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순실 (문단 편집) == 생애 == 생년월일은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만 16세인 1982년에 고등중학교를 졸업 후 입대하였고, 2007년 42세에 한국으로 입국했다고 밝혔기 때문에 1966년생으로 추정된다. 이순실의 아버지는 군관이라 인민학교 4학년때 [[제2군단(북한)|2군단]] 사령부가 있는 황해도 평산으로 이사했고, 어머니는 북한군 군단장 요리사라 상대적으로 풍족하게 살아서 입대당시 여자중에 가장 키가 컸다고 한다. 형제는 이부형제 포함 11형제였다고 한다. 평산 2군단 사령부에 있는 고등중학교를 졸업하고 1980년 만 16세에 입대하여 11년간 개성시 장풍군에서 [[조선인민군]] 2군단 15사단 [[간호장교]]로 복무하였으며, [[조선로동당]]에도 입당했다. 북한 경제가 [[고난의 행군]] 시대 이전에도 파탄이 나서 1993년에 전역할때 제대비 40원을 받으니 쌀 1kg가 120원에, 집에 와보니 부모님은 이미 3년 전에 사망한 상태였고, 여동생이 굶다 못해 돈이 되는건 다 팔아먹어서 집이 텅텅 비었다고 한다. 그후 꽃제비가 되었고 탈북도 시도 했으나 여러번 잡혀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여덟번째 북송후에 오빠집으로 귀가 되었는데 오빠는 탱크공장 근로자라 보급이 나왔으나 가족들 배급은 끊겨서 시누이는 영양실조로 결핵에 걸려 피를 토하고, 남자 조카는 입대했다가 영양실조로 시력을 잃은데다가 엉덩이에 살이 다 빠져 항문이 보일정도로 폐인이 된걸 오빠가 공장에서 받은 배급을 사이다병에 죽으로 담아와 세 가족이 먹고 사는걸 보고 이 집에서 살면 입이 늘어나니 안되겠다고 생각해서 지인의 소개로 군관에게 시집을 갔다고 한다. 군사복무 시절에 알게된 [[중대(군대)|중대]] [[소대장]]과 결혼을 했지만 시부모들의 학대와 전남편의 계속되는 [[가정폭력]]으로 인해 집을 나와 임신한 몸으로 [[꽃제비]] 생활을 시작하였고, [[혜산역]] 길바닥에서 딸을 출산하였다. [[량강도]] [[혜산시]]에서 꽃제비 생활을 하면서 총 9번의 [[탈북]]과 8번의 북송을 반복하였는데, 딸을 바라보며 희망을 잃지 않고 계속 중국으로 재탈북할 수 있었으나 9번째 탈북 당시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하여 딸과 헤어지게 되었고 현재까지 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인신매매 업자에게 산동성으로 팔려갔으나 곧 탈출하여 교회를 들어갔는데 조선족 목사가 한국어가 서툴러서 북경의 한국인 목사에게 소개 시켰고, 몽골을 통해 2007년 한국으로 입국에 성공했다. 입국 당시 40대였는데 고생 때문에 주름이 너무 많아서 같은 탈북자들은 물론 국정원에서 믿지 못해서 조사가 길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2군단 복무 시절 정보로 인증을 받았다고 한다. 입국당시 몸무게가 51kg이었다고. 북경에서 숨어살았을 때는 목사님이 밥을 안 줄까봐 믿는 척 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확실한 개신교 신자로 여러교회에 간증을 다니고 있고, 안보강사로도 활동중이다. 꽃제비 시절 굶주린 딸을 안고 다닐 때 딸이 인형을 그렇게 좋아했고 갖고 싶어했는데, 결국 사주지 못하고 잃어버린 것이 한이 되어 늘 집안과 자동차 등에 인형으로 장식하고 딸을 그리워한다고 한다.[[https://youtu.be/BJyxSMsxDI0|링크]]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