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봉상 (문단 편집) === 죽음 === 1728년(영조 4년), [[이인좌의 난|이인좌(李麟佐)가 반란을 일으켜서]] 청주를 함락하였을 때 포로로 잡혔다. 이 때 이인좌는 상여에다가 병기를 실어 청주 경내에 들여보냈는데, 민간에서 적이 이르렀다는 말이 무성하고 이봉상에게 보고한 병사도 있었으나 이봉상은 이를 '''믿지 않았다.''' 결국 성 안의 관리들 가운데 호응하는 사람이 많았고, 밤중에 적이 쳐들어오자 영기(營妓, 병영 소속의 기생) 월례(月禮)[* [[국조인물고]] 홍림전에선 월녀(越女)란 이름으로 나와있다.]와 이봉상이 친하게 지내고 믿던 비장(裨將) 양덕부(梁德溥)가 문을 열고 적군을 끌어들였다.[* 즉 이 둘이 반란군에 가담했던 것이다. 결국 둘 다 참수형을 당한 뒤 효시되었다. 양덕부는 숙종 시절에 [[상당산성]]을 개축할 때 공사에 참여하기도 했고 이러한 연유로 상당산성 동쪽 암문 안의 돌에 그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2015년 [[http://www.cb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3086|충북 지역 신문의 기사]]에 따르면 근래에 누군가가 쪼아버렸다고 한다. 이름 왼편에 있는 패장한량(牌將閑良)이란 글자는 멀쩡히 남아있다.] 이봉상은 밤중에 당황하여 침상 머리에 두었던 칼을 찾았으나 월례가 숨긴 탓에 찾지 못하고 적에게 끌려나와 칼로 위협당하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이봉상은 '''“너는 [[이순신|충무공]](忠武公) 집안에 충의(忠義)가 서로 전해져 오고 있음을 듣지 못했느냐? 왜 나를 어서 죽이지 않으냐?”'''라고 세 번 외치고 살해당했다. 충청병영 소속 군관이던 홍림(洪霖)[* [[1685년]]~[[1728년]]. 사후 호조참판 증직.]이 달려와서 이봉상 위에 엎드리며 "내가 진짜 절도사다."라고 외쳤는데 적이 끌어내서 항복하라고 협박했지만 그 역시 욕을 퍼부었다. 이인좌는 "너는 충신이다. 죽이고 싶지 않지만 나를 죽일까 염려되니 죽인다. 일이 성사되면 후손을 녹용(錄用, 사람을 골라서 씀.)하겠다."고 칭찬했으나 홍림은 "나는 아들이 없지만 있어도 너 같은 역적에게 등용되지 않는다!"[* 아들이 2명 있었는데 모두 요절했다. 다만 청주목의 기첩(妓妾)이 낳은 [[유복자]] 홍한구(洪漢龜)가 있어서 면천되고 장성한 후 녹용되며, 홍림의 손자 홍경(洪儆)과 증손자 홍주구(洪疇九), 현손자 홍석붕(洪錫鵬) 역시 녹용되었다.[[http://sjw.history.go.kr/id/SJW-H24100250-02500|#]]]고 소리친 뒤 죽었다. 이 때 청주영장 남연년(南延年) 역시 "내가 나라의 후한 은혜를 입었고 나이 70이 넘었는데[* [[1653년]] 음성 출신. 이봉상이 태어난 해에 과거에 합격했다고 한다. 사후 이봉상과 똑같이 좌찬성에 추증되었고 숭선군(崇善君)이란 군호를 받았다.], 어찌 개새끼(狗子)[* 실제 실록에 욕설이 필터링되지 않고 들어가 있는 드문 사례이다.] 같은 너희를 따라 반역을 하겠느냐?"고 하며 죽었다. 어사 이도겸(李道謙)이 청주에서 돌아와 그 순절을 전했다. 이봉상의 숙부 이홍무(李弘茂) 역시 이 무렵 64살의 노구였는데, 반란군에 붙잡혀 감옥에 갇히자 음식을 먹지 않다가 죽었으며 역시 벼슬이 추증되었다. 나중에 [[박문수]]의 보고에 따르면, 군관 홍림의 [[첩]] 해월(海月)은 본래 충청 병영에 있던 [[기생]]이었다가 홍림의 첩실이 되었는데, 병영이 함락되고 이 소식을 알게 된 해월은 몰래 [[뇌물]]을 주고 남편의 시신을 찾아내서 장사지내주려 했다. 이때 이봉상 역시 들어갈 관이 없이 방치된 것을 알자 홍림의 시신은 베로 싸고 이봉상의 시신을 관에 넣어 숨겼다고 한다. 이후 해월은 의로운 일을 했다고 하여 면천되었다. 홍림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던 그녀는 [[유복자]]로 아들을 낳아 키웠는데 그만 아들도 7살에 요절하고 말았다. [[절망]]한 그녀는 삶의 희망을 잃고 [[자살|스스로 남편과 아들의 뒤를 따랐으며]] 이후 [[열녀]]로 받들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