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상범(농구) (문단 편집) ==== [[안양 KGC인삼공사|안양 KT&G 카이츠-KGC인삼공사 감독 시절]] ==== [[파일:이상범 감독 박찬희 선수.jpg]] [[파일:이상범 KGC 감독 따봉.jpg]] 본격적인 감독 지휘봉은 2009-10 시즌부터지만, 감독대행 시절인 2008-09 시즌부터 사실상 감독생활이 시작된다. 이 당시 안양 KT&G의 상황은 상당히 암울한 상황이었는데, [[유도훈]] 감독이 구단과의 마찰 끝에 개막 2달을 앞두고 급작스럽게 퇴진하면서 팀 행보가 미궁으로 빠졌다. 전력상으로도 약체로 평가받던 팀이 수장까지 이탈했으니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을 리 만무한 상황. 그러나 이상범 감독은 오히려 이런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며, 어수선한 분위기를 추스르고 스피드 농구로 돌풍을 일으키고 시즌 초반에는 창단 이후 첫 5연승까지 달성하는 등 한 때 [[원주 DB 프로미|원주 동부]], [[울산 현대모비스 피버스|울산 모비스]]와 공동 선두까지 올랐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 3일 켈빈 워너의 부상 이탈과 함께 팀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PO 진출조차 장담하지 못하게 된다. 물론 이상범 감독은 성적 하락에도 선수들이나 구단 운영을 탓하기 보다는 자신을 탓하며 선수들을 격려하는 모습을 보이며 팬들에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 이는 선수단에게도 긍정적 효과를 가져왔는데, 자칫 초반 돌풍이 사그라 든 이후 위축될 수 있던 상황임에도 다시 한 번 힘을 내면서 결코 중위권 밑으로 내려가지 않았으며[* 이 당시 KT&G는 2012-13시즌에 필적하는, 아니 그보다 더한 부상 악령이 찾아왔다. 켈빈 워너를 시작으로 [[양희종]], [[은희석]], [[마퀸 챈들러]], 시즌 막판에는 [[김일두(농구)|김일두]]등 거의 선수단 전체가 전염병처럼 부상 망령이 옮겨붙었다. 이런 상황이면 진작에 PO에 탈락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 하지만 이상범 감독은 이런 상황에서도 선수들을 끝까지 지지했으며, 이로 인해 선수들은 오히려 감독의 믿음에 더욱 사기를 끌어올려 시즌 막판 양희종의 어깨 부상과 워너의 대마초 파동으로 인한 이탈 등 최악의 상황에서도 끝까지 PO 문턱에서 분투했다.] 하지만 결국 거듭되는 부상 악령을 극복하지 못하고 최종 성적 29승 25패로 정규리그 7위, 그것도 득실 공방에서 밀린 최초의 사례로 PO 탈락의 고배를 마시게 된다. 하지만 이 당시 KT&G를 비판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고, 이상범 또한 능력을 인정받아 정식 감독으로 승진한다. 하지만, 그는 김호겸 사무국장의 제안과 함께 KBL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리빌딩의 길을 하게 된다. 먼저 [[주희정]]을 [[김진(농구인)|김진]] 감독이 있는 [[서울 SK 나이츠]]로 트레이드하는 대신 [[김태술]]을 받아오는데 [[상무 농구단]]에 불합격으로 인해 공익으로 보낸다. 이미 [[양희종]]도 상무에 입대하면서 전력약화는 불보듯 뻔했다. 추가로 힘들게 뽑은 외국인 센터였던 나이젤 딕슨 또한 [[전창진]] 감독이 있는 [[부산 kt 소닉붐]]으로 트레이드하는 대신 2010 KBL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을 받아오게 된다.[* 이 당시에는 정말 감독직에서 잘릴 뻔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는 결국 2009-10시즌 극심한 성적부진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더군다나 2009-2010 시즌 종료 이후 모기업도 KT&G에서 KGC인삼공사로 바뀌게 되는데 리빌딩이라는 명목 아래 성적부진에 대한 우려가 있는지 구단관계자에 설득을 하기도 했다. 이 당시 KT&G는 KBL 역사를 통틀어도 역대 최악체 전력을 자랑했는데, [[대구 오리온스]]와 더불어 가장 유력한 꼴찌 후보로 꼽혔다. 성적은 예상대로 16승 38패로 창단 후 최악의 성적. 그러나 순위는 8위로 전력이나 팀 상황을 고려하면 상당히 선전했으며, 역사상 최악의 양극화 시즌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은 팀이었다. 실제로 2009년 한 해동안 10승 19패로 7위를 유지하는 등 전력에 비해서 상당히 선전했다.[* 어느 정도냐면 시즌 전 10승도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파다했다.] 하지만 2010년 첫 날 [[서울 삼성 썬더스]]와의 경기에서 63-71로 완패하며 추락이 시작되는데, 이 당시 KT&G는 무려 23개의 턴오버, 전반에만 17개의 턴오버를 범하며 스스로 무너졌고, 6위 삼성과의 격차는 5.5게임까지 벌어졌다. 이로 인해 좀처럼 화를 내지 않던 이상범 또한 "이건 마인드가 잘못된 수준 이하의 경기다. 이렇게 턴오버가 많아서는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참패다." 라며 이례적으로 강력한 질책을 가했고, 이후 2경기에서도 모두 완패, 3경기에서 59개의 턴오버를 남발했다. 결국 분을 참지 못한 이상범 감독은 1월 7일 [[원주 동부 프로미]]와의 75-93 대패 이후 "고등학생만도 못한 경기다. 농구 경기라고 볼 수도 없고, 우리 모두 프로자격이 없다."