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란/역사 (문단 편집) == '''[[이란|이란 이슬람 공화국]]''' (1980 - 현재) == [[파일:external/d9400137674c7dd39dfaf05d95b7865a924b49637b57ff59f5dd7a46f0b267ea.jpg|w=365&h=365&crop=1]] 사진 속 인물은 현임 라흐바르(최고지도자)인 [[알리 하메네이]][* 하메네이는 민족상으로는 이란 인구 대부분(5400만)을 차지하는 [[페르시아]]인이 아닌 [[아제르바이잔]]인이다. 물론 옛 소련이었던 아제르바이잔 공화국 출신인 것은 아니다. 아제르바이잔인은 본국(820만)보다 오히려 이란(1700만)에 더 많이 산다. 상대적으로 페르시아민족에 비해 소수인 민족 출신(하지만 이란 인구 20%가 넘기에 소수민족이라고 우습게 볼 정도는 아니다) 이 최고 지도자 자리에 오른 것에서도 보다시피, 이란에서는 시아파 [[무슬림]]이라는 가정 하에 민족 차별 문제는 크지 않은 편.] 혁명을 성공시킨 [[호메이니]]는 혁명에 함께했던 [[사회주의]] 및 [[세속주의]] 세력을 빠르게 숙청한 후 나라 이름을 이란 이슬람 공화국으로 바꾸었는데, 공화국이 아니라 이슬람에 방점이 찍혀 있다. 성직자로 구성된 율법 전문가 회의가 종신직인 라흐바르(최고지도자)를 선출하며 주요 국정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권한을 행사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4&oid=001&aid=0006316636전임이자|#]] 이란 이슬람 혁명을 일으켜 초대 최고지도자가 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이란에선 국부급으로 존경을 받지만, 주변 나라들이나 미국이나 유럽이나 이스라엘, 터키에선 [[악의 축]]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와 [[프랑스]]의 입장에선 기껏 도와줬더니 이권도 챙겨주지 않은 한 배은망덕한 놈, 좀 더 좋게 평가해도 꼴통 이슬람 근본주의자 정도로 대우받는 아야톨라 호메이니에 대한 내용은 해당 항목에서 참고하길 바란다. 이 혁명은 이후에 [[이스라엘]]과 함께 양대 [[중동]]문제의 시발점이 되었는데 종파는 달라도 '이슬람 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슬람 근본주의]]가 본격적으로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것. 혁명에 위기감을 느낀 [[이라크]]가 1980년 9월 22일에 [[선전포고]]도 없이 쳐들어온 것을 시작으로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고, 무려 8년이나 전쟁을 벌여야 했다. 전임이자 초대 최고지도자인 호메이니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1989년 이후 최고지도자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하메네이도 국민 직선으로 선출한 대통령을 능가하는 권력을 쥐고 있다. 또한 사실상 라흐바르가 인사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헌법수호위원회에서 대통령, 국회의원 후보들의 자격심사권도 가지기 때문에 라흐바르의 입맛에 맞지 않는 자는 대통령 및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할 수가 없다.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민주주의 국가가 아닌 라흐바르의 독재국가이다. 90년대에 저유가와 환율현실화 조치 등으로 인해 이란 경제는 어려움을 겪었고 이로 인해 하타미가 대통령이 되면서 하에서 어느 정도 개방정책에 나서며 경제는 90년대 초중반 시절보다 크게 나아졌고 사회통제도 완화되었으며 언론자유도 보장되는 편이었지만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으며 오히려 임기 후기에는 조지 W 부시로부터 악의 축 내지 테러지원국이라는 소리를 듣는 수모를 겪었다. 이 상황에서 치러진 2005년 대선에서 라프산자니가 대통령에 당선될 것으로 보였지만 예상을 깨고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이 되었으며 이 시기에 경제는 일단 고유가로 호황을 누리기는 했지만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후퇴되었으며 사회통제는 강화되어가며 도심부 젊은층들 사이에서 반발여론은 심해져갔다. 