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상(작가) (문단 편집) === 일본 유학과 사망에 이르기까지 === [[1936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변동림과 [[결혼]]한 이상은 서구화된 문물에 익숙해지고 새 출발을 하기 위해[* 이상이 도쿄로 떠나기 직전 도쿄에서 유학 생활을 하고 있었던 [[김기림]]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문학은 그만두겠지요 라고 적기도 하였다.] [[1937년]] 어느 날, 무작정 [[도쿄도|도쿄]]로 여행을 떠났으나,[* 이미 전에 [[도쿄도|도쿄]]에 가 본 적이 있던 변동림과 구본웅은 이상의 [[도쿄도|도쿄]]행을 결사반대했기 때문에, 새벽 열차를 타고 몰래 [[도쿄도|도쿄]]로 갔다고 한다.] 이내 [[도쿄도|도쿄]]에 실망하고 서울로 돌아가려고 한다. 이상이 느낀 도쿄에 대한 실망은 그의 소설 '실화'에 잘 드러나있다. >그러나저러나 동경 오기는 왔는데 나는 지금 누워 있소그려. 매일 오후면 똑 기동 못 할 정도로 열이 나서 성가셔서 죽겠소그려. > >'''동경이란 참 치사스러운 도십디다.''' 예다 대면 경성이란 얼마나 인심 좋고 살기 좋은 '한적한 농촌'인지 모르겠습디다. > >어디를 가도 구미가 당기는 것이 없소그려! 꼴사납게도 표피적인 서구적 악습의 말하자면 그나마도 그저 [[화학식|분자식]](分子式)이 겨우 여기 수입이 되어서 진짜 행세를 하는 꼴이란 참 구역질이 날 일이오. > >'''나는 참 동경이 이따위 비속(卑俗) 그것과 같은 물건인 줄은 그래도 몰랐소. 그래도 뭣이 있겠거니 했더니 과연 속 빈 강정 그것이오.''' > >한화휴제(閑話休題)[*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함. 어떤 내용을 써 나갈 때 한동안 다른 내용을 쓰다가 다시 본래의 내용으로 돌아갈 때 쓰는 말이다.]―나도 보아서 내달 중에 서울로 도로 갈까 하오. 여기 있댔자 몸이나 자꾸 축이 가고 겸하여 머리가 혼란하여 불시에 발광할 것 같소. 첫째 이 가솔린 냄새 미만(彌蔓) 넘쳐흐르는 것 같은 거리가 참 싫소. >----- >[[김기림]]에게 쓴 편지 중 일부, [[https://ko.m.wikisource.org/wiki/%EA%B9%80%EA%B8%B0%EB%A6%BC%EC%97%90%EA%B2%8C_6|1936년 11월 29일자]] 하지만 [[도쿄도|도쿄]]에 도착한 후 폐결핵이 악화되었고, 새 출발의 발판 기점으로 삼으려고 했던 [[도쿄도|도쿄]]에 대한 환멸감을 느껴 자괴감에 시달리게 된 이상은 조선에 "다른 사람들을 볼 면목이 없다."고 적힌 편지를 보낸 후 햇빛도 들지 않는 싸구려 방을 얻어서 홀로 은거해 버린다.[* 이상이 죽기 직전 연거푸 남긴 3편의 문학작품 중 하나인 '봉별기'에는 '산호 채찍(瑚鞭)을 잃어버렸다'란 구절이 있다. 호편은 이상의 자아를 붙들어주는 도구이자 수단으로 빗대어져 있다.] 그리고 그 직후 도쿄에 온 지 몇 달도 안 된 시기인 1937년 2월, [[도쿄도|도쿄]]에서 [[불령선인]](사상불온혐의)으로 체포되어, [[도쿄도|도쿄]] 니시칸다(西神田) 경시청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지금의 [[치요다구|치요다]] 일대. 이상 외에 2·8 독립선언식의 11명 대표 중 한 명이었던 윤창석과 김철수 등이 구금되었던 경찰서로 알려져 있다.][* 잡힌 이유도 별다른 혐의가 있던 것이 아니라, 그냥 산발하고 꾀죄죄한 [[폐인]]의 모습으로 다니는 게 수상쩍어서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심한 병(폐병) 때문에 [[보석(법)|병보석]]으로 한 달 만에 석방됐고, [[도쿄대학|동경제국대학]] 부속 병원에서 4월 17일 새벽 4시에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었다.[* 당시 이상을 담당했던 [[일본인]] 의사의 말에 의하면, "어쩌면 젊은 사람을 이렇게까지 되도록 버려 두었을까? 폐가 형체도 없으니..." 라고 말했다는 기록이 있다. 참고로 이상은 엄청난 [[골초]]였다. 하루에 담배를 50개피 피는 것을 자신의 일과라고 표현했을 정도.] 이상의 부고를 듣고 급히 [[도쿄도|도쿄]]로 온 변동림이 그의 유해를 화장하여 미아리 공동묘지에 묻었으나, 돌보는 이가 없다가 [[6.25 전쟁]] 후 미아리 공동묘지가 사라지며 유실되었다.[* 18일 전에 폐결핵(+α)으로 숨진 절친 [[김유정(소설가)|김유정]]과 합동 영결식을 했으며, 김유정의 형제 및 조카들과 [[김유정(소설가)|김유정]]과 친한 사이였던 (후에 월북하는) 소설가 안회남이 영결식을 했다. [[김유정(소설가)|김유정]]의 유해는 화장하여 한강에 뿌리고, 이상은 미아리 공동묘지에 묻혔다.] 후기 작품인 <종생기>에서는 자신의 최후를 썼다. 