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상(작가) (문단 편집) == 여담 == * 그의 아내 변동림은 [[1916년]]생으로 6세 연하였다. 이복 언니 변동숙이 있었는데 변동숙은 예술가 구본웅[* 발레리나 [[강수진(발레리나)|강수진]]의 외할아버지이다. 구본웅의 딸 구근모의 딸.]의 계모였다. 구본웅의 주선으로 이상과 결혼했으나[* 즉 이상 입장에서 보면 친구의 이모(혈연관계는 없지만)와 결혼한 셈이다. 이모인데 연하라는 점이 이상해보일 수 있는데, 아버지 변국선(卞國璿)이 늦은 나이에 얻은 첩에게서 낳은 딸이라 자매의 나이차이가 무려 26살이라서 그렇다. 거의 모녀지간 수준의 나이차. 구본웅의 계모 변동숙([[1890년]]생, 1910년 구본웅의 아버지에게 재취 결혼)이 본부인 소생이며 소실 소생 1남2녀 중 장녀가 변동림이다.] 이상이 일찍 죽은데다 도쿄에 가서 떨어져 지낸 시간을 감안하면 실질적으로 결혼생활을 한 기간은 고작 4개월. 그래서인지 자식을 보지 못했다. 연인이었던 금홍이처럼 그녀 역시 이상의 소설에 '임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이상과 [[사별]]하고 7년 후인 [[1944년]] 화가 [[김환기]]와 [[재혼]]했고, 남편 김환기의 이전 호를 따서 김향안(金鄕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그 이름으로 프랑스 [[소르본 대학]]과 에콜 드 루브르 등에서 미술을 공부해 미술평론을 쓰기도 했다. 김환기와의 사이에서도 자녀는 없으며,[* 전처 소생의 딸 셋과 재혼 후 입양한 아들 한 명이 있다.] 1974년 김환기가 사망한 후에는 사비로 [[서울특별시]] [[종로구]] [[부암동(종로구)|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설립했는데, 국내 최초 사설 기념관이다. 이상의 자취를 정리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88세까지 장수하고 2004년 사망했다. 그녀를 다룬 창작물로는 소설 <천재들의 초상>, [[뮤지컬]] <[[라흐헤스트]]>가 있다. * [[조선총독부]]에서 건축기사로 일을 한 경력이 있으니 [[공무원]] 출신이다. 현재의 건축직 혹은 토목직의 선배 공무원 격(?)이라고 볼 수 있다. * 조선총독부에서 일했다는 점 때문에 [[친일반민족행위자]]라는 주장도 있지만, 이상은 [[전체주의]]와 [[군국주의]]를 매우 혐오했다. 절대로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아니며, 가난한 집안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기를 원했던 부모님의 뜻과 생계 문제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조선총독부에서 근무했을 뿐이다. [[일제 강점기]] 당시에는 많은 조선인들이 생계를 위해 일본인에게 협조하는 척이라도 하거나 혹은 강제로 징용, 징병되어 일해야 했기 때문에 친일반민족행위자의 판별은 매우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한다.[* 아마 일찍이 해외로 나갔던 몇몇 조선인을 제외하면, 심지어 독립운동가도 포함해서 이렇게 일제에 협조하는 척이라도 하지 않은 인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 수기 없는데 뭐 어쩌겠는가.] 따라서 일제의 공공기관이나 공기업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만으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고위직으로 활동하거나[* 당시에 조선인은 식민지 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으면 절대로 고위직이 될 수 없었다.] 독립운동가들을 검거 및 고문했거나 [[일본군 위안부|위안부]]와 강제징용자를 모집하러 다닌 게 아닌 이상 말단급 사무직이나 기술직으로만 일했던 사람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보기엔 무리가 있다. * 상기 관련하여 이상 사후 1960년대에 그의 여동생의 잡지 인터뷰에 따르면, 오빠는 전체주의이면서 군국주의였던 일본을 국가적인 관점에서는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일본 사람이나 일본 문화라고 특별히 싫어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 이상은 조선총독부에 근무했을 때도 한 일본인 상사와 코드가 잘 맞아 친하게 지냈다고 하며, 작품 대부분도 일본어로 썼고 동시대를 살았던 일본인 작가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를 동경했으며 작품 내에도 일본 문화가 많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이상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일제식 교육을 받고 성장한 시대적인 환경에 맞게 살아온 일제강점기의 평범한(?) 