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승만/평가 (문단 편집) =====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 노력 ===== 1943년 5월 15일 이승만은 미국의 [[프랭클린 루즈벨트|루즈벨트]] 대통령에게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의 서한을 보냈다. >이제야말로 미국이 지난날 한국에 행한 잘못을 바로잡을 때다. 1905년과 1910년에 일본이 한국을 병탄하도록 도움으로써 1882년에 맺은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위반한 건 미국이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멸망시킨 것을 시작으로 팽창을 거듭한 결과가 [[진주만 공습]]으로 이어졌고 결국 미국은 막대한 병력과 비용을 낭비하게 되었다. 서양 정치인들이 일본의 팽창주의를 억제할 수 있는 것은 한국이 유일하며 독립된 한국이 동양 평화의 보루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데서 비롯된 일이다. 그런데 아직도 미국은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소련이 종전 후 한국에 '소비에트 조선 공화국'을 수립한다는 소문이 들리는 상황에서 그들의 극동 진출을 막고 현재의 대일 전쟁도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당장 임시정부를 승인하고 한국인들을 [[태평양 전쟁|대일 전쟁]]에 참전시켜 실질적으로 미국을 도울수 있게 해야한다. [[http://s-space.snu.ac.kr/bitstream/10371/90281/1/8%20%EC%9D%B4%EC%8A%B9%EB%A7%8C%EC%9D%98%20%EB%8C%80%EB%AF%B8%EC%99%B8%EA%B5%90%EB%A5%BC%20%ED%86%B5%ED%95%9C%20%EA%B5%AD%EA%B0%80%EC%83%9D%EC%A1%B4%20%EC%A0%84%EB%9E%B5(1895-1953)-%EC%9D%B4%EC%B2%A0%EC%88%9C%20(%20Chul%20Soon%20Lee%20).PDF|#]] 미국이 일제의 위험성을 알지 못하고 일제가 [[대한제국]]을 멸망시키는 것을 가만히 둔 결과가 [[진주만 공습]]으로까지 이어지고 그 결과 미국은 수많은 병력과 전비를 낭비하게 됐음을 지적하는 이 서한은 이승만의 국제적 통찰력을 잘 보여준다. 그러면서 독립된 한국만이 동양 평화의 보루임을 지적하며 [[일본]]과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서 임시정부를 인정해 줄 것을 설득하고 공식적으로 태평양 전쟁에 참전하게 해야한다고 얘기했다. 위는 대표적인 예시일 뿐 [[이승만]]은 이 서한에서뿐만 아니라 평소에도 미국이 1882년의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어겼다는 점을 상기시키는 등 최대한 할 수 있는 여러 방법으로 루즈벨트와 미 국무부를 압박했다.[* 이승만이 1941년에 미국에서 출판한 [[일본 내막기]]에서도 이 부분을 지적하면서 미국인들의 치부를 자극했다. [[펄 벅]]은 당시 한 잡지에 기고한 서평에서 '조미수호통상조약을 미국이 1905년에 수치스럽게 파기했다는, 미국인들 대부분이 모르고 있는 사실을 이승만이 지적해줘서 기뻤다'고 썼다.] 임시정부는 결국 국제적 승인을 받지는 못했으나 이승만은 이렇게 백방으로 한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이외에도 이승만은 미국내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하버드 대학교|하버드]], [[프린스턴 대학교|프린스턴]] 인맥과 고위직 네트워크를 최대한 활용하려 했고 그가 미국의 [[이너 서클]]에 들어가려고 노력한 것도 이때문이다. 미국 내 여론전을 위해 엘리트 미국인들로 이루어진 [[한미협회]]도 발족시켰다. 이승만이 아니라면 당시 한국인들 중 이정도로 미국의 최고위급들과 연결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