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성산성 (문단 편집) == 상세 == 1989년 이래 2020년까지 발굴조사가 총 14차례 있었다. 이성산성에서는 [[하남 이성산성 출토 목간]]이 출토되었는데, 발견된 [[목간]]의 대부분은 신라가 이성산성을 지배했던 시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고구려 관직인 욕살을 언급한 목간이 나오기도 했는데, 이 목간도 신라가 제작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항목 참조.] 이성산성은 한때 [[백제]]의 수도 [[위례성]]의 후보지로 주장되거나[* 조선시대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 근현대 사학계의 거두 [[이병도]] 등이 주장하였다.], 고구려 축조설이 주장되기도 했다. 그러나 [[풍납토성]], [[몽촌토성]]을 발굴조사하여 백제가 축성했다고 확인했음과 달리, 이성산성에서는 신라 유물들이 대다수 출토되므로 신라 [[진흥왕]]이 한강 유역으로 진출한 [[6세기]] 중반 이후에 축조되었다고 보는 학자들이 대다수이다. 현재에도 백제성 축조설, 위례성 후보설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어서 [[최몽룡]] 교수는 왕성 이동설을 제기할 때 이성산성을 언급하기도 했고[* 풍납토성(1~ 2세기) - 몽촌토성(3 ~ 4세기) - 이성산성(4 ~ 5세기) - 춘궁동토성 순으로 이동했다는 설이다.], 심기원 [[한밭대학교]] 명예교수는 2020년 1월 남문 저수지에서 통일신라, 고구려 지층보다 앞서 백제 토기편이 출토된 점, 이성산성이 백제가 축조한 양천고성, 설봉산성, 설성산성과 유사한 점, 이성산성이 고구려 환도산성과 유사한 점을 들어 백제가 축조한 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남시라는 지자체 이름은 하남위례성에서 따온 것으로, 과거 이 곳이 하남위례성으로 추정된 데서 유래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