시민일 뿐이며, 이상에게 반일 의지가 안 보인다고 해서 친일파라고 보기에도 무리가 있다. * [[경술국치]] 이후에 태어나, 일생 전체를 일제강점기 때 보냈다. 이는 [[윤동주]] 등도 마찬가지이다. * 이상이 죽기 전 당시 서양화가 길진섭이 이상의 데스 마스크를 떴다는 소문이 있다. 하지만 길진섭이 1948년 [[월북]]해버려 그 진위는 불투명하다. [[김연수(작가)|김연수]]의 장편소설 "꾿빠이 이상"에도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 김기림에게 보낸 편지에서 르네 클레르의 '유령은 서쪽으로 간다(1935)'를 잡동사니라며 깠다. '르네 클레르, 똥이나 먹으라지요'라는 부분이 압권. * 뉴스에 따르면 이상의 친필 [[http://news.donga.com/3/all/20140723/65379976/1|연애 편지]]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편지는 후일 작가 [[지하련|이현욱]][* 필명 지하련. [[임화]]의 두 번째 아내이다. 재미있게도 임화는 이상의 고보 동기였으나, 이들이 교류했다는 흔적은 없다.]이 최정희에게 보낸, 특이하게 여자가 여자에게 쓴 연애편지로 밝혀졌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10220500001|기사]][* 이현욱(지하련)이 레즈비언이란 말이 아니다. 이현욱은 자기가 밀어붙여 부모의 반대에도 애딸린 이혼남 임화와 결혼하고 그 난봉질을 다 참아 넘기고, 같이 월북해서, 임화가 숙청당한 뒤에도 끝까지 임화를 그리워하다 객사한 이성애자다. 한국인 여성 최초 세계일주를 한 신여성 백신애와 이현욱이 주고받은 편지도 요즘 시선으론 연애편지다. 이광수 아내 허영숙이 대놓고 학창 시절에 남보다 못하지 않게 했다고 밝혔을 정도로 이 시절 신여성들 사이에서 동성애에 대한 인식은 지금과 달랐다. 1920~30년대 여학교에서 동성애는 성적 지향과 별개인 자연스러운 유행이었다.] * [[SCP 재단]] 세계관에서는 [[http://librewiki.net/wiki/SCP-937-KO|SCP-937-KO]]라는 번호가 붙여진 수석의 원 주인이었다. 이상의 평소 행실과 대상의 특성을 비교해보면 꽤 흥미롭다. 수석을 '날개'라고 부른 것과 나중에 '날개'라는 소설이 나오고 거기서 나오는 날개의 의미를 비교하면 더더욱. * 그 당시 화가 [[구본웅]]과 같이 다니는 것을 그린 만평에서는 옷 잘입는 멋쟁이 '스타일리스트'로 평가됐다. 지금 봐도 옷 맵시나 헤어스타일이 꽤 멋있는 편이다. 다만 당시 사람들이 '''창백한 피부의 퀭한 남자가 [[구본웅|꼽추]]와 함께 다니는 모습'''을 보고 '''서커스단'''이 들어왔나 착각한 적도 있다. * [[구본웅]]은 '친구의 초상'이란 제목으로 이상의 초상화를 그렸다. [[파일:external/sunjooschool.com/M-1.jpg]] 친구의 초상, 캔버스에 유채 65 x 53cm, 1935년.[* 실물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며 이따금 근현대미술과 관련한 전시에서 볼 수 있다.] 민음사에서 출간한 이상 단편소설 전집의 표지가 이 그림이다. 그리 크지 않은 그림이지만 당시의 다른 그림들과는 다르게 음울하면서 묘한 색기가 보는 이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일각에서는 이 그림을 두고 이상과 구본웅의 동성애적 관계를 암시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 수능 및 모의고사 출제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attachment/ogd001.jpg|width=100%]]}}}||{{{#!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ogd002.png|width=100%]]}}}|| || 2003 수능 언어영역 출제 || 2009 교육청 모의고사 출제[* 숫자가 좌우 반전이라서 이미지로 인용할 수밖에 없다.] || 2003년 수능 언어영역[* 현 국어영역] 문제의 경우 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의 내용과는 전혀 관계없는 문제로 출제되어 난이도가 높지 않았다. 본 시는 [[오감도]]의 제 4호다. 문제에서 말하는 '윗글'은 '예술의 본질은 무엇인가' 라는 내용이다. 위 문제의 답은 1번이다. '''[[다리 따위는 장식입니다|사실 보기로 제시된 이상의 시는 볼 필요도 없다]].'''[* [[수능]]이나 [[SAT]] 등의 시험에서 볼 수 있는 법칙으로, 주어진 글의 난이도와 문제의 난이도는 서로 반비례한다. 여기서는 지문이 어려우니 문제는 거꾸로 쉬운 것이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한자가 다수 포함된 고전문학의 단어 설명이 부실할 경우 100% 확률로 문학작품을 전혀 안 읽어도 풀 수 있다. 수능에서 한자독해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상의 시는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전형적인 시를 해제하는 관점에서 풀 수 있는 게 아니라 국어국문학과의 오랜 연구로 그나마 대부분 풀린 거고 그마저도 오감도는 미해결이다. 