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방인(소설) (문단 편집) == 해설과 이해 == 삶의 부조리란 개인의 욕구와 사회의 현실의 불일치에서 오는 것이며, 이 부조리를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인간의 기본조건이라고 카뮈는 역설하고 있다. 뫼르소는 여러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고, 어머니의 죽음이나 애인과의 사랑에서도 별다른 의식을 못하고, 죽기 직전에서야 의식이 깨어나고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 이 작품의 아이러니이자, 백미, 그리고 비극적인 면모다. 마지막 장면을 통해, 뫼르소는 인간의 기본적 깨달음을 성취한다. [[민음사]] 판본 뒤 표지에는 '진실을 위해서는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순교자 뫼르소'라고 명시했다. 진실을 위해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것은 뫼르소의 성격에서 우러나는 것인데, 예컨대 뫼르소는 아랍인을 쏜 게 뜨거운 태양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 뫼르소의 변호사는 뫼르소의 감형을 위해 최대한 말이 되게끔 맞출 것을 제안했으나 뫼르소는 "아뇨,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라며 거짓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뿐만이 아니라 뫼르소는 작중의 어떤 사건이나 서술에서도 거짓을 거부하는 정의를 따르고, 작중 모든 일반인의 시점에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그 특유의 고집 아닌 고집을 부리기에 결국 사형을 언도받게 된다. 뫼르소는 세상 일에 별 관심도 없다. 어머니의 죽음마저도 대수롭잖게 여긴다. 이러한 뫼르소의 무감수성은 현대인의 모습을 잘 반영한 [[실존주의]] 문학의 면모라고 볼 수 있다.[* 정작 카뮈 본인은 스스로를 실존주의자가 아니라고 여겼다. 실존주의가 본질에 선행하는 실존([[장폴 사르트르]])을 강조했던 반면, 카뮈는 스스로의 의지로 어쩔 수 없는 존재 자체의 부조리함에 맞서는 인간의 자세를 탐구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어느 작품이 안 그렇겠냐마는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도 카뮈의 작품이나 철학을 해석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문장 자체는 간결하고 구어체로 쓰인 덕분에 어렵지 않은 편이다. 이 작품을 읽은 평범한 프랑스인들은 대부분 자신도 소설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느낌을 받을 정도이다.] 작품 내에 수많은 상징적 장치가 있고, 부조리에 대한 깊이 있는 철학적 통찰이 깔려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윤리 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를 그대로 읽으면 주인공은 그저 '부모의 죽음에 슬퍼하지도 않고, 살인을 저지르고도 아무런 죄책감을 느낄 줄 모르는 [[소시오패스]]'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볼 수도 있다. 사실 작품성은 차치하고서라도, 이 작품의 철학적 사고관을 독자가 이해한다 한들 작중 인물이 누구나 공감하기는 어려운, 범상치 않은 느낌을 주는 건 맞다. 그러나 삶의 살과 열기 속에서 뿌리 박힌 실존의식을 감각의 가능성 및 그것에 대한 소화, 반응에 대응하는 작중의 자아의 부유하는 정체성에 감정이입을 해보면 작품의 의미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카뮈의 철학을 더 쉽게 이해하려면 여러 전문가의 서평을 참고하여 책을 해석하는 것도 좋다. 이방인을 이해하기에 가장 적합한 책은 저자의 철학 에세이인 「시지프 신화」이며 이 두 권을 같이 읽는 것이 「이방인」을 이해하기에도, 카뮈 철학을 알기에도 좋다.[* 카뮈는 하나의 주제를 묶는 방식으로 소설과 철학책, 희곡을 썼다. 부조리라는 공통적 주제를 다루는 내용이 이방인과 시지프 신화이고, 유사하게 집단적 반항을 다루기 위해 소설 [[페스트|「페스트」]]와 철학서 「반항하는 인간」을 썼다.] 물론 이 에세이 역시 만만하지는 않다. 심도 있게 읽으려면 균형 잡힌 서평 혹은 해설서와 함께 며칠 붙잡고 읽거나 아예 문학을 전공한 사람에게 설명을 부탁하자. 원한다면 「시지프 신화」와 「이방인」을 엮어서 설명해 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