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순진 (문단 편집) == 평가 == > '''우리는 작은 거인 이순진 대장의 42년 애국의 길을 영원히 기억할 것입니다.''' >---- > [[문재인]] 대통령, 이순진 합참의장 전역식 축사 中 소대장 시절부터 실적이 우수했는지 1979년에 소대장을 마치고 바로 학군단에 파견되어[* [[위탁교육]]을 받을 때 군인은 그 학교의 학군단 소속으로 배정한다.] 활동했다. 과거 3사 출신에 대한 대우를 생각하면 당시 엄청난 엘리트였음을 짐작케 한다. [[제2보병사단|2사단장]] 재임 시절, [[신병교육대|신교대]] 수료식에 참석해 250여 명이나 되는 [[훈련병]]들과 하나하나 악수하며 격려하기도 했으며, 출근길에 사단 주요 도로를 정비하던 [[병사]]들을 발견하고 자동차에서 내려 "수고한다"며 간식을 지급해준 일화가 전해질 정도의 [[덕장]]이었다. 이 때문에 사단 내에선 장교, 부사관, 병, 군무원 망라하고 그를 '순진이 형'으로 애칭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사실 소속이나 계급을 망라하고 친근한 상대를 '형, 동생, 선배님'으로 지칭하는 것은 군 내에서도 드문 일은 아니다.] 또한 '''폭설로 새벽 4시~5시에''' 조기기상 후 사단 주요 도로를 제설하는 경비소대원들에게 운동복 차림으로 손수 탄 커피와 과자를 쟁반에 들고 걸어와 소대장을 포함한 모든 소대원들에게 나눠주었다. 역시 2사단장 시절의 이야기인데, 전역 전 휴가까지 반납하고 대대전술훈련을 실시한 모 중대장(대위)을 직접 불러서 진심어린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참고로 그 중대장은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학생군사교육단|학군장교]](군장학생) 40기 출신으로, 전역 후 [[노량진]]에서 [[행정고시]]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합격한 뒤 현재 서울시청에서 [[5급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순진 장군님의 은혜 덕분에 공직생활 매우 잘 하고 있다고 손편지를 써서 합동참모본부에 전해 이순진 장군님의 안부를 여쭸다는 이야기도 있다. 또한 [[양구 고등학생 군인 집단 폭행 사건]]도 이때 일어났는데, 같은 양구지역에 위치한 21사단장이었던 [[장준규]] 소장과 협력하여 "[[양구군]] 내에서 아무것도 사지도, 이용하지도 말라"는 [[보이콧]]을 실시했다.[* 차별 대우 경험자들은 '''[[사이다(유행어)|통쾌하다]]'''는 의견이 절대다수였다. 그리고 이렇게 합심한 두 사단장은 이후 대장 진급에도 성공하여 각각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합동참모의장]]과 [[대한민국 육군참모총장|육군참모총장]]으로 예편했다.] [[수도군단]] 지휘관 시절에도 이 성품은 그대로라,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신병 휴가를 나가는 모 이등병이 안쓰러웠는지 타고 있던 체어맨에서 직접 내려 위병소 앞에 서있던 이등병의 짐을 '''자신이 직접''' 트렁크에 싣고 부대 근처 역까지 데려다 준 일화도 있다.[* 비슷한 일화가 [[제28보병사단]]에도 존재하는데, 이쪽은 80연대장이 아침에 기차역으로 뛰어가는 82연대 소속 이등병을 안쓰러워서 1호차에 태워준 경우다. 다만 이쪽은 휴가 가는 줄 알고 태워줬더니 [[군무이탈|탈영병]]이었다는 게 함정(...!)] 또한 당시 군단 경비소대원[* 군단급 이상부터 헌병대가 아니라 따로 본부근무대에 편제된 경비소대가 위병소 통제를 맡는다.]의 경험담 역시 이순진 군단장은 매일 출근할 때마다 위병들에게 격려와 함께 목캔디도 두어개씩 주고 가시고, 부인 또한 그에 못지 않은 인품의 소유자라 겨울철 위병소 바로 옆에 위치한 A공관 근처까지 눈을 쓸고 있노라면 어김없이 공관병과 함께 나와 고생한다며 따끈한 홍차 혹은 커피와 함께 쿠키 세트를 나눠주셨다고 한다. 이 외에도 생일을 맞은 장병에게 직접 손 편지를 써주는 등 말단 병까지 신경 쓰는 지휘관이었으며, 공관에 있을 때에도 이미 있던 전담 [[조리병]]을 원대 복귀시키고 부인과 본인이 직접 식사를 챙겼다. 이후 2작사 사령관일 때에도 조리병 없이 공관병[* 이 역시 전화 응대 등 행정 잡무만 시켰다.] 1명만 데리고 생활했으며, 그 공관병도 식사시간에는 [[http://www.seoul.co.kr/news/newsView.php?id=20170802500016&wlog_tag3=daum|인근에 있는 병사식당을 이용]]하도록 배려했다. 또한 이 사실은 이후 [[박찬주 대장 부부 갑질 사건|후임 2작사 사령관 부부의 갑질 사건]]이 폭로된 뒤 긍정적으로 재조명됐다. 이처럼 사병들에겐 한없이 인자했고 사병들과 작전을 책임지는 휘하 참모들에겐 엄격해 FM과 체력단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합참의장 시절에는 합참 주임원사보다도 더 군경력이 오래된 인물이었으며[* 참고로 [[원사(계급)|원사]]의 정년은 만 55세이며, [[대장(계급)|대장]]의 정년은 만 63세이다.] '''전군 짬밥 1위''', 즉 그 당시 기준으로 군대에 가장 일찍 입대한 사람이었다. 그가 합참의장에 임명되었을 당시 그를 제외하고는 1970년대에 입대한 현역 군인이 아무도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