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세황제 (문단 편집) == 최후 == 호해의 거듭된 실정으로 통일제국은 금세 분열되었고, [[고제(전한)|유방]]·[[항우]] 등의 세력들이 일어나 이들이 진나라의 수도 [[셴양시|함양]]을 향해 진격해 들어오면서 진나라는 초유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는데도 조고가 중간에서 보고를 차단한 탓에 호해는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조고의 모함에 제거당할 위기에 처한 [[장한]]이 항우에게 투항해 버리면서 더 이상 진나라를 지킬 힘이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유방의 군대가 함양 남쪽 무관에 이르게 되자 결국 조고는 호해에게 모든 것을 들키게 됨을 우려한 나머지, 사위인 염락과 함께 모반을 도모했다. 일부 기록에선 조고가 진나라를 유방한테 넘겨주고 대신 조나라를 받는 걸로 유방과 밀약을 맺을 의도로 호해를 죽였거나, 혹은 유방 쪽에서 일부러 조고를 충동질한 다음 시치미를 뗀 듯한 정황도 있다. 조고를 비롯한 대소신료들이 죄다 죽음이 두려워 입을 다문 결과, 결국 호해는 함양에 반란군이 입성하는 시점이 되어서야 돌아가는 상황을 깨닫게 된다. [[십팔사략]]에는 호해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호해: "어째서 [[반란|이런 일]]이 일어날 때까지 짐에게 미리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단 말이냐?"[* 사실 호해는 이 말을 할 자격이 없다. 호해 자신도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을 많이 죽였는데 예시로 진승의 난이 일어난 후 누군가 호해에게 이를 보고하자 벌컥 화를 내며 그를 가두었고 그래도 찝찝했던지 박사들과 유생들을 불러 의견을 물었더니 모두들 저 반란놈의 모가지를 날려버려야 한다고 대답했는데 이는 너무나 맞는 말이었지만 호해는 반란이 일어났다는 말 자체가 싫은건지 그들도 죽였다. 바른말 하는 사람은 자기가 다 죽여놓고 이 말을 하니 어이가 없는 일.] >시종: "구태여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무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신이 그걸 말하였다면 진작에 죽임을 당했겠지, 오늘날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겠습니까?" 염락이 군대를 이끌고 황궁을 포위한 후 병사들에게 끌려나온 호해에게 자결할 것을 강요하여 결국 호해가 자결을 하는 방식으로 살해되면서 2년의 치세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망이궁 정변'''). 《사기》에는 호해가 죽는 과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호해: "살려주시오. 황제가 아닌 한 지역의 왕으로서 조용히 살겠소." >염락: "안 되오." >호해: "그럼 일개 열후로 만족하겠소." >염락: "안 되오." >호해: "그럼 변경 산골에서 백성으로 살게 해 주시오." >염락: "안 되오. '''[[죽으면 되는 것이다|그대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죽음뿐]]'''이오." 포기하고 자결을 했는지, 끝까지 거부를 하다가 자결당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렇게 호해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호해는 염락의 강요에 자살했다고 사마천이 표현했으니 그도 호해를 그리 좋게 보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렇게 영호해는 자신의 아버지 진시황이 '황제' 칭호를 만들고 그 지위를 이어받자마자 중국 역사상 최초로 시해당한 황제가 되었다. 그것도 외적도 아닌 신하에 의해서.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