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라크 (문단 편집) === 종교 === [[파일:이라크 종교 민족.png|width=400]] [[1978년]] [[CIA]]에서 작성한 이라크의 종교/민족 분포도로 북부는 [[수니파]], 남부는 [[시아파]]가 다수며 사이사이 [[칼데아 가톨릭]] 등의 기독교인들이 섞여서 있다.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절에는 [[수메르 신화]], [[아카드]] 신화, [[아시리아]] 신화, [[바빌로니아]] 신화 같은 토착신앙이 주류였으며 [[아케메네스 왕조]], [[파르티아]], [[사산 왕조]]의 지배를 받을 때는 [[이란인|페르시아인]]의 영향을 받아 [[조로아스터교]]로 개종하는 이들도 존재했다.[* 물론 아케메네스 왕조 때는 오늘날의 이라크 땅을 포함한 비페르시아권 지역의 토착 신앙이 존중되었기 때문에, 조로아스터교로 개종하는 이들도 대부분 출세를 위해 자발적으로 개종하는 경우였다.] 그러다가 이라크와 이란 모두 [[이슬람 제국]]에 정복되면서 두 나라 모두 [[이슬람]]교가 주류 종교가 되었다. 카셈 장군의 [[군부]] 및 [[사담 후세인]]의 [[독재]]시절에는 소수라고 해도 기독교인들은 차별이 있을지언정 같이 공존했고 이슬람 과격파가 여기 시설을 공격하면 세금으로 복원하고 범인들을 응징하였다. 과격파들에겐 어차피 군부 독재자도 적이기에 후세인에게도 적이기 때문이었고 소수 종파를 배려하여 자신을 지지하게 만들면 나쁠 게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후세인은 수니파 지도자고 이라크의 다수 종교는 시아파라는 사정도 있다.[* 수니파가 국민 다수고 시아파가 소수며 그 소수 시아파의 지도자가 아사드인 [[시리아]]와 사바흐 왕가, [[사우드 왕조|사우드 왕가]], [[하심 왕가]] 등 왕실 지배층과 국민들 모두 이슬람 수니파가 절대다수인 [[쿠웨이트]], [[사우디아라비아]], [[요르단]] 등 주변 아랍국가들과는 사정이 반대다. 단, 아사드 일가는 [[알라위파]]이다.] 덕분에 [[집시]]들도 이라크에선 그럭저럭 지낼 만 했으며, 그 밖에 [[야지디교]]라든지 [[만다야교]] 같은 소수 종파들도 공존했다. 사실, 이런 것은 특별한 현상은 아니고, 종교의 영향을 슬슬 벗어난 단계의 근대 서구 문화와 탈교권이 진행된 국가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국민교육을 통해 종교를 불문하고 국민의 역량을 통합해 국가역량을 키우고 분리독립의 싹을 자르며, 정교분리 및 정권에 도전하는 조직화된 반대 세력의 성장 견제 등. 독일 제2제국의 [[비스마르크]]도 종교정당과의 투쟁이 독일 통일 자체보다 더 오래 애쓴 과제였고, [[19세기]]까지의 프랑스는 독일, 이탈리아 등에서 획득한 영토와 말이 많이 다른 지방에 표준어를 보급해 국민을 통합하는 데 열심이었다. 독재정권의 생존 방편이기도 한 이 세속주의 정책은, 나름 탈종교 근대화 수순으로서도 기능하고 있었으나, 반대로 아직 일반 국민의 의식은 여전히 종교에 크게 의지했기에, 멀게는 이란 혁명 가깝게는 전쟁과 아랍의 봄과 터키 쿠데타 등을 거치며 세속주의를 추종하는 구 정권이 권좌에서 내려오자 이 지역 거의 모든 국가에서 종교에 심취하려는 역풍을 맞고 있기도 하다. 그나마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여파로 이슬람화도 제동이 걸린 상태이기는 하다. 미군 철수 이후 시아와 수니파 이슬람교 이외 소수종교 및 소수 이슬람 종파들에겐 지옥이 열렸다.[* 2008년 [[쿠르드족]]의 [[야지디]]교도들이 살던 지역에선 야지디교인 소년이 이슬람 시아파 소녀를 사랑한다며 이슬람에 대한 증오가 넘치던 야지디 교도들이 가서 그 소녀를 때려 죽였다. 이걸 찍은 동영상이 해외로 퍼져 한국 방송에서도 나왔고 이에 대한 시아파 과격파들의 보복 공격으로 많은 야지디 교인들도 목숨을 잃었다. 이처럼 기독교 외 다른 소수 종교들도 [[헬게이트]]가 열렸다.] 기독교의 경우 [[칼데아 가톨릭]]이나 [[아시리아 동방교회]] 같은 토착 종파가 있었고, 1997년 통계에 따르면 신도가 130만 명이나 되었다. 그러나 2015년엔 그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기독교계 이라크 국회의원에 따르면, 이라크 전쟁에 이은 헬게이트가 없었다면 이라크 내 기독교 인구는 지금쯤 200만 명을 돌파했었으리라고 탄식하였다. 