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순신 (문단 편집) == 역임 관작 == * 사후 추증된 관작 * '''유[* 한자는 '있을 유' 이지만 옛 한자 문법으로 말을 시작할 때 관용적으로 붙이는 글자로 영어로 치면 '[[the]]' 정도에 해당한다. 단순 문법으로 중국만 쓰라는 법은 없고 '有朝鮮' 등으로 쓸 수 있으며, 고려가 금석문에 '有高麗'를 많이 썼다.]명 수군 도독 조선국 증[* 추증받은 품계와 직위. 이순신에 대한 추증은 하도 여러 번 이루어져, 최종판이라 볼 수 있는 충무공 묘표를 따른다.] 효충장의적의협력선무공신 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영의정 겸[* 직위가 아니라 말 그대로 직위들을 겸했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영경연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관상감사 덕풍부원군 시[* [[시호]]란 뜻이다.] 충무공''' (有明 水軍 都督 朝鮮國 贈 效忠杖義迪毅協力宣武功臣 大匡輔國崇祿大夫 議政府 領議政 兼 領經筵 弘文館 藝文館 春秋館 觀象監事 德豐府院君 諡 忠武公) * 해석: * 명 직위: 수군 도독[*논란 최초 출전은 [[조선왕조실록]]이다. [[http://sillok.history.go.kr/id/kva_11707021_001|정조 38권, 17년 7월 21일(임자) 첫 번째 기사]]. [[명나라]]에서 도독 벼슬은 '정1품'이다. 다만, 이와 관련하여 실제로는 명 도독직이 수여된 것이 아니라는 논란이 있는데, 정작 수여를 한 명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명사(明史)와 명실록(明實錄)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충렬사에 소장된 도독인(印)의 글씨체도 다른 명나라 도독인의 글씨체와 전혀 다르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96&aid=0000342017|연구 결과]] 현대 학자들도 여러 의견이 상충되고 있으며, 명확한 진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보통 벼슬을 제수할 때는 현재의 계급과 보직에 해당하는 산직과 실직이 주어지게 되는데, 이 '수군 도독'이라는 벼슬은 보직에만 해당하고 '대광보국숭록대부'나 '특진보국삼중대광'과 같은 산계 즉 계급이 없다. 산직이 없이 실직만 가지고 있는 벼슬아치는 없기 때문이다. 해당 사항에 대해서는 '''[[이순신/논란]]''' 문서로.] * 공신호: 효충장의적의협력선무공신[* 선무공신은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운 신하들에게 내려졌는데, 그중 1등급이 효충장의적의협력선무공신이다. 한 등급이 낮아지면 두 글자씩 뺀다. 1등 공신을 받은 사람은 딱 3명인데, 이순신, [[권율]] 그리고 [[원균]]이다. 심지어 선조는 조정 신료들이 탐탁지 않게 여겼음에도 아득바득 우겨서 원균을 상기 등급에 봉한 반면, 이순신을 최고 등급 공신으로 봉하는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껄끄러워 하는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이미 공이 천하를 덮었고, 아무리 가리려 해도 가릴 수 없었기에 당연히 공신에 책봉되고 그것도 으뜸인 '''원훈'''으로 봉해진다. 공신 책봉 과정에서 선조가 보여준 모습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질투와 공포가 얼마나 막장까지 치달아 있었는지 잘 알 수 있는 부분이다.] * 품계: 대광보국숭록대부[* 정1품의 품계. 그것도 같은 정1품인 보국숭록대부보다 상위 품계이다. 