작품 속에는 자신 스스로 자신의 묘비명을 직접 쓰는 부분이 나오는데, 여기서 1937년 음력 3월 3일을 생년과 대입해 보면 놀랍게도 실제 사망 일시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일세의 귀재 李箱은 그 通生의 대작(終生記) 한 편을 남기고 '''서력 기원후 1937년 丁丑 3月 3日 未時''' 여기 백일 아래서 그 파란만장(?)의 생애를 끝막고 문득 卒하다. 향년 만 25세와 11개월. 오호라! 상심 크다. 허탈이야. 잔존하는 또 하나의 李箱 구천을 우러러 호곡하고 이 寒山 一片石을 세우노라. 애인 정희는 그대의 몰후 수삼인의 비첩된 바 있고 오히려 장수하니 지하의 李箱아! 바라건댄 명목하라. 다만 공인된 생년인 1910년 8월 10일과 1937년 3월 3일을 계산하면 25세 11개월이 아니라 26세 6개월이 나오는데, 작품에서 완벽하기로 소문난 이상이 자신의 생몰을 틀린 것은 실제 생년이 잘못되었거나, 아니면 죽기 직전 이상의 판단 착오일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의 [[유언]]은 "[[레몬]] 향기가 맡고 싶소"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후일 이상의 아내였던 변동림이 "[[멜론|메론]]이 먹고 싶다"[* 비교해보면 ㄹ, ㅁ이 바뀌었고 향기에 대한 얘기도 아래 글에 있는 걸 보면 완전히 없는 말을 지어낸 건 아니고 중간에 잘못 알려졌을 가능성이 높다.]였다고 술회하였다. 다음은 이상의 마지막 모습을 회고한 아내 변동림의 글이다. > 나는 열두 시간 기차를 타고 여덟 시간 연락선을 타고 또 스물네 시간 기차를 타고 동경에 닿았다. 동대 병원 입원실로 직행하다. 이상의 입원실, 다다미가 깔린 방들, 그중의 한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이상이 거기 누워 있었다. 인기척에 눈을 크게 뜨다. 반가운 표정이 움직인다. 나는 무릎을 꿇고 그 옆에 앉아 손을 잡다. 안심하는 듯 눈을 다시 감는다. 나는 긴장해서 슬프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살릴 수 있나, 죽어간다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상은 눈을 떠보다 다시 감는다. 떴다 감았다. 귀에 가까이 대고 "무엇이 먹고 싶어?", "셈비끼야[* Sembikiya 혹은 센비키야 Senbikiya. 일본에서 고급 과일과 과일 디저트를 판매하는 명품 상점 이름. [[1834년]]에 도쿄에 오픈해서 현재까지도 영업하고 있는 [[노포]]인데, 1910년대에 이미 센비키야의 멜론은 가게 대표 상품이자 당시 고급 과일의 대명사였으며 2019년에도 멜론 한 통이 최소 2만엔(20만원)이다.[[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macforever&logNo=221583939142&categoryNo=32&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kr%2F|#]] [[스튜디오 지브리]]의 [[추억은 방울방울]]에서 아버지가 파인애플을 사 왔다는 그 "긴자의 센비키야"와 같은 가게이다.]의 메론." 이라고 하는 그 가느다란 목소리를 믿고 나는 철없이 천필옥[* '셈비키야(千疋屋)'를 한자 그대로 읽은 것이다.]에 메론을 사러 나갔다. 안 나갔으면 상은 몇 마디 더 낱말을 중얼거렸을지도 모르는데. 멜론을 들고 와 깎아서 대접했지만 상은 받아넘기지 못했다. 향취가 좋다고 미소 짓는 듯 표정이 한 번 더 움직였을 뿐 눈은 감겨진 채로. 나는 다시 손을 잡고 가끔 눈을 크게 뜨는 것을 지켜보고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김향안 에세이 ‘월하의 마음’ 397쪽 중) 그의 생가는 [[종로구]] [[청운효자동|통인동]]([[서촌]])에 있다.[* 정확히 말하면 생가의 일부 위에 지어진 집이다. 실제 생가는 이상 사후 판매되어 필지로 분할되고, 그 위에 여러 집이 지어졌기 때문. 그래서 과거에는 생가로 알려진 그 집이 연구를 통해 생가가 아님이 밝혀졌고, 이에 대한 논란이 확대되어 지정문화재에서 해제되기도 했다. 따라서 생가라는 표현은 엄밀히 말하면 틀린 말이다.] '이상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유산국민신탁에서 이상의 생가를 현대적으로 복원하여 현재 생가에서 이상의 생애와 작품들을 알리고 있다. 이상이 살아생전 지은 시들과 소설, 삽화의 스캔본을 열람할 수 있다. 2018년 12월에 [[라이엇 게임즈]]의 후원으로 새롭게 재개관하였다. [[https://game.donga.com/92825/|관련 기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