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세호 (문단 편집) == 생애 == 1925년 경기도 개성군(현 [[개성시]]) 출생. [[송도고등학교]], [[육군사관학교]] 2기 졸업. [[제33보병사단]]장, [[제28보병사단]]장, [[제37보병사단]]장, [[제6군단]]장, 주월한국군사령관, [[제3야전군사령관]], [[육군참모총장]] 등을 역임했다. [[박정희]]의 [[육군사관학교]] 동기로 막역한 친구 사이[* 이세호 총장이 올린 인사안은 단 한번을 제외하고 [[박정희]]에게 반려된 적이 없었다고 한다. 단 한번이 바로 1976년 초 [[전두환]]이 [[경호실]] 작전차장보로 임명된 것으로, [[박정희]]가 [[이세호]]의 인사안을 반려하고 직접 지시하여 총애하던 [[전두환]]을 요직인 [[경호실]] 차장보로 임명했다. 이 인사를 계기로 [[전두환]]은 '[[박정희]]의 양아들'로 소문이 나기도 했다.]로 알려지며 무려 4년간 [[참모총장]]으로 재임하여 현재까지도 최장 기간 재임한 [[참모총장]]이다. [[1979년]] [[참모총장]]에서 퇴임한 후 [[대장(계급)|대장]]으로 예편하였다. [[전두환]]에게는 본의 아니게 은인이 되었는데, 이세호는 자신이 예편한 이후 [[보안사령부]]에서 [[보안사령관]] 직위를 기존의 [[중장]] 계급에서 [[대장(계급)|대장]] 계급으로 격상시키려 한다는 것을 들었다. 재임 시절 [[보안사령부]]의 권력 남용과 폐단을 인식한 이세호는 [[박정희]]에게 탄원서를 올려 권력 남용의 폐단을 막으려면 군 수사기관은 계급을 오히려 [[소장(계급)|소장]]으로 낮추어야 한다고 탄원했다. 이세호의 탄원서가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존 [[보안사령관]]인 [[진종채]] [[중장]]이 물러난 후 본래 [[보안사령관]]은 [[중장]] 보직인데 그것도 [[군단장]]을 거친 후인 2차적으로 맡는 보직인데 이제 막 사단장을 지낸 [[소장]] [[전두환]]이 1979년3월 전격적으로 [[보안사령관]]에 오르게 된 것이다.[* 1978년1월 청와대 경호실 나와 1사단장이 된 [[전두환]]은 1978.10.17 [[1사단]] 위수지역에서 [[똘이장군]] 제3땅굴 편(1978)의 배경이 되는 제3땅굴을 발견하게 되고 [[이세호]] [[육참총장]]의 제안으로 [[보안사령관]] 보직을 [[중장]]에서 [[소장]]으로 낮추면서 첫 케이스로 1979년3월 임명되자 술 한병을 사들고 뛰어와 [[이세호]]에게 '총장님 앞으로 잘 지도해 주십시오'라고 인사했다 한다.] 그야말로 파격적 인사였는데 이 인사 후 9개월이 지나 [[전두환]]은 [[보안사령부]]를 기반으로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켜 정권을 탈취한다. 전혀 자신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전두환]]의 정권 장악에 기여하게 된 셈. 과거 인터뷰에서 “그 후 갑자기 [[10·26 사건]]이 터지면서 [[보안사령관]]이 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대통령]]까지 되는 것을 보면서, 참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꼈다. 내 충정은 그런 뜻이 아니었는데, 본의 아니게 내 탄원서가 [[전두환]]의 권력 만들기에 일조를 해버린 셈이 되고 말았다"며 씁쓸한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1980년 [[전두환]]과 [[신군부]]([[하나회]])가 정권을 장악하자 구정권의 유력인사로서 부정축재 혐의로 몰려 재산을 강제 헌납당했으며[* 사실 [[이세호]] [[대장]]은 [[육군참모총장]] 재임 당시 하나회 출신 [[박희도]]와 악연이 있었다. [[박희도]]가 [[준장]]계급으로 진급한 뒤 공수1[[여단장]]에 처음 부임한 시기에 무장공비가 1여단의 위수지역을 마음껏 돌아다니다가 복귀에 성공한 사건이 발생했었다. 이때 [[이세호]] [[대장]]은 불같이 화를 내며 [[박희도]]를 [[보직해임]]하고 [[전역]]시켜버리려 했지만, [[박희도]]의 상관이자 [[육군특수전사령관]]인 [[정병주]] [[소장]]이 [[이세호]] [[대장]]에게 싹싹 빌어서 더이상 문책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리고 [[박희도]]는 이런 은인인 [[정병주]] [[소장]]에게 동서고금에 드물 정도의 '''[[12.12 군사반란|강력한 뒤통수]]로 보답했다.'''] 이후에도 [[신군부]]로부터 감시를 받았다고 한다.. 2013년 4월 28일 숙환으로 별세하였다. [[https://youtu.be/9Mp2o0hgdtk|안장식 영상]]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