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동준(1980) (문단 편집) == KBL 입단 전 == [[아버지]]는 [[주한미군]] 헌병이었던 이탈리아계 백인계 [[미국인]], [[어머니]]는 [[한국인]]이며 [[미국]] [[워싱턴주]] 출신이다. 아버지가 경찰관 농구 리그에서 뛰어서, 형 이승준과 함께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농구를 접했다. [[https://www.sports-reference.com/cbb/players/daniel-sandrin-1.html|포틀랜드 대학교 시절 기록]] 고교 졸업 후 형인 [[이승준(농구선수)|에릭 산드린]]이 다니고 있던 West Coast Conference 소속 포틀랜드 대학교에 입학하지만, 마침 이때 [[이승준(농구선수)|형]]은 고향 [[워싱턴주]]의 시애틀퍼시픽 대학교(NCAA 디비전 II)로 전학을 결정하면서 1년 유급[* NCAA 대학교간 트랜스퍼 제한]중이라 함께 뛰지는 못했다. 99-00 시즌 포틀랜드대에서 단 9경기밖에 뛰지 못한 대니얼 산드린(이동준)은, 한 시즌만에 포틀랜드대에서 나와 형이 뛰고 있던 시애틀퍼시픽 대학교로 전학을 선택하고[* 역시 트랜스퍼 제한으로 인한 출전금지로 이동준도 1년간 유급하게 된다.], 팀내 주전센터였던 형과 함께 01-02 시즌을 함께 뛰게 된다.[* KBL에서의 모습을 보면 상상하기 어렵지만, 대학시절 이동준은 주로 가드와 포워드 자리에서 뛰었다고 한다. 연세대학교에 처음 합류했을 때에도 장신 스윙맨으로 소개되었고, 드리블 스킬을 자랑하는 영상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디비전 II 대학교 출신인 이동준으로선 프로 진출은 어려운 일이었고, 졸업 후인 2004년 유럽으로 건너가 아마추어리그 수준이던 [[룩셈부르크]] 리그와 독일 3부리그에서 뛰다가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평범한 직장인(은행원)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농구에 대한 열정을 버릴수 없었던 이동준은 어머니의 나라에서 농구를 하겠다는 결심을 품었고, 마침 당시 [[대학농구연맹전]]에서 빅맨 수급 실패로 고전하던 [[연세대학교]][* 그 유명한 황금세대 트리오 [[김태술]]-[[양희종]]-[[이광재(농구)|이광재]]가 절정의 기량을 뽐내고 있었지만, 확실한 빅맨이 없다보니 [[김민수(농구선수)|김민수]](경희대), [[윤호영(1984)|윤호영]]-[[함지훈]](중앙대), [[주태수]](고려대), [[김봉수(농구)|김봉수]]-[[송창무]](명지대) 등 우수한 빅맨을 보유한 팀들에 골밑에서 밀리는 날이 많았다.]의 레이다망에 걸리면서 2005년 말 한국으로 건너간다. 한국어, 국사시험을 거쳐 마침내 2006년 6월 만 26세의 나이에 어머니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귀화[* 당시는 이중국적이 허용되지 않아 이동준은 미국 국적을 아예 포기한 일반귀화였다. 1년 후 귀화한 형 [[이승준(농구선수)|이승준]], 그리고 [[전태풍]]도 마찬가지. 이후 2011년 "외국인 우수인재 특별귀화"라는 제도가 생기면서 [[문태종]]-[[문태영]] 형제는 [[외국 국적 불행사 서약]]을 하는 조건으로 미국-대한민국 복수국적을 보유한 채 귀화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후에 형 [[이승준(농구선수)|이승준]]과 함께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에 출연했을 당시에 이야기한 것이라면 이러한 것에 상관없이 대한민국에 귀화를 하고 싶어했던 듯한데, 이미 친척들이 모두 대한민국에 자리를 잡았던 상태여서 본인도 대한민국에 거주를 목적으로 귀화를 하는 것을 꽤 많이 원했었다는 모양이다.]한 이동준은 연세대학교 3학년으로 편입하며 하반기 [[2006 대학농구연맹전]] 출전을 준비하지만, 이미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데다 독일 3부리그에서 뛴 경력까지 있는 선수는 대학농구에서 뛸 수 없다는 타 대학 관계자들의 반발로 이동준의 출전은 벽에 부딪히게 된다. 특히 연세대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하던 고려대의 반발이 가장 심했는데[* 2006년 [[연고전]]에서 연세대 박건연 감독은 이동준의 출전을 강행하려 했으나,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선수단을 내보내지 않으며 1시간 반 가량 맞선 고려대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결국 물러설수 밖에 없었고, 이동준 없이 치른 경기는 66:53 고려대의 승리로 끝났다.], 기존의 황금세대 [[김태술|트]][[양희종|리]][[이광재(농구)|오]]에 장신 이동준의 가세로 인한 연세대의 전력 급상승을 우려한 다른 대학교들까지 합세하면서, 결국 대학농구연맹은 이동준이 대학농구연맹 주최 대회에 출전할수 없다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2년 전 [[김민수(농구선수)|김민수]]를 아르헨티나로부터 데려와 국가대표까지 키운 [[경희대학교]] [[최부영]] 감독 또한 강력하게 반발한 인물중 하나라는게 아이러니다.] [[파일:이동준 연세대.jpg]] (결국 몸만 풀다 끝난 2006년 연고전.) 파행으로 끝난 [[연고전]] 이후, 이동준은 대학농구연맹 주최가 아니었던 2006년 김천 전국체전 농구대회에 나서며 한국에서의 첫 공식출전무대를 갖게된다. 1회전 단국대와의 경기에서 대학리그 상위권 빅맨이던 [[정휘량]](198cm)을 상대로 수차례 파워덩크를 꽂으면서 21분만 뛰고도 30점 5리바운드를 올리는 맹활약을 펼쳤고, 이후 4강에선 같은 귀화 혼혈선수인 [[김민수(농구선수)|김민수]]의 경희대를 만나 18점 11리바운드로 분전했지만, 김민수에게 28점을 내주며 아쉽게 패배하며 동메달에 그친다. 이후 11월 [[2006 대학농구연맹전|2차연맹전]]과 농구대잔치에도 출전하지 못한 이동준은 팀을 떠나 2007 KBL 신인 드래프트에 지원, 황금세대 드래프트로 불린 기라성 같은 선수들 사이에서 전체 2순위로 [[고양 오리온|대구 오리온스]][* 인천 전자랜드에서 드래프트 픽 양도]에 뽑히게 된다. [* 2009 귀화혼혈선수 특별 드래프트를 통해 입성한 형과는 달리, 국내 대졸 선수들과 함께한 신인 드래프트였다. 전체 1순위는 연세대 [[김태술]], 3순위 역시 연세대 [[양희종]]이었으며, 이때 드래프트 동기들 중 무려 7명([[김태술]], 이동준, [[양희종]], [[정영삼]], [[이광재(농구)|이광재]], [[김영환(농구)|김영환]], [[함지훈]])이나 A대표팀 경력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