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바라키도지 (문단 편집) == 전설 == 활약 시기에 대해서는 슈텐도지와 일치한다. 이바라키도지가 자라자 슈텐도지와 마찬가지로 미소년이 되어 수많은 여성에게 구혼을 받았고, 그리하여 이를 걱정한 이바라키도지의 어머니가 그를 야히코 신사(弥彦神社)에 맡기게 되었다. 그런데 이바라키도지가 친가로 돌아갔을 때 어머니가 행리 안에 숨겨놓은 피로 쓴 연애편지(血塗の恋文)를 발견하였고, 그 피를 손가락에 뭍혀 핥자 이바라키도지는 귀신이 되어 대들보를 타고 가 하후(破風)를 부수어 도망쳐버렸다. 이 때 쯤에 슈텐도지도 연애편지를 태울 때에 나온 연기를 쐬어 귀신이 되었다. 그 둘은 의기투합하여 주변 마을을 덮치며 큰 피해를 입히고 있었는데 그 소문을 들은 어머니가 이바라키도지가 어릴 적 입던 배냇저고리를 가지고 가자 이바라키도지는 어릴 적의 추억이 되살아나 두 번 다시 이 땅을 밟지 않겠다고 약속을 한 후 교토로 갔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이바라키도지는 미즈오 마을의 태생이지만, 16개월의 난산 끝에 태어났을 때에는 이미 이빨이 나 있고 걸어다녔으며 형형한 눈초리로 어머니를 바라봤다고 한다. 이에 충격으로 그의 어머니가 사망하고, 그의 아버지는 귀신과도 같은 아들을 감당하지 못하여 이바라키(茨木) 구스가미(九頭神)의 모리치카(森近)에 있는 이발소 앞에 버렸다. 아이가 없었던 이발소의 부부는 이바라키도지를 자신들의 아이로 삼았다. 이바라키도지는 하루가 다르게 자랐고 금방 체격도 힘도 성인의 그것을 능가해버려 이발소의 부부조차 그를 감당하기 힘들어했다. 그러나 부부는 이발소의 일을 이바라키도지에게 가르쳐 그를 침착한 성품으로 만들기로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바라키도지는 면도칼로 손님의 얼굴에 상처를 냈고, 당황해서 손가락에 묻은 피를 핥은 그는 곧 그 맛에 중독되어버렸다. 이후 일부러 손님의 얼굴에 상처를 내기 시작하였다. 부부는 이를 알고 그를 혼냈고 이에 낙담해 가까운 오가와의 다리에 기대고 앉아 있었는데, 이 때 수면의 비치는 자신의 얼굴이 완전히 귀신이 되어버린 것을 알고 도망쳐 단바산(丹波の山)에 눌러살았다. 그 후 슈텐도지와 만나 그의 하인이 되었다고 한다. 그 다리는 이바라키도지가 얼굴을 본 다리(茨木童子貌見橋)로 알려져 있으며 오사카 이바라키시에 현존한다. 그 외에도 가베나와군(川邊郡)의 토착 부족의 아이였지만 태어날 때부터 송곳니가 나고 머리카락이 길고 눈빛이 형형하며 성인보다 힘이 쎄어 일족은 이 아이를 두려워 해 이바라키 마을의 근처에 버리고 슈텐도지가 주워 키웠다고도 한다. 후일의 전승은 슈텐도지와 일치하는데, 많은 귀신을 이끌고는 오에산을 거점으로 자주 [[교토]]에 출몰해서 젊은 귀족의 부인들을 납치해 곁에서 시중들게 하거나 칼로 잘라 생으로 먹어 치웠다고 한다. 너무나도 심한 악행을 일삼는 그를 보다 못한 천황의 명으로, 라이코(賴光)라는 별명으로 불린 [[미나모토노 요리미츠]]를 주인으로 하여 [[와타나베노 츠나]], [[사카타노 킨토키]], 우스이 사다미츠(碓井貞光, 954~1051), 우라베노 스에타케(卜部季武)의 '[[요리미츠 사천왕]]'에 의해 토벌대가 결성되어 결국 퇴치되었다. 이 때 이바라키도지는 와타나베노 츠나와 싸우고 있다가 슈텐도지가 토벌되는 것을 보고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여 퇴각, 유일하게 살아남았다고 한다. 슈텐도지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이바라키도지가 여자 귀신으로 슈텐도지의 연인이었다는 설이나, 슈텐도지의 아들이었다는 설이 전해진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