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궁지쟁 (문단 편집) == 비슷한 사례 == * 조선의 중종 말~명종 초 상황: '''세자(인종)+대윤 VS [[경원대군]](명종)+소윤'''[* 태자 손화와 태자파 VS 노왕 손패와 손패파 구도와 같다.] 양측이 정당한 후계자와 지지자 VS 정통성이 딸리는 경쟁자와 지지자 구도이며 지지세력도 전자가 명분아래 모였다면 후자는 그 집단 자체의 이득을 위해서라는 점이 닮았다. [[문정왕후|왕실 여인이 개입한 것도]] 같으며[* 오나라쪽은 공주인 손노반] 재위 후반기에 결정권자가 후자에 더 힘을 실어준 것도 비슷하다.[* 정순붕이 대소윤의 갈등을 아뢰자 중종은 윤임(세자의 외숙부이자 대윤 수장), 윤원형(경원대군의 외숙부이자 소윤 수장) 모두 처벌하면서도 윤임은 김안로와 짝짜꿍한 놈이라며 더 큰 벌을 줬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신하들이 반발하자 처벌수위를 낮춰주었다.] 그 와중에 심하게 충돌하고 피도 흘렸고 조금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첫 승 자체는 전자가 했지만[* 이쪽은 손패 처형, 조선 쪽은 인종 즉위] 최종적으로 후자가 승리한 후 나라꼴이 엉망이 된 것도 닮았다. 다만 이궁지쟁과는 달리 정작 양대 당사자끼리의 사이는 좋았고[* 왕세자였던 인종이 천성이 워낙 어질기도 했지만 경원대군이 그냥 어린애이기도 해서(둘의 나이차이가 '''18세'''다. 당시 기준으로는 거의 부자지간 수준.) 서로 충돌할 여지도 없었다. 사실 또 그래서 서로 경쟁관계였다고 보기도 어렵다.] 첫 선공은 전자에서 날렸으며[* 이미 대윤에 가까운 김안로가 문정왕후 폐위 음모를 꾸민 바 있다.] 후자 세력은 지지하는 후보를 교체하지 않았다.[* 이는 문정왕후의 존재 때문으로 손패의 어머니는 정작 손패파에 들어가 있지는 않지만 경원대군의 어머니인 문정왕후는 엄연히 소윤편이었다. 소윤의 수장인 윤원형 또한 경원대군의 외숙부였으니 소윤에겐 경원대군 외의 대안은 없던 셈]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