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나가와카이 (문단 편집) === 6대 우치보리 카즈야 시대 === 키요타 지로가 노령과 건강을 이유로 총재로 물러난 뒤 2019년 4월 우치보리 카즈야가 6대 카이쵸를 계승했다. 우치보리 카즈야는 [[게이오기주쿠대학]] 출신이라는 말도 있는 엘리트로 30대 쯤에 술잔을 받고 정식으로 야쿠자가 된 인물이다. 늦게 입문했지만 비상한 수완으로 키요타 지로의 야마카와잇가를 이끌었고 [[파나마 페이퍼]]에 관련 기업이 이름을 올리기도 한 경제통으로 알려저 있다.전직 은행원 출신이라는 소문도 있으며 돈이 굉장히 많은 것으로 알려저 있다. 아내가 재일교포로 우치보리 쿄코(신경자)로 알려저 있다. 이름과 재일교포란 점만 봐도 감이 오지만, 우치보리의 아내가 바로 5대 카이쵸 키요타 지로의 딸일 것으로 알려져있다. 물론 본인이 인정한 적이 없으니 아내가 키요타와 상관없는 신씨 성을 가진 재일교포일 가능성도 희박하지만 존재한다. 다만 알려진 바에 따르면 우치보리는 대학생 시절 우연히 키요타 지로를 알게 돼 안연을 맺고 사무실을 드나들며 친분을 쌓았다고 하는데, 당시에도 한조직에서 2인자를 맡던 키요타가 별볼일 없는 대학생과 오래토록 연을 이어가고 끝내 꼬붕으로 받아들인 걸 보면 우치보리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던 걸로 보인다. 이렇게 인연이 깊은 두 사람이기에 우치보리가 단순히 키요타의 오른팔이 아니라 사위까지 됐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원래 야쿠자는 가족의 정보는 약점이 되기에 가급적 밝히지 않는데, 우치보리의 경우 부동산 관련 문제로 경찰에 의해 아내와 아들이 체포당하면서 밝혀졌다) 2013년경 미국 재무부는 우치보리 카즈야를 경제 제재 대상으로 선정하기도 했다. 야마구치구미의 7대 혹은 8대 조장이 될 인물로 여겨지는 고도카이 3대 회장 타케우치 테루아키와 5분의 의형제 사이다. 4대 승계 당시 조직 분열을 주도했던 이나가와 세이죠의 손자 이나가와 히데키와 악연이 있는데 어느날 이나가와 간부들이 담소를 나누던 와중에 이나가와 히데키가 도착하자 그를 본 우치보리 카즈야가 그를 "여~ 와카(도련님이라는 뜻)" 정도로 짧게 부르자 이나가와 히데키가 격분해서 "나는 도련님이 아니야! 본부장이다!"하고 주먹으로 마구 구타했다. 그 자리에는 4대와 5대 카이쵸가 되는 츠노다 요시오와 키요타 지로도 같이 있었지만 1대 회장의 손자, 3대 회장의 장남이라는 이나가와 히데키의 특별한 신분배경 때문에 꾸짖거나 제지하지 못하는 상항이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평소 키요타 지로와 교우관계가 있던 고도카이 다카야마 키요시 총재 측에 이 소식이 알려지고 그의 부하 중의 부하라고 불리던 3대 고도카이 회장 타케우치 테루아키가 대신 나서서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보복을 준비하게 된다. 그러나 위험을 감지한 이나가와 히데키쪽에서 경계를 삼엄히 하고, 두목들끼리 중재를 통해 결국 이 일은 흐지부지 되었는데 아무튼 이때의 인연으로 고마움을 느낀 우치보리 쪽에서 나이차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먼저 요청하여 타케우치 테루아키와 5분의 형제배를 맺었다. 이후에도 둘은 서로의 조직 행사에 참석하거나 양 조직에 사카즈키 의식이 있을때 후견인이 되어 인맥을 공고히 하고, 야마구치 분열 당시에도 우치보리 카즈야가 단신으로 나고야에 있는 고도카이 본부를 방문하여 다케우치 3대 회장과 회동하는 등 조직은 다르지만 같은 조직원들 이상의 끈끈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이사장 시절 [[야마구치구미]] 두목 시노다 켄이치의 생일 파티에 초대돼서 노래부르는 영상도 있고, 예전부터 야마구치구미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