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성호(해군) (문단 편집) == 생애 == 1926년생으로 고향은 경기도 [[시흥시|시흥]]이다. 진해고등해원양성소([[한국해양대학교]]의 전신)를 졸업해 [[상선]]에서 근무하다가 1946년 [[조선해안경비대]] [[소위]]로 임관했다. [[1950년]] 6월에 [[중령]]으로 [[한국전쟁]]을 맞았다. 당시 해군에는 전투함이 4척이었는데, 이 중 1척의 [[함장]]을 맡았다.[* 뒤에 [[대한민국 해병대사령관|해병대사령관]]을 지내는 [[공정식]](개전 당시 [[소령]]) [[장군]]도, 해병대로 전과하기 전에는 PC의 함장을 맡았다.] 1957년에는 해군 작전참모부장, 1959년에는 해군 후방참모부장[* 보급, 경리 등의 업무를 총괄하기 때문에, 워낙에 [[청탁]]이 많이 들어오는 자리라서 본인은 기피했다.]에 올랐다. [[1960년]]에 해군참모총장[* 본래는 그와 동계급이었고 친구인 [[이희정]] 소장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했으나 그가 올랐다.]이 되었고 1962년에 전역했다. 해군을 드라이 네이비(Dry Navy)에서 웨트 네이비(Wet Navy)로 바꾼 인물로 해군 내에서 유명하다. 그는 해군참모총장에 오르자 다른 상선사관 출신들이 아직 많이 남은 해군 내에서 [[해군사관학교]] 1기 출신인 [[함명수]] 제독이나 [[이맹기]] 제독을 중용함으로 해군의 체질을 바꿨다. 그가 해군참모총장에 중용된데는 [[유엔군사령부|UN군]]사령부의 인식이 크게 작용했다. 드라이 네이비 출신들이 많은 탓에 해군에 군살이 많다고 여겨서 [[함장]]이나 [[함대사령관]]을 경험한 [[제독]]들로 해군의 상층부를 바꾸려고 한 것이다. [[5.16 군사정변]] 당시에 [[대한민국 육군]]의 [[영관급 장교]]들에게 [[하극상|암살당할 뻔 했다.]] [[대한민국 해군본부|해군본부]] 몰래 쿠데타를 진행하던 [[해병대]] 장교들이 그에게 찾아가 협조를 요구했으나 거절했던 탓인데, 이는 해병대가 육군 쿠데타 세력들에게 해군본부에 일절 언급조차 하지 않았으면서 자신들이 해군의 동의와 협조를 얻어냈다고 지휘부에 허위보고한 사고를 저질렀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막을 알 리 없던 이성호 제독이 "군인이 나라는 안 지키고 뭐하는 짓이냐?"며 화를 내며 거절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육군 장교들이 해군본부가 말을 바꾼다며 [[권총]]을 들고 난입했고 [[전속부관]]이 재빨리 그를 피신시켜 화를 면했다. 퇴역 이후 1962년부터 대한석유공사(현 [[SK이노베이션]])의 사장을 4년간 지낸 바 있었으며, 2009년에 생긴 비영리 사단법인 해군협회의 초대 회장이 되었다. 2019년 3월 27일 사망했다. [[ http://bemil.chosun.com/nbrd/bbs/view.html?b_bbs_id=10044&pn=1&num=217181&fb&fbclid=IwAR1q85jWsffRpCCldx0_kPLy_0J7WL56nhLwLxu8aGDV-FJzWSDvtbDakBM|기사]] [각주]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이성호,version=19)]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