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승만/평가 (문단 편집) === 정부 수립과 건국 === 2000년대 중반 이후 [[뉴라이트(대한민국)|뉴라이트]][* 독립운동가 폄하, [[일본 제국]]의 전쟁범죄 부정, 반일 민족주의 혐오, [[식민지 근대화론]] 주장 등 종일(從日)의 모습을 보이면서도 반일의 대표격인 이승만을 찬양하는 심히 [[모순]]적인 행각을 보여주고 있다. 뉴라이트 인사들이 2019년에 공동저술한 책인 [[반일종족주의]]에서는 한국의 반일 정서가 1980년대에 들어서 생겨났다거나 혹은 좌파들이 만든 것이라고 서술하고 있으나 이는 이승만의 사례만 봐도 얼마든지 반박이 가능한 허황된 주장이다. 1950년대를 쭉 집권했던 이승만 정부 당시 있었던 평화선 선포 같은 정책이나, 이승만 개인이 강경한 [[반공주의자]]이면서 반일 민족주의자였다는 사실만 봐도 뉴라이트의 주장은 터무니없는 정치적 진영 논리에 불과한 것을 알 수 있다. 뉴라이트 인사들 중 일부는 심지어 한국의 독도 영유권을 부정하거나 한국이 독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불법이고 저급한 반일 민족주의의 상징이라고 비난을 하기도 하는데 그 주장대로라면 평화선을 선포하고 해군까지 동원해 일본 어민들을 체포하면서 독도를 지킨 이승만은 불법으로 독도를 점거한 저급한 반일 민족주의의 상징이 되어버린다.] 진영을 중심으로 [[건국절 논란]]이 촉발되면서 이승만을 건국 대통령으로 추앙하는 목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소위 '이승만 국부론'이 바로 그것인데, 그에 따르면 이승만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대한민국을 처음으로 건국한 사람이며 따라서 이승만은 [[조지 워싱턴]]과 같은 건국의 아버지라는 주장이다. 반면 이러한 주장에 대해 반대하는 측에서는 이승만은 [[사사오입 개헌]]과 [[3.15 부정선거]] 등으로 자유민주주의 헌정을 오히려 파괴한 인물이며 종국에는 [[4.19 혁명]]으로 불명예 퇴진해 이미 국부의 자격을 상실했다고 본다.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했다고 보는 평가는 현대 한국 정치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첨예한 사안으로 자리하고 있다. 한편 이승만이 남긴 여러 문헌 자료는 일각의 평가와 달리 이승만 스스로는 대한민국을 '건국'했다고 보지 않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는 [[제헌 국회]] 개원식에서 이승만이 한 연설에서 잘 드러난다. >··· 나는 이 대회(大會)를 대표하여 오늘의 '''대한민주국(大韓民主國)이 다시 탄생된 것'''과, 따라서 이 국회가 우리 나라에 유일한 민족 대표 기관임을 세계 만방에 공포(公布)합니다. 이 민국은 [[3.1 운동|기미년 3월 1일에 우리 13도(道) 대표들이 서울에 모여서 국민대회를 열고 대한 독립 민주국임을 세계에 공포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시정부]]를 건설하여 민주주의의 기초를 세운 것입니다. 불행히 세계 대세(大勢)에 연유해서 우리 혁명이 그때에 성공하지 못했으나, 우리 애국 남녀가 해내 해외(海內海外)에서 그 정부를 지지하며 많은 생명을 바치고 혈전 고투하여 이 정신만을 지켜온 것이니, '''오늘 여기에서 열리는 국회는 즉 대한국민대회의 계승이요,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즉 기미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 임시정부의 계승이니 이날이 29년만의 민국의 부활일임을 우리는 이에 공포하며 [[대한민국 연호|민국 연호]](民國年號)는 [[1919년|기미년]]에서 기산할 것이요''', 이 국회는 전 민족(全民族)을 대표한 국회이며 이 국회에서 탄생되는 민국 정부는 완전히 한국 전체를 대표한 중앙 정부임을 공포하는 바입니다. ··· > > '''[[대한민국 연호|대한민국]] 30년 5월 31일''' > '''대한민국 국회의장 이승만''' 아울러 이승만은 [[3.1운동]]으로 독립을 선포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한 [[1919년]]을 원년으로 하는 [[대한민국 연호]]를 강하게 주장한 인물이었다. 이승만이 대한민국 연호를 사용한 이유는 크게 4가지로 정리할 수 있는데, 첫째는 [[민주공화국|민주국]]의 기초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때 잡혔음을 표시하기 위함이고, 둘째는 [[3.1운동|무저항주의]]를 시작해서 성공한 역사를 드러내기 위함이며, 셋째는 [[독립운동가|남녀 선열]]의 위대한 공업을 인증함이며, 넷째는 [[단군기원]]이 지나치게 상고사적이어서 조상의 이름만 판다는 비판에서였다. [[https://db.history.go.kr/item/level.do?setId=2&totalCount=2&itemId=dh&synonym=off&chinessChar=on&page=1&pre_page=1&brokerPagingInfo=&types=&searchSubjectClass=&position=1&levelId=dh_014_1949_10_03_0060&searchKeywordType=BI&searchKeywordMethod=EQ&searchKeyword=%EA%B8%B0%EB%AF%B8%EB%8F%85%EB%A6%BD%EC%9A%B4%EB%8F%99+%EC%97%B0%ED%98%B8&searchKeywordConjunction=AND|한국사데이터베이스]] 이를 통해 이승만은 본인 스스로 자유민주주의를 들여와 대한민국을 건국했다고 보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승만의 역사관은 [[제3대 대통령 선거]] 공보물 [[1948년]] 약력에 '''[[http://emuseum.go.kr/imageview/PS0100300500100824600000.|[[1919년|기미년]] [[3월 1일]]로부터 기산하여 29년만에 [[대한민국|자주민국]]을 부활함]]'''이라고 적어놓은 것에서도 드러난다. 정리하자면, 적어도 이승만 본인은 대한민국을 '건국'했다는 의식이 없었으며, 도리어 자유민주주의 건국의 기원을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찾았다. 한편 이승만 건국론을 전면에 내세운 [[뉴라이트(대한민국)|뉴라이트]] 진영의 과거 사상적 기반이 [[주체사상]]이었기에 사상적 배경과 극단성은 그대로 둔 채 숭배의 대상만 [[김일성]]에서 [[이승만]]으로 바꾼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도 뉴라이트가 이승만 외의 다른 독립운동가들을 폄하하는 것과 북한이 김일성 외의 다른 독립운동가들을 폄하하는 것은 [[극과 극은 통한다|놀랄 정도로 비슷하다.]]] [각주][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이승만, version=923)] [[분류:이승만]][[분류:인물에 대한 평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