그런데 진짜 이상 시로 문제를 내면 출제 위원들도 오락가락할 것이다.] 1~5번 보기에서 적절하지 않은 것을 고르라고 했으니 그 중 가장 튀는 것(다른 지문과 비교하였을 때 오류가 있는 것)을 찾는 편법으로 풀 수 있다. 특히 3번 보기에선 독자들이 시인을 '미쳤다'고 표현했다 하였고, 5번 보기에선 편집진의 압력으로 연재가 중단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2번 보기에선 기존의 언어체계를 불신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아주 상식선에서 생각했을 때 이 보기중 적어도 2개가 맞다면 이 시가 1번 보기에서 주장하는, 그 당시 현대시의 주류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굳이 헷갈린다면 3번 보기와 헷갈릴 수도 있는데 그때 이 시를 보면 된다.[* 배배 꼬고 의미불명의 표현법을 사용한 작품이 보통 당대에 인기가 있고 주류가 되었던 경우는 [[파블로 피카소]]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없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가정' 하에서] 이런 내용도 없어뵈는 이상한 시가 나왔을 때 일반 독자들에게 '미쳤다'는 평가를 받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만약 1번 보기가 적절했고 정말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시였다면 적어도 독자들에게 호불호는 갈릴지언정 미쳤다는 소리까지는 듣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2009년 7월 교육청 모의고사에서 시가 다시 한 번 등장했다. 다만 듣기평가 문항이었기에 해설을 들려줄 수 있었고 그 해설을 토대로 문제를 냈다고. 그 외에도 2006년 수능에 수필 '조춘점묘'가 등장했고 2014년 수능 국어영역에서 A,B형 공통문항으로 수필 '권태'가 마지막 지문으로 출제되었다. 소설인 [[날개(소설)|날개]]도 한번 나왔다. * ebs 지식채널e 에서 나온 간략한 그의 삶 [[https://serviceapi.nmv.naver.com/flash/convertIframeTag.nhn?vid=0EE9E5034EC92C4D681662EE1B296CDDB4EC&outKey=V12413f07294da2827476d96732a009e527a9f3544cc5fdd4c0e2d96732a009e527a9|#1]][[https://serviceapi.nmv.naver.com/flash/convertIframeTag.nhn?vid=1275FF28EDC40E02FC695CEFE6BDE3E2CE6D&outKey=V1264811a081a80ee9703b60b13538836e36e55c46f494fb1f07ab60b13538836e36e|#2]] * 기독교에 부정적이었다. 그의 시 BOITEUX BOITEUSE 등[* '[[십자가|CROSS]]에는 기름이 묻어 있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여러 곳에서 기독교에 부정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 다만 [[예수]] 자체는 긍정적으로 본 듯 한데, 연작시 [[조감도]]의 '2인····1····"과 '2인····2····'라는 시에서 악의 상징격으로 언급되는 [[알 카포네]]가 부와 권력으로 가난한 예수[* 시에서는 '기독'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를 조롱하는 듯한 일들을 하지만 예수는 그의 신념을 끝까지 지켰다는 내용이 나온다. 또한 수필 산촌여정에 따르면 누가복음을 좋아했다는 것으로 보아, 복잡한 종교관을 가졌던 것으로 보인다. * [[구인회]]의 일원으로 소설가 [[박태원(소설가)|박태원]], [[김유정(소설가)|김유정]] 등과 절친했다. 김유정과는 단순한 절친 수준이 아니라, 성애적 경지에까지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이상의 어떤 에세이에서는 김유정의 젖에 대한 언급을 하기도 했다. 다만 이상과 김유정 둘 다 금홍과 박녹주라는 여성들과 기구한 관계가 있었음과, 이상의 괴짜적인 면과 실제 성격을 생각하면 다소 장난으로 넣은 것일 수도 있다. * 상술했듯 지금 기준으로 봐도 상당히 괴짜스러운 인물이었으나, 마음은 무척 따뜻한 일면이 있었다. 그것이 특히 잘 드러나는 것이 이상이 본인의 여동생 옥희에게 보냈던 편지인 '동생 옥희 보아라'.[[https://ko.wikisource.org/wiki/%EB%8F%99%EC%83%9D_%EC%98%A5%ED%9D%AC_%EB%B3%B4%EC%95%84%EB%9D%BC|#]] 자신에게 제대로 된 말도 없이 연인과 이국으로 떠난 여동생의 선택을 존중하고, 격려하는 이상의 따뜻한 마음가짐이 아주 잘 드러나있는 글이다. 특히 편지 마지막 즈음의 ''''이해 없는 세상에서 나만은 언제라도 네 편인 것을 잊지 마라''''라는 구절은 이상이 여동생을 얼마나 아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