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동준(1980) (문단 편집) == 국가대표 == [[파일:이동준_국대.jpg]] (2007년 대표팀의 이동준(14번)) 대한민국 국적 취득 후 1년이 지난 2007년 8월, 이동준은 일본 도쿠시마에서 열린 2007 FIBA 아시아선수권대회 국가대표팀에 이름을 올린다. 당시 KBL을 외국인 빅맨들이 점령한 데다 [[서장훈]]이 2006 도하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사실상 국대에서 은퇴하는 바람에 KBL에서 국대급로 보낼 만한 빅맨은 [[김주성(농구)|김주성]]이 유일한 상황이었고, 이에 대표팀 [[김남기]] 감독은 [[NBA G 리그]]에서 돌아온 [[하승진]]과 대학생 [[김민수(농구선수)|김민수]], 그리고 2007년 1월 KBL 드래프트에서 [[고양 오리온|대구 오리온스]]에 선발된후 프로데뷔는 커녕 국내 공식경기도 겨우 2차례[* 2006년 10월 전국체전에서의 2경기]뿐이던 이동준을 국가대표 빅맨진에 합류시키기로 결정한다. 당초 팬들이 가졌던 화려한 테크니션으로서의 환상 대신 운동능력에만 의존한 투박한 블루워커의 모습을 보여준 이동준이었지만, 대회초반 [[김민수(농구선수)|김민수]]가 뛰지 못하는 상황에서 [[김주성(농구)|김주성]]과 [[하승진]]의 백업 역할을 충실히 해줌으로써, 1년전 도하 참사(아시안게임 5위)를 겪었던 대표팀이 대회 최종 3위를 따내는 데 기여한다. [[파일:이동준 국대2.jpg]] 2009년 새롭게 사령탑에 오른 [[허재]] 감독은 6월 나고야 동아시아선수권을 앞두고, 부상으로 빠진 [[김주성(농구)|김주성]]과 [[하승진]]을 대신해 대학생 [[오세근]]과 이동준을 선발했고, 이동준은 대회 예선에서 [[오세근]]과 선발 빅맨으로 출장하며 맹활약, 대표팀의 우승에 기여했다. 하지만 같은해 8월 중국 톈진에서 열린 2009 FIBA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대표팀에 복귀한 [[김주성(농구)|김주성]], [[하승진]], 그리고 [[오세근]]에 밀려 출장기회를 거의 잡지 못했고, 대표팀은 이란, 레바논에 이어 대만에까지 지는 졸전을 펼치며 대회를 7위로 마치는 바람에, 이동준은 농구대표팀의 흑역사 중 하나인 '''톈진 참사''' 멤버에 이름을 올리고 만다. 이후 [[2009년]] 형 [[이승준(농구선수)|이승준]], [[2011년]] [[문태종]], [[문태영]] 형제가 각각 대한민국으로 귀화했고, FIBA에서 "18세 이후에 국적을 바꾼 선수는 1명만 대표팀에 오를 수 있다"는 규정을 신설함에 따라, 이동준은 [[이승준(농구선수)|형]]과 [[문태종]]에 밀리며 대표팀에 다시 뽑히지 못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