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기찬 (문단 편집) === 데뷔와 전성기 === 고등학교 2학년 때인 1996년 [[MBC 표준FM]] [[별이 빛나는 밤에]]에서 주최하는 가족마을 뽐내기 대회에서 대상을 차지하며 주목을 받게 되고, 이 여세를 몰아 곧바로 그 해 11월에 정식 가수로 데뷔했으며 데뷔곡 "'''Please'''"로 좋은 반응을 얻었다. "Please"는 그 당시 오디션 곡으로 인기가 많았는데 [[김태우(god)|김태우]]와 [[윤민수]]도 이 곡으로 가수가 되었다고 한다. 데뷔 당시엔 또 다른 79년생 동갑내기 고교생 남자 가수 [[이지훈(멀티 엔터테이너)|이지훈]]이 있었지만 인기는 다소 밀렸다.[* 사실 당시엔 또 다른 고교생 가수에 하이틴 드라마 출신으로 유명했던 동갑내기 [[김수근(1979)|김수근]]과 이지훈의 라이벌 구도였고, 발라드로 이름을 알린 다음 후속곡으로는 댄스곡을 미는 식으로 둘이 너무 닮은 행보를 보이던 둘에 비해 이기찬은 곡부터가 거의 발라드 위주라 약간 비주류 취급이었다. 현재 김수근은 연예계를 떠나 바리스타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다만 보컬만 소화했던 이지훈에 비해 [[작곡]] 능력을 갖췄다는 메리트가 있었고, 이기찬이 대학에서도 음악을 공부하며 전업 음악인의 길을 걷게 됨에 따라 이후의 커리어도 크게 달라졌다. 여러 번의 슬럼프와 재도약을 번갈아 했던 가수로, 잠잠하다 싶으면 한 번씩 터뜨리는 면이 있는 가수다. 1집으로 상당한 인기를 얻은 후 "또 한 번 사랑은 가고", "감기", "미인" 등의 히트곡을 여럿 남기면서 나름대로 남성 발라드 가수로 입지를 굳혔다. 1집으로 성공적인 데뷔를 한 이래 1997년 발매한 2집 타이틀곡 "'''유리'''"도 10위권 안에 들 정도로 선전했지만 이 때부터 흥행이 1집에 비하면 점점 뒤처졌다. 대중성을 어느 정도 포기하면서 뮤지션으로서 홀로서기를 시도했기 때문. 특히 라 이름 붙인 4집은 전곡의 작사, 작곡, 프로듀싱까지 홀로 도맡았을 정도였지만 음반 판매량은 2만 장 정도밖에 안 나올 정도로 상업적 성과는 좋지 않았다. 결국 2001년 [[박진영]]에게 곡을 맡기며 변화를 모색한 결과 박진영이 작사 작곡한 5집 타이틀곡 "'''또 한 번 사랑은 가고'''"가 대히트하면서 그의 가수 커리어 최초로 가요 순위 1위를 차지했으며 38만장을 판매하면서 2001년 하반기에 발매한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그 해 골든디스크 본상을 거머쥐는 기염을 토하면서 인기 가수 반열에 올라섰다. 더불어 [[유인촌]]이 기획한 연극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의 장면들을 차용한 뮤직비디오 또한 상당한 화제가 되어, 해당 연극이 더불어 흥행하는 동반효과[* 뮤직비디오에 <백설공주를 사랑한 난장이>가 차용됐을 때에는 이 연극이 이미 대한민국 연극 역사상 가장 큰 흥행을 기록한 후였다. 이미 종료됐던 연극이 뮤직비디오에 쓰인 이후 추가적인 공연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뮤직비디오 덕분에 연극이 더불어 흥행을 한 건 아니다.] 를 가져왔으며, 당시 주인공 반달이로 열연한 153cm 단신의 무명 연극배우 최인경도 상당한 주목을 받아 연극계에서 유명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연극은 아무리 흥행을 해도 연극배우들 인지도는 사실상 그쪽 세계가 아닌 이상 바닥일수 밖에 없다. 뮤직비디오가 대박이 나면서 연극배우 최인경의 인지도가 높아졌고 어린이프로그램 MC 등 방송쪽으로 차츰 활동하게 되었다.] 또한 후속곡으로 활동한 "비바 내 사랑"도 10위권까지 올라가면서 5집 활동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후 2002년 발매한 6집 "'''감기'''" 역시 자작곡으로 나온 타이틀로 다시 한 번 1위를 거머쥐었고 13만 장 정도를 판매하여 큰 인기를 얻었다. 연타로 대히트하고 앨범 프로듀싱 능력까지 인정받으며 차세대 발라더로 입지를 굳히는 듯했으나, 다음해 나온 7집이 상대적으로 부진했고, 8집에서 주저앉으면서 다시 슬럼프가 시작됐다. 200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며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점차 인지도가 하락했다. 그나마 2006년 [[이수영(가수)|이수영]]의 7집 타이틀곡 "Grace"에서 이수영과의 친분으로 즉흥적으로 녹음했던 간주 중 코러스의 주인공으로 살짝 주목받았긴 했다. 하지만 그 뒤 2007년 1월 발매한 9집 타이틀곡 "'''미인'''"으로 제3의 전성기를 열었다. 무언가 밋밋한 듯하면서도 지난 히트곡들을 떠올리게 하는 애절한 느낌이 인기를 끌어 5년만에 인기가요에서 1위를 하는 등 오랜만에 대중들에게 모습을 보였고, 그 해 멜론 차트 1위를 하는 쾌거를 올렸다. 다만 화제성은 부족했던지라 현재에 와선 잊혀진 히트곡이 되어 저평가를 받는 경향이 생겼을 뿐. 1년 뒤인 2008년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를 했으며 현재까지 그가 대중들에게 공식적으로 활발한 모습을 보인 마지막 시기라고 할 수 있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