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마양 (문단 편집) === 2002년 시즌 전 === 2001년 2월, 마해영이 선수협 창단 과정에서 [[롯데 자이언츠]]와 갈등을 겪자 당시 타선에 보강이 필요했던 삼성 라이온즈 측에서 [[김주찬]]과 이계성을 주고 마해영을 데려오는 트레이드를 성사시킨다. 이 후 마해영은 삼성에 온 첫해에 .328의 고타율과 30홈런 95타점을 기록하며 뛰어난 성적을 올렸으나 팀은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두산 베어스]]에 무기력하게 패배하고 만다. 이 때 삼성 라이온즈는 타격이 되는 타자면 포지션 상관없이 아무나 데려오는 바람에 정작 필요한 외야수 대신 외야수비가 전혀 안되는 [[김기태(1969)|김기태]]나 마해영을 외야수로 보낼 정도로 포지션 중복 문제와 또 이로 인해 파생된 수비 구멍이 심각했던 상황이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삼성은 2001년 12월 [[SK 와이번스]]와의 6대2 트레이드를 통해 기존의 포지션이 겹치는 타자를 모두 정리하고[* 타자는 [[진갑용]]에 밀려 백업으로 전락한 포수 [[김동수(야구)|김동수]], 김응용 감독의 눈밖에 난 1루수 [[김기태(1969)|김기태]], 신예 [[박정환(1977)|박정환]]을 키우기 위해 트레이드된 [[정경배]]가 있었고, 투수는 퇴물이 된 [[김태한]], [[김상진(1970)|김상진]], 유망주 [[이용훈(야구)|이용훈]]이 트레이드 대상이 되었다. 이 선수들을 SK에 내주고 투수 [[오상민]], 유격수 [[틸슨 브리또]]를 받아왔다.] 취약 포지션을 보강하는 한편 [[김응용]] 감독의 추천으로 1998년 말 해태로 사실상 쫓겨나듯 트레이드 당한 [[양준혁]]을 다시 삼성으로 데려온다. 이때 양준혁의 입단에 대해선 구단과 김응용과 양준혁의 시각이 모두 달랐는데, 구단측에서는 [[김기태(1969)|김기태]]-[[마해영]]-[[매니 마르티네스]]가 번갈아 출장, ~~헬~~ 구멍이었던 좌익수 자리를 보강하는 한편, 팀의 구심점이 되어 전해의 패배를 수습하고 팀워크를 다잡기를 바랐으며, 김응용 감독은 앞서 해태 시절 제자였던 양준혁을[* 나중에 [[현대 유니콘스|좋은 팀]]으로 보내주겠다며 1년만 참아달라고 양준혁에게 말했었다. 그리고 양준혁은 그 말을 믿고 훈련에 복귀하였고, 커리어 하이를 갱신한다. 이 후 김응용 감독은 약속했던 현대는 아니었으나 같은 수도권 팀인 [[LG 트윈스]]로 양준혁을 이적시켜줘 약속을 최대한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거기에 나중에 FA 미아가 될 뻔한 위기 상황에서 삼성으로 복귀까지 시켜주면서 양준혁은 아직도 최고의 은사가 누구냐는 질문에 김응용을 언급한다.] 수습하는 동시에 그 제자가 자신과 선수단간의 간격을 좁혀줘 팀을 장악하는데 도움을 주기를 바랐으며, 양준혁은 선수협 사건으로 8개 구단 전부에게 찍히는 바람에 모든 구단에서 자신의 영입을 기피하면서 FA 미아가 될 위기에 처해 있었고[* 2014년 현재는 FA 계약시한을 넘겨서도 계약을 할 수 있었으나, 불과 '''2013년만 하더라도 FA 계약시한에 맞추지 못하면 얄짤없이 미아가 되었다.''' 이걸로 피본 선수가 [[이도형]], [[최영필]].] 이 상황에서 삼성의 영입제의는 그야말로 절호의 기회였다. 이와 같은 이유로 양준혁의 입단은 셋 모두의 입장차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일단은 일석삼조가 되었고, 입단이 확정되면서 '''드디어 이마양 트리오가 탄생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