라며 부임 이래 가장 강력한 독설까지 가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 모든 시련을 참아내면서 2010 KBL 드래프트에서 원순위였던 1순위로 [[박찬희(농구)|박찬희]]를 선발했고 kt에서 양도받은 2순위로 [[이정현(1987)|이정현]][* 향후 16-17 구단 첫 통합우승 이후 KCC로 이적했는데 그 때 당시 지명했던 전창진 감독을 만나게 된다.]을 선발했다. 그렇게 맞이한 2010-11시즌. 그러나, 한창 리빌딩에 있던 시기였기에 이해도 성적부진이었다. 전 시즌과 같은 16승 38패의 성적으로 창단 이후 최악인 정규리그 9위로 시즌을 마쳤다. 이 시즌에는 경질설까지 불거지는 등 힘겨운 두 시즌을 거쳐야 했다.[* 오죽했으면 당시 연일 계속된 패배로 팬들의 비난이 두려워 숙소에서 나가지도 못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인고의 시간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 2011 KBL 드래프트에서 원했던 1순위로 중앙대 52연승 신화의 주역이자 국가대표 센터인 [[오세근]]을 지명하면서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3년 간 지속된 인삼공사의 리빌딩을 참아 내고, [[양희종]], [[김태술]], [[박찬희(농구)|박찬희]], [[이정현(1987)|이정현]], [[오세근]]과 같은 젊은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을 드래프트에서 지명한 끝에 2011-12 시즌 괜찮은 모습을 보여주면서 2016-17시즌 이전까지의 팀 사상 최고의 성적을 찍으며 정규 시즌 2위에 올려 놓았다. 다만, 전술 운용에 있어서는 다소 의문부호가 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그리고 시즌 막판 무성의한 경기[* 특히 2012년 2월 25일에 열린 모비스 전에서 3Q까지 64-43으로 이기던 가비지 게임을 뒤집히기도 했다!] 때문에 엄청 욕을 얻어먹기도 했다.[* 체력 안배를 위해서 4쿼터에 주전들을 모두 제외한 것은 정상참작으로 이해가 가능했다. 하지만 이후 점수차가 좁혀짐에도 아무런 조치도 치하지 않고 관망한 것은 [[승부조작]]이나 다름없는 망발이었다. 그리고 패배 이후에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 선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더욱 가열찬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이 과정에서 "이런 모습으로는 PO에서도 선수를 더 쓰긴 어렵다."라는 트롤링까지 벌이면서 사퇴 여론까지 일었고, 급기야 구단 홈페이지에 공식 사과문까지 올려야했다.] 우승을 위해서는 이상범을 쓰면 안 된다는 팬들도 제법 많았던 것이 사실. '''그러나 이러한 그의 행동은 모두 계산된 것이었다.''' ~~제갈상범으로의 변신~~ 그러나 이런 평가도 [[2011-12 KBL 챔피언결정전|2011-12 시즌 챔피언 결정전]]에서 전면 강압 수비와 체력과 힘을 위주로 한 공세로 정규시즌 1위이자 막강한 전력을 자랑한 [[원주 DB 프로미|원주 동부 프로미]]를 4승 2패로 누르고 창단 첫 우승을 일궈내면서 재평가받는 분위기. SBS 시절부터 팀을 지켜온 이상범 개인으로서도 첫 우승이라 감회가 남다를 듯 하다. 챔피언 결정전 우승으로 인해 주가도 올라 KBL 우승팀 감독이 맡게 되는 국가대표 팀 감독에 올라 [[2012 런던 올림픽]] 남자 농구 예선전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소속 팀인 KGC인삼공사와도 연봉 3억 5천만원에 3년 재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2013-14 시즌에 부진을 겪었다. 8연패도 겪어봤으며 10위도 겪어봤으나 2014년에 반짝 상승세로 7위에 올랐다. ~~8연패만 아니었어도...~~ 그러나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결국 실패하면서 [[2014년]] [[2월 22일]] 자로 경질되었다. 사유는 구단이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직으로 인해 팀에 전념하지 못하면서 외국인 농사 실패 및 부상이었다. ~~국대로 인해 경질된 비극~~ [[안양 KGC인삼공사|SBS / KT&G]] 농구단 '''프런트 출신'''의 ~~어감대~~ [[이동남]] 코치가 감독 대행을 맡아 잔여 2013-2014 시즌을 치른 뒤 2014-2015 시즌을 치렀다. 이후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농구 국가대표팀]] 수석코치로 선임되었다. 친정인 안양 KGC인삼공사를 떠난 후에는 2014 FIBA 농구 월드컵 대회와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에 코칭스탭으로 활약하면서 선진농구를 배웠으며 12년만에 아시안 게임 금메달에 공헌하게 된다. 한 때 [[부산 kt 소닉붐]] 등의 러브콜을 거절하고 국가대표 전임감독직을 노렸으나 해당 자리는 [[허재]]에게 돌아갔고 이상범 본인은 일본으로 건너가 프로팀, 고교팀에서 인스트럭터 일을 맡으면서 훗날을 기약했다.[[http://m.sports.naver.com/basketball/news/read.nhn?oid=076&aid=0003191414|DB발 태풍, 이상범 '지분'은 얼마나 될까]][* 이때 일본에서의 인연으로 훗날 [[나카무라 타이치]]를 데려오는데 성공했다.] 그 당시 대표팀에서 하지 못했던 지역방어를 가르쳐주며 실험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