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승훈(프로게이머) (문단 편집) == 소개 == [[대한민국]]의 前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現 [[인터넷 방송인]]. 선수 시절 화려한 견제 플레이로 유명했으며 불리한 상황에서도 끈질긴 견제를 통해 경기를 뒤흔드는 플레이 하나만큼은 일품이었다. 처음 나간 아마추어 대회에서 4위를 했는데 이 때는 야자를 10시까지 하는 바람에 빌드만 머릿속으로 생각해서 나갔다 한다.[* 고등학교 때 반에서 6등 정도는 했다고 한다.] 이 때 본인은 프로게이머가 될 수 있을거라 거의 확신했다 하며 결국 두 달 뒤 다른 대회에서 결국 1등을 하여 프로게이머가 된다. 또한 피지투어에서 50승 1패하여 랭킹 1위를 찍어 드래프트 당시 꽤나 유명했다고... 그리고 미리 연락을 주고받았던 KOR팀에 들어갔지만 알다시피 역대 최악의 게임단중 하나이며 이승훈 본인은 1년 6개월동안 주방일을 했다 밝혔다. 그리고 연봉계약을 못 해 무급생활을 꽤나 오래했는데 18토스 사건 당시도 무급이었던지라 받은 거 없이 오히려 토해내는 상황이었다 한다. 2006년 5월 7일, 당시 [[MBC GAME HERO]] 소속이었던 [[이재호(프로게이머)|이재호]]를 상대로 프로리그 데뷔전을 치렀으며, 그의 대표 별명인 '''18토스'''는 [[2006년]] 가을, 프로리그 [[팀플레이#s-2|팀플레이]]에서 [[주진철]]과 같이 플레이하다가 도중 패색이 짙어지자 그가 [[육두문자]]인 "아놔 [[씨발]];"을 채팅으로 친 게 '''그대로 [[생방송]]에 나오는''' 대형 [[방송사고]]가 터져서 생긴 것. 결국 그 사건으로 그는 [[벌금]] 100만원, 프로리그 3경기 출장 금지 징계를 받았다. 물론 나중에 그가 팀 채팅을 하려다 조작 미스로 인해 일어난 [[실수]]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당시 팀플 파트너 [[주진철]] 또한 (아무리 친밀한 사이더라도) [[본인]]보다 [[형]]이고 [[선배]]인데, 그런 사람 앞에서 그런 쌍쓰러운 [[욕설]]을 사용하는 것도 그다지 잘한 것이라 볼 수는 없었다는 평이었다.[* 이승훈에 의하면 딱 한 가지 빌드를 제외하고 무조건 이길 자신이 있는 빌드를 준비해나갔는데 하필 박정석-임재덕이 그 빌드를 써서 패했고, 그 때 화가 좀 났다 한다.] 후일 [[전태규]]가 개인방송에서 말하길 관심을 끌고 싶어서 일부러 그런 거라고 주장했지만, 약간의 과장이 있었던 듯 하고, [[https://www.youtube.com/watch?v=tnTd-g3Kflg|관련 영상]]. 나중에 전태규와의 합방으로 이승훈 본인이 직접 해명하기로는 경기의 패색이 짙은 상황에서 팀 채팅으로 서로 욕하면서 분하다가 실수로 전체 채팅을 켠 상태에서 그대로 욕설을 타이핑한 것이라 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XYhCzWWATcI|관련 영상]]. 상대팀이었던 [[박정석]] - [[임재덕]]에게는 당일 주진철과 함께 직접 만나 [[술]] 마시며 사과했다고 한다.[* 이승훈이 고개 숙이며 사과했고 박정석이 "괜찮다고, 이해한다"며 사과를 받아주었다.] 어쨌든 그 사건 이후로 [[싸이월드]]까지 털렸고 거기에 적힌 이메일 아이디로도 더 까이게 되었다.[* 이승훈이 훗날 전태규의 방송에 나와 말하길, 욕이란 욕은 다 적혀 있고 부모님의 안부, 즉 패드립까지 나왔다고 한다.] 그래도 욕설 채팅 사건 이후에 사과문을 올리는 등 적어도 자기가 잘못한 줄은 아는 것 같다. 협회와 팀 차원의 징계도 있었고... 그래서 어느 정도만 욕먹고 끝났다. 이런 사건을 겪은 후 절치부심했는지 바로 [[삭발]]을 하고 연습에만 매달린 결과 [[2007년]]에는 물오른 기량을 선보였다. 프로리그에서도 제법 활약이 컸고, 개인리그로는 [[곰TV MSL 시즌2]] 32강에도 진출했다. 이때 [[전상욱(프로게이머)|전상욱]]을 [[서바이버 토너먼트]]에서 KO시키고 올라갔는데, 전상욱에게 이긴 뒤 [[MSL]] 역대 우승자들의 사진이 걸려있는 벽으로 다가가 자신도 그 곳에 사진이 걸릴 거라는 패기 넘치는 세리머니를 한 바 있었다. 이 때 해설진들의 반응도 아주 뜨거웠었다. 근데 32강 조 편성에서 만난 선수들이 '''[[박성준(1986)|박성준]], [[이윤열]], [[최연성]]'''이니 스타판 레전드급 세 선수가 한 조에 몰린 셈이다. ~~아놔 X발!~~ 비록 [[죽음의 조]][* 라지만, 이 세 사람은 이때 기량이 많이 하락한 상태였다. 그나마 이윤열이 전성기 때 못지않은 성적을 냈었고, 박성준은 이 대회에서 8강까지 오른다. 최연성도 이 때 16강까지는 올라가며 그 때까지는 테란 중에서 중상위권에서는 버티고 있었다.]의 벽을 넘진 못 했지만, 기죽지 않고 준수한 기량을 선보였다. 첫 경기에서 [[이윤열]]을 잡았고, [[박성준(1986)|박성준]]과 [[최연성]]을 상대로도 좋은 경기를 펼쳤다. 특히 승자전 [[박성준(1986)|박성준]]과의 경기는 [[저프전/스타크래프트|저프전]] 명경기로 꼽아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이승훈이 불리한 상황임에도 지독한 견제 플레이로 박성준을 끊임없이 흔들면서 처절한 혈전을 선보였다. 결국 박성준이 이기긴 했지만, 수십 기에 가까운 드론을 헌납했다(...). ~~[[홍진호|드론은 인구수 방해]]?~~ 이렇게 [[비호감]] 신인에서 친근한 악동토스로 자리를 잡았는데... 이러다가 다시 비호감 이미지를 쌓은 사건이 있었다. 바로 2007년 6월 26일 프로리그 [[팔진도(스타크래프트)|팔진도]]에서 펼쳐진 경기에서 [[안기효]]를 상대로 불리한 상황에서 1시간 동안 끝까지 버티기만 하다가 재경기를 만든 사건이다. 물론 선수 입장에서는 이길 수 없다면 [[무승부]]라도 끌고 가야 하겠지만, 보는 팬들 입장에서는 다 끝난 [[게임]]을 꼬장 부리면서 질질 끄는 것으로밖에 안 보이므로 다시 욕을 엄청 먹었다.[* 당시 이승훈은 프론트진에게 칭찬받았다고 하며 본인도 게임하면서 즐거웠다 한다. 99대1 경기를 5대5까지 만들어 무승부를 이끌었다는 게 그 이유. 사실 프로게이머라면 백 번이고 칭찬받아야 할 부분이다. 다 진 경기를 잘 버텨서 패배를 면한 어찌 보면 근성과 집념이 빛을 발한 명경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승훈이 표정만 잘 관리했어도 명승부로 회자됐을 지도 모른다.] 결국 어렵게 재경기로 끌고 가긴 했지만, ~~분노로 눈이 먼~~ [[안기효]]의 한방 러쉬에 KO. ~~[[히어로센터 유리창 파손 사건|그리고 잔뜩 화가 난 안기효가 히어로 센터 유리창을 부섰다]]!~~ [[https://www.youtube.com/watch?v=khgHFKR2xNg|관련 영상]]. 이런 비호감 이미지는 [[삼성전자 칸]]과의 08 상반기 시즌[* 2008년 당시에는 신한은행 프로리그 2008 시즌과 신한은행 프로리그 08-09 시즌, 2개가 열렸다.] 프로리그 결승까지 이어졌다. 2008년 8월 9일에 팀이 3:1로 밀리던 상황에서 마지막 주자로 나서서 5세트 [[콜로세움(스타크래프트)|콜로세움]]에서 [[허영무]]와 대결했지만, 상대편의 [[4게이트]] 노림수에 KO.[* 아이러니하게도 본인이 플레이오프에서 [[김택용]]을 상대로 이 전략을 써서 스파키즈의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정확히는 이 경기를 패해서가 아니라 본진이 완전히 끝장나서 이길 수 없음이 확정되고도 '''[[수정탑|파일런]] 숨겨짓기''' 플레이로 시간을 끌다가 허영무의 병력에 자신의 건물이 모두 철거되는 순간까지도 끝내 GG를 안 쳤기 때문이다. ~~찾아라, [[드래곤볼(드래곤볼)|드래곤볼]]!!!~~ ~~[[배틀넷]] 개매너 종자냐?~~ [[https://www.youtube.com/watch?v=SA-f4H1DmfY|관련 영상]]. 물론 현장에 있던 [[김창선(프로게이머)|김창선]] 해설이 말한 것처럼 자신이 GG가 곧 팀의 준우승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라 [[멘붕]]해서 차마 GