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상일(축구)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1998년 아시아청소년대회에 출전한 바 있으며, 2000년에 [[벨기에]]의 [[KSK 베베런]]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아 합격해 1년 임대 후 이적이라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참고로 당시 각종 수당을 합쳐 월 6천 달러(당시 약 660만원) 정도를 제시받았다.] 여담으로 이 당시 소속팀인 [[중앙대학교]]와 협의 없이 독단적으로 팀과 계약했다가 문제가 되자 [[자퇴]] 형식을 거친 뒤 이적을 하게 되었으며, [[설기현]]과 함께 한국 선수 중 최초로 벨기에 1부 리그에서 활약한 선수가 되었다. [[파일:attachment/Lee_KSK_Beveren.jpg]] 입단 이후 2군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11월부터 1군으로 승격되어 프로 무대에 데뷔했으며, 이후 빠르게 적응하며 주전 자리를 다졌다. 2001년 1월 21일 [[로얄 앤트워프]]와의 경기에서 [[MVP]]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2월 18일 [[KAA 헨트]]와의 경기에서 자신의 프로 데뷔 첫 골을 넣었다. 이러한 활약으로 당시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거스 히딩크]]의 관심을 끌기도 했으나,[* 청소년 시절에는 무명에 가까웠던 만큼 이러한 성과가 더욱 돋보였다.] 타팀으로의 이적설로 인해 코칭스태프와의 관계가 냉각되어 시즌 종료 후 4년 계약으로 [[K 베이르스홋 VA|베이르스홋 AC]]로 팀을 옮겼다.[* 참고로 여기에는 팀이 재판에 회부될 정도로 재정적인 문제를 겪은 것도 한 몫 했다.][* 이 당시 월봉 20만 벨기에 프랑(당시 약 550만원)을 제시받았으며, 이후 1시즌이 지날 때마다 금액이 상승해 4년차에는 월봉 30만 벨기에 프랑(당시 약 850만원)을 받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별다른 활약을 선보이지 못하며 주전 경쟁에서 밀린 뒤 설상가상으로 부상까지 입었고, 리그에서 단 6경기에만 출전하는 부진을 보이며 2002 FIFA 월드컵 엔트리에 포함되지 못했다. 결국 시즌 종료 후 갓 창단한 [[대구 FC]]에 입단했으며,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2006년부터 팀의 주장을 맡아 활약하였다. 그 뒤 2007년 FA자격(* 이적료 5억5천만원 / 연봉 2억원)을 얻어 [[전남 드래곤즈]]로 팀을 옮겨 활약했으며, 2009년 [[김은중]] 등과 함께 [[중국 슈퍼 리그]]의 [[창사 진더]]로 이적했다. 이후 2010년 은퇴를 선언했다. [각주] [[분류:1979년 출생]] [[분류:대한민국의 축구선수]][[분류:미드필더]][[분류:대구 FC/역대 주장]][[분류:대구 FC/은퇴, 이적]] [[분류:전남 드래곤즈/은퇴, 이적]] [[분류:광저우 시티/은퇴, 이적]]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