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승만/평가 (문단 편집) ==== 긍정적 시각 ==== 아래 부정적 시각의 문단에서처럼 수십년간 한국 남성들이 이승만 때문에 병역 의무로 고통 받았다는 주장을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은 대단히 논리적 비약이 심한 억지다. 징병제는 [[김일성]]이 일으킨 6.25 전쟁 때문에 생긴 것이지 이승만 때문에 생긴게 아니다. 그리고 군대가 환경이 좋고 군인 대우가 좋으면 모병제로도 충분해서 징병제가 필요없다는 주장도 1960년에 임기가 끝난 이승만과는 무관한 얘기다. 오히려 장군대비 병사의 월급이 역대 가장 높았던 정부가 이승만 정부였다. [[병장]]이 [[준장]] 월급의 10%를 받았으며 심지어 2020년 현재에도 이것에 한참 못미친다. 그리고 [[자위대|일본 자위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모병제가 된다고 반드시 군에 대한 대우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군인에 대한 대우와 [[똥군기]]는 징병제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이며, 단순히 모병제로 바뀐다고 군인에 대한 대우가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한 오산이다. 심지어 군인에 대한 대우가 좋다고 평가받는 미군조차도 [[이라크 전쟁]] 이후로는 지원자가 없어서 인원수를 충당하기 위해 갱스터, 양아치, 저학력 백수들까지 선발해서 병사들의 질적 저하가 문제되고 있다. 또한 미군과 한국군을 비교하기도 힘든 것이, 미군은 이미 당시로도 세계 1위의 경제력을 자랑하던 국가였으며, 자국 군대를 넘어 유럽과 소련에게 물자 지원을 퍼줄 정도로 경제력이 [[넘사벽]]이었기에 병사들을 충분히 먹여 살릴 자본이 넘쳤지만, 정부수립 당시의 한국은 경제 전반이 빈약했다. 모병제조차도 나름의 문제점이 있으며, 모병제가 되었다고 무조건 징병제보다 낫다고 볼 수는 없다. 군인이란 직종은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미 기피 직종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징병제]]는 오히려 대한민국에 긍정적 영향들을 끼쳤다. 1945년에 식민지에서 벗어난 이후 한국은 소수의 도시민들을 제외하곤 인구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던 농촌 사람들은 여전히 전근대적 구습과 가치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들은 1950년대 실시된 징병제 아래 군대에서 처음으로 [[근대화|근대적인 생활양식을 배우고]] 근대적인 기계들을 다루는 기술도 배우고 글 읽는 법도 배웠다.[* 대학은 커녕 학교 자체를 못 다닌 경우가 많아서 군에서 배운 기술로 먹고 살게되는 경우도 많았다.]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지금 우리는 군대라고 하면 왠지 구습의 상징 같은 시대에 뒤떨어진 곳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1950년대 기준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징병제를 통해 전국 방방곳곳의 수많은 농촌 출신들이 근대화되었고 군대에서 배운 기술과 조직력, 협동심, 집단생활 경험은 1960년대의 경제발전에 긍정적으로 연결되었다.[* 유영익, '1950년대를 보는 하나의 시각', "한국근현대사론", 262p] 이러한 긍정적인 평가가 내려지는 데는 이승만이 군인 출신이 아니기 때문인 것도 한 몫 한다. 역으로 군인 출신인 박정희 때부터 나라 수준에 비해 군대는 더욱 열악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