2009년 6월 13일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압도적인 표 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부정선거 논란으로 국가가 비상상태. 점점 민주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이리저리 시끄럽기 시작하는 가운데, [[미국]]은 미국대로 이란이 민주화돼서 친미정권 세우면 좋다라는 태도인지라 이리저리 개입하려고 하니 안팎으로 시끄러운 상태이다. 단 이란의 민주화=친서방, 이슬람 국가 붕괴라는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일반 국민들 입장에서 역사적, 사회적으로 가진 원한인지라[* 이란은 중산층, 유년층 막론하고 반 신정경향이 강해 신정이 무너지고 세속적인 지도자가 들어서면 곧 정상화 된다. 다만 외세의 개입은 필히 이란을 불행하게 만들기에, 이란 망명자들조차 서방이 직접 붕괴시키는 것이나 이를 사주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고 한다.] 이란인들의 [[반미]], 반서방 감정은 지금도 매우 강하다. 선거 폭동 당시 시위대가 '''개혁정책을 추구했지만 CIA의 쿠데타로 쫓겨났던''' 모사데크 전 총리를 영웅으로 내걸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또 아마디네자드에게 패하여 선거 폭동을 촉발시킨 미르호세인 무사비 역시 어디까지나 이슬람 국가 체제 안에서 개혁적인 정책을 내건 야당 지도자다. 이 시위대가 친서방 성향을 가졌다는 것은 그들을 탄압하는 수구 세력의 주장인 동시에 서방 국가들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이란의 70, 80년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마르잔 사트라피 원작, 뱅상 파로노드(Vincent Paronnaud) 감독의 [[페르세폴리스]]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으니 관심이 있으면 보도록 하자. 물론 마르잔 사트라피가 만든 원작 만화책도 훌륭한 참고문헌이다.] 선거에서 개혁파들을 걸러냈음에도 개혁파의 득표율이 높은 편이고[* 이것도 지역마다 얘기가 다르다. 물론 테헤란같은 대도시에서야 보수파 VS 진보파 간의 대결이 성사되지만 농어촌 지역으로 가면 얘기가 달라서 보수파와 개혁파를 왔다갔다하는 의원들이 꽤 된다.] 2016년 율법 전문가 회의 선거에서 개혁파와 중도파가 다수를 점한것으로 나왔기 때문에 알리 하메네이가 도중에 사망한다면 선전할수 있겠지만 이 선거도 8년에 한 번씩 치러서 민심 반영이 어렵다. 율법 전문가 회의가 이란 군사력의 핵심인 [[이슬람 혁명 수비대]]를 거느리고 있기도 한데, 혁명수비대는 석유 등 주요 산업에 진출하여 막대한 이권을 취하고 있으며 정치적 보수파에 힘을 실어 주어 개혁 세력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0172237195&code=970209|#]] 2011년 아랍권을 뒤흔든 민중 혁명 여파로 이란에서도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튀니지와 이집트,리비아와 달리 그 규모는 작은 편이다. 미국은 열심히 이 기회에 엎어버려! 응원하지만 다른 나라와 달리 역사적인 측면에서 반서방 감정을 가진 나라이기 때문에[* 물론 튀니지와 이집트, 리비아도 반미, 반서방 감정이 없진 않지만 이란처럼 격렬하게 미국이나 서방을 증오, 적대하진 않는다.] 그다지 희망은 없었고, 결국 별다른 영향을 주지못하고 흐지부지되어 미국을 실망시켰다. 2013년 대선에서는 보수파의 후보가 난립한 반면 중도온건파가 후보단일화를 성사시켜서 결국 성직자 출신의 중도온건파 로우하니 후보가 과반 득표로 당선되었다. 강경한 보수파가 핵무기 개발에 집착하면서 제제로 인해 경제난이 가중된 것이 국민들의 반감을 샀다는 분석. 로우하니 당선자는 아마디네자드 치하의 억압을 풀겠다고 밝혔다. 미국도 은근히 핵무기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를 바라는 눈치. 드디어 [[버락 오바마]]와의 핫라인이 성사되었다. 