조선에서는 [[삼정승]] 및 각부 [[영사]]만 이 품계를 가지고 있었다.] * 조선 직위: 의정부 영의정[* [[임진왜란]] 종전 직후에는 우의정, 그 후에 선무공신에 봉하며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영의정으로는 [[정조(조선)|정조]] 때 가증. 이때 정조가 말하길, "충무공이 돌아가신 이래로 아직까지 영의정에 봉하지 않은 것은 잘못된 일이다." 과연 조선 시대 충무공 1등 팬이라고 할 만하다.] 겸 영경연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관상감사[* 풀어쓰면 영경연, 영홍문관사, 영예문관사, 영춘추관사, 영관상감사이다. 영의정이 당연직으로 겸직하는 관직들이라 여기 같이 붙었다. 영의정이 겸직하는 관직 중에 세자시강원의 세자사(世子師)도 있지만 무관인지라 빠진 듯하다. 같은 품계를 추증받은 권율은 문관 출신이라 그런지 세자사가 같이 추증되었다. 이순신이 사후 받은 현대식 정의의 직위는 수군 도독, 영의정, 2가지다. 다른 영경연, 영홍문관사, 영예문관사, 영춘추관사, 영관상감사는 영의정이 오르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명예직들이다.] * [[봉호]]: 덕풍부원군[* 덕풍 지역의 [[부원군]]. 덕풍은 본관인 덕수(德水)의 별칭이다.] * [[시호]][* 역대 임금이나 공신들에게 내리는 이름이다. 문반은 '文', 무반은 '忠'으로 시작하는 시호가 가장 격이 높다.]: 충무공 ---- * 생전(전사 직전)의 관작 * '''행[* 행수법(行守法)에 따라 붙은 것이 아니고, 사후 증직이 되었을 경우 살아 있을 때 지냈던 관작 앞에 붙인다. 행수법을 쓸 경우 품계가 아니라 실무직 앞에 붙어 '정헌대부 행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야 한다.] 정헌대부 전라좌도수군절도사 겸 삼도수군통제사''' (行 正憲大夫 全羅左道 水軍節度使 兼 三道水軍統制使) * 해석: * 품계: 정헌대부[* 정2품의 품계로, [[고려]]와 마찬가지로 [[조선]]의 [[문민통제|문반우대]]를 보여준 예시로서 고위직을 문반이 장악하고 통제하기에 용이하고 군사 분야에서도 군 고위직에 문반들을 임명하는 것에 이상이 없게 하기 위한 장치다. 무반도 병마절도사가 되려면 종2품 가의대부 / 가선대부를 받아야만 한다. 무반 품계는 정3품 당상관인 절충'''장군'''이 최고이고, 그 이상으로 가려면 문반 테크를 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순신이 정유년 파직되기 전 품계는 정2품 상계인 정헌대부였다. 그러나 이후 이순신이 다시 복직될 때 품계는 정3품 절충장군인데 이는 선조가 "내 무슨 할 말이 있으리오."라며 겉으로는 사과를 하면서도, 한편으론 이순신에게 엿을 선사한 것이다. 오늘날 육군으로 치면 대장(진) 군사령관에게 반란죄 누명을 씌워 남영동 분실로 끌고가 물 고문하고 이등병으로 강등시킨 뒤 상황이 급해지니깐 다시 군사령관으로 복직시키면서 계급은 투스타로 준 격이다. 명량 해전의 기적 같은 대첩 이후에도 선조는 이순신의 품계를 올려주는 것을 꺼렸다. 1년 전만 해도 정헌대부의 품계를 받은 분이었기 때문에 그냥 기존의 품계를 돌려주면 되지만 선조는 끝까지 버틴다. 결국 [[명나라]] 경리 양호나 군문 형개 등이 끈질기게 선조를 압박하며 "이순신 장군의 벼슬을 올려주라"고 조르자 그제서야 정헌대부의 품계를 돌려주는 천하제일의 찌질함을 선보인다.] * 직위: 전라좌도수군절도사 겸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이 생전 받은 직위를 현대식으로 옮겨보면 직속 [[함대사령관]] 겸 [[해군작전사령관]] 겸 [[해군참모총장]]이라고 할 수 있다. 삼도수군통제사가 현대의 해군참모총장 개념이 아니라는 주장이 있는데 사실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긴 하다. 당시 편제를 봐도 각 함대의 사령(경상 좌/우수사, 전라 좌/우수사, 충청수사)이 각각 따로 있는 상태에서 5명의 수사(水使)의 총사령을 맡는 직책이며(이외 다른 수영은 삼도수군통어사가 지휘한다.) 