오죽하면 '''기독교 역사가 끝날 위기'''라는 평가까지 나오기도 했을 정도였다. 또한 대다수인 [[시아파]][* 인구 60% 이상]가 득세하면서 골치를 겪고 있다. 2012년 와서 정치수반인 [[누리 알 말리키|알 말리키]](시아파)가 [[순니파]]인 알 무틀라크 부총리와 부통령인 알 하셰미 탄핵 및 구속을 이뤄냈고 순니파가 다수인 [[쿠르드인]] 지역에 간섭하면서 말이 많았다. 이라크 내 순니파에선 이란의 원조를 받는 시아파가 득세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내전 양상이란 세간에 널리 퍼져있는 잘못된 인식과는 달리 실질적으로 일반 국민들간의 종파간 갈등은 미미한 편이고 도리어 '''옆동네 [[시리아 내전]]의 불똥이 튀어 외국에서 테러 단체들[* 주로 [[알 카에다]]나 그 분파들이었지만 알 카에다 지도부가 다에쉬와의 결별을 선언하면서 별개의 단체가 되었다.]의 유입과 그로 인한 묻지마 차량 폭탄 테러로 신음하고 있다.''' 당연하게도 무슬림이든 비무슬림이든간에 일반 시민들은 테러하면 아주 학을 떼며 질색해하는게 일반적인 정서다. [[2010년대]]에도 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테러가 벌어지고 있는 판이고 중부 지역에서도 테러가 펼쳐지던 [[2000년대]] 중/후반 당시에는 하도 테러 사고가 연달아 벌어지다 보니 버스나 자동차도 목숨을 잃을까봐 조마조마하면서 타는 건 물론이고 축제 때도 테러가 벌어지는 판이었으며[* 2007년 아시안컵에서 이라크가 연이은 선전을 거두어서 축제분위기가 되었을때에도 테러가 터졌고 선수의 가족들도 테러의 마수에서 피해가지 못할 판이었으니 말 다했다.] 테러 때문에 치안도 덩달아 나빠져서 인프라 사업 재건도 지지부진했으니[* 물론 미군이 전후복구작업을 무능하게 진행하고, 부정부패로 인해 중간에서 빠져나가는 금액도 상당한 영향이 크지만 테러의 영향으로 치안이 불안해지다보니 인프라 공사가 줄줄히 지연먹은점은 결코 무시할수가 없다.] 일반인들이 테러에 질색하는건 당연한 일이다.[* 무법천지를 기회삼아 먹고 살기 힘들고 치안공백인 지역에선 서로 청소하려고 덤빈다.] 이때문에 이라크 및 이란에서 오래전부터 거주하던 기독교 및 소수 종교인들은 꽤나 고생 중이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5&aid=0001159579|#]]그런데 2018년 12월 이라크 정부가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기독교 기념일인 성탄절을 국경일로 지정했다. 이라크 내각은 성탄절을 일부 기독교인만이 아니라 이라크 전체 국민이 쉬는 휴일로 정하는 국경일법 개정안에 승인했다. 사실 법 제정 전에도 이라크 기독교인들은 자체적으로 성탄절을 휴일로 지켜왔다. 대중들은 이슬람에 미친 나라라고 알고 있으나 실제로는 전혀 아니다. 물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범죄와 테러가 있어 문제가 되지만 일단 이라크는 개종이 불법이 아니며 [[샤리아]]를 기반으로 한 법이 아닌 [[대륙법]]을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법적으로 무신론은 불법이 아니다. 이라크는 국교가 없다.[* 이는 이라크가 [[이라크 왕국]] 시절부터 세속주의와 정교분리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사담 후세인 집권기에도 마찬가지라서 후세인은 세속주의를 추구하며 이슬람 극단주의를 탄압했다.][* 단 요르단과 사우디, 쿠웨이트 등 이웃한 아랍 군주국들은 이슬람 법계인 샤리아를 국법으로 채택했다.] 또한 여성들에게 히잡과 니캅과 같은 베일 강요도 하지 않는다.바그다드에서는 젊은 세대의 여성들이 히잡 같은 베일을 쓰지 않고 현대 복장,또는 개량한 전통 복장을 입는 모습도 보인다.애초에 [[교황]] 방문도 국가적으로 반기고[* 이라크를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을 이라크 최고 권위의 시아파 이슬람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알시스타니]]가 만나기도 하였다.] 기독교도, 야지디, 만다야교 등 소수 종파의 의회 의석을 보장해주는 등 비이슬람 종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는 해주는 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