그러나 최고지도자 밑으로 3권분립이 되어있는 신정국가 이란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과연 미국 기대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2014년 [[시리아]], [[이라크]]를 강타한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다에시]]에 대하여 반감을 보이며 이라크 정부군을 돕고 있다. 이 와중에 미군과 이란군이 협조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는 상태. 하지만 이스라엘이 결사반대하기에 이뤄지기 어려워 보인다. 이란의 진보적 청년층이 이슬람 정권에 대한 마지막 기대까지 버리게 만든 사건은 역설적으로 [[이란의 핵개발|2015년 이란 핵협상 타결]]이었는데, 이 때 서방국에서 받은 석유 수출 등의 자금을 시급한 민생고 해결이 아니라 시리아와 헤즈볼라, 팔레스타인 등 시아파 벨트의 세력 확장에 사용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6년 이후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이란 시위]]에서는 2009년 시위 때만 해도 감히 상상도 하기 어려웠던 "이슬람 공화국 타도!" "[[하메네이|독재자]]에게 죽음을!" 같은 구호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2017-2018 이란 시위]] 참조. 2016년부터는 그동안 조용하던 이란 내 쿠르드인들과 [[발루치스탄]] 위주의 수니파들이 반시아파의 무장단체를 결성하여 반란을 일으킴으로써 새로운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사실 이란의 신정통치가 워낙에 악랄해서 쿠르드인들과 수니파는 예전부터 불만이 가득했다.] 쿠르드인들과 수니파 무장단체들은 게릴라전으로 이란을 괴롭히고 있어 이란은 이들 때문에 골치가 아픈 상황. 2019년에는 또 대규모 반정부시위가 일어났는데, 1979년 이후 가장 큰 항쟁이었다. 하메네이는 '미 제국주의자의 개들'을 처단할 것을 명령, 유혈진압으로 시위자 수백 명이 사망했는데 일명 '''피의 11월''', 혹은 [[페르시아력]]으로 '''피의 어번[* 페르시아력의 제8월]달'''(آبان خونین)이라 부른다. 2020년 들어서 미국과의 전운이 감돌고 있다. 미국은 이란이 지원하는 민병대가 바그다드 주재 미국 대사관을 공격한 것과 2019년 K-1 공군기지 공격으로 미국인이 위험해졌으며, 추가공격이 있을 것이란 첩보를 입수하자 솔레마이니 제거작전을 시행했으나 이란의 장군인 [[카셈 솔레이마니|카셈 솔레마이니]] 장군이 죽자 이란측에서는 핵합의에서 사실상 탈퇴를 결정함과 동시에 이스라엘의 주요도시에 보복공격을 감행할것이라 공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만약 보복공격이 있을 시에는 이란의 주요거점 52곳을 폭격할 것임을 공표함으로서 경고를 줬다.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기지를 공습하면서 긴장강도가 한 층 높아졌다. 그러나 미리 미국 측에 알려줬으며, 미군들이 퇴근한 후 정밀하게 조율된 공격으로 미국의 보복을 피하려 했다는 분석이 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도 피해가 없었으니 미국의 군사적 보복은 없을 것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2021년 대선에서 보수파 [[에브라힘 라이시]]가 당선되면서, 8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룩하였다. 2022년 9월 한 이란 여성이 [[히잡]]을 제대로 쓰지않았다는 이유로 [[사설]] [[경찰]]에게 끌려간 뒤 맞아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2022년 9월 이란 시위|전국적인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고 있다. [[https://theqoo.net/2587191265|#1]]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410377_35744.html|#2]]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이란, version=606)] [[분류:이란의 역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