집) === 프로 데뷔 이전 === [[한양공고]]에 다녔을 때 청소년 국가대표팀 시절부터 패스가 좋은 선수로 유명해서 1996년 [[AFC U-19 축구 선수권 대회]]([[대한민국]]에서 열린 대회로 우승), [[1997년 FIFA U-20 월드컵]] 대회에도 참가했다. 다만, 이 대회에서 [[브라질]]에게 3-10[* 당시 최다 실점 패배 기록을 수립하면서 일부 외신이 우리나라 경기력을 비판하는 기사를 냈는데, 며칠 후 벨기에도 [[호나우디뉴]] 등이 이끄는 브라질에 0-10으로 그나마 3골이라도 넣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그 쪽은 한 골도 못 넣고 제대로 대패하면서 '''기록을 경신'''하게 된다. 이쯤 되자, 외신도 논점을 바꾸어 브라질전서 골을 기록한 이관우를 '''아시아의 영웅'''이라 추켜세우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프랑스]]에게 2-4로 참패하며 1무 2패[* [[남아프리카 공화국]]과는 비겼다.]로 탈락,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좋지 못한 모습을 보여서 일반 축구팬들에게는 특별히 좋은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특히나 남아공전에서 공격수 3명에 골키퍼 1명이라는 결정적인 기회를 후반 막판에 잡았는데 드리블 하던 이관우가 양 옆에 동료에게 패스 해다면 100 프로 골이였을텐데 자기가 무리하게 해결 하려다 슛이 골키퍼를 막고 아웃되며 기회를 놓친다. 당시 인터넷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지금이라면 선수 생활 못 할 정도로 욕을 먹었을 거다. [* 결국 한국이 탈락이 확정 된 이후에도 바로 귀국하지 못 하고 말레이시아 현지에서 일주일 후에 고국으로 돌아온다. 당시 국민들에 비난이 많아 주위에서 비난이 조금이나마 가라 않을 때까지 안 오는게 좋을 것 같다고 했고 이관우도 이에 따른다.] [* 그래도 이관우는 [[브라질]]을 상대로 멋진 골을 넣어서 어느 정도 인상을 남겼다. 또 당시 [[대한민국]] 청대는 공격일변도의 팀이라 수비에서 탈탈 털리긴 했지만 공격적으로는 어느정도 위력적인 모습을 보여주었고, 팀의 에이스였던 이관우는 화려한 공격력으로 주목을 끌었다. 하지만 2010년대 초반, [[베스트 일레븐]]과 [[인터뷰]]에서 이때를 잊지 못한다고 10년도 더 넘어서도 아직도 꿈에서 브라질전 실점하는 게 나온다고 이관우 본인에게도 처절하게 나쁜 기억을 더 남겼다.] 뭐 당시 청소년 대표팀으로 뛰던 연령대 선수들이 훗날 월드 슈퍼 스타의 반열에 오르는 [[티에리 앙리]], [[다비드 트레제게]], [[미카엘 실베스트르]] 등이 있었기에 그렇다 쳐도, [[브라질]]에게는 너무 참패했고, 가장 만만한 남아공전 [[무승부]]가 두고두고 아쉬웠다. 남아공이라도 이겼더라면 16강을 노릴 법했기에 이때, [[브라질]]은 한국 말고도 프랑스를 3-0, 남아공을 2-0으로 이기면서 조예선 3전 전승, 15득점 3실점을 기록했는데, 그나마 한국은 3골이라도 넣었다. 이 대회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3골을 넣은 팀은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그러나 실점을 더 크게 내주고 졌기 때문에 놀림감이 되는가 했지만, 16강전에서 [[브라질]]이 [[벨기에]]를 10-0으로 이기면서 한국보다 더한 참패를 당했다. 이 15골은 현재까지도 피파 주최 대회 사상 조예선 최다 골 기록이다.[* 당시 선수진은 [[http://en.wikipedia.org/wiki/1997_FIFA_World_Youth_Championship_squads|여기]]에서 확인 가능하다.] 그러나 브라질은 8강에서 현 아르헨티나 국가대표팀 감독인 [[리오넬 스칼로니]]를 비롯해 [[후안 로만 리켈메]], [[파블로 아이마르]], [[에스테반 캄비아소]] 등이 버티고 있던 아르헨티나에게 0-2로 패하며 탈락했고, 대회 우승은 여기서 브라질을 꺾은 아르헨티나에게 돌아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