수사가 삼도수군통제사보다 한 직급 아래(수사는 정3품, 삼도수군통제사는 종2품)라는 걸 감안하면 더욱더 해군참모총장보다는 해군작전사령관에 비유하는 게 맞는다. 현대 [[대한민국 해군]]도 [[대한민국 해군본부|해군본부]]가 아닌 [[해군작전사령부]]에 각 함대사령부와 작전전단의 지휘권이 있다. 다만 삼도수군통제사는 현대로 비유하면 군령권(작전권)과 군정권(작전 이외 교육, 인사, 기술행정)을 모두 가지고 있으므로 군정권을 가지는 해군참모총장이 군령권을 담당하는 해군작전사령관까지 겸임하는 경우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 상기된 80여 자의 기나긴 직위명들을 현대식으로 풀이하자면, 이 충무공은 생전에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으로서 장관급의 명예직에 상당하는 의전 예우를 받은 뒤[* 실제로 대한민국의 해군참모총장은 [[대장(계급)|대장]] 계급으로 장관급의 의전을 받는다. 그런데 조선 후기의 관직 체계상 통제사는 종2품직으로 차관급이며, 이순신이 칠전량 패전 이후 복귀할 때에는 정3품직으로 어쩔수 없는 전시 상황에 발탁된 것이지, 잘못된 모함에 대한 해결을 받지 못한 채 있었다. 다만, 삼도수군통제사 직이 만들어 졌을 때, 이미 이순신은 국방부장관이라 할 수 있는, [[병조판서]]와 동급인 정2품 상계 정헌대부의 품계였고, 또한 일시 파직으로 인해 몰수된 정2품 품계를 [[명량 해전]] 이후 명나라 경리 양호의 압박 때문에 선조가 돌려 주었으므로, 현대에 빗대봤을 때, 대장 계급으로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했다 봐도 무리는 없다. 게다가 현재 국군을 기준으로 봐도 비록 장관급 대우를 받긴 하지만 해군참모총장은 엄연히 장관인 국방부장관 아래다. 삼도수군통제사가 국방부장관 격인 병조판서의 바로 아래인 종2품이라는 걸 감안하면 종2품이더라도 현대의 해군참모총장으로 봐도 별 무리가 없다.], [[해군작전사령관]] 및 [[함대사령관]]을 겸직하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도 [[미합중국 해군|미 해군]] [[원수(계급)|원수]]직을 수여받은 셈이 된다. 나아가 사후에는 [[대한민국 훈장|대한민국장과 태극무공훈장]]을 수여받았고, [[총리]]급의 명예직과 예우를 수여받은 것이 된다. [[훈장(상훈)|훈장]]의 경우에는 다소 애매한 비유이지만[* 애초에 조선시대와 현대의 관직과 사후 추증을 정확히 대응하여 논할 수는 없다. 하지만 충무공의 사후 당시 충무공에 대한 위상이나 현재 대한민국에서 이순신에 대한 국민감정을 모두 고려해도 이러한 훈장이 무리라고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사후에 어떠한 대접으로도 이순신의 업적과 희생을 온전히 아우르긴 힘들다고 보는 편이 적절하다.], 수여된 관직들의 경우 일반인들이 쉽게 인식하는 현재의 관제로 비교하자면 위와 같은 셈이다. 여기에 덧붙이자면, 미 해군 대원수직[* [[친왕]]급으로서 당시 [[선조(조선)|선조]]와 동일한 [[품계]]다. 다만 실제 의전에서 황제의 친족인 친왕이나 제제후국왕 중 제일인 조선국왕과는 비교할 수 없다. 과거에는 친왕급이라는 데 착안하여 미 부통령직이라고 써놨는데 명 관직 체계에서 부통령에 비견할 만한 관직은 없으며 친왕 역시 부통령과는 다르다.]을 동시에 받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즉 군사적 업적을 인정 받아 예우에서 밀리지만 미국에서 명예 원수로 대우하는 셈이고, 죽은 뒤 200년 가까이 되어서 국무총리를 부여받은 격이다.[* 다만 동양 관직에서 최고직은 실제로는 비워 놓은 적도 있었던 점, 영의정이 아니더라도 좌의정만 있어도 의정부 운영이 가능한 점을 생각해보면 국무총리=영의정은 아니다. 삼정승이 합의해 국무총리직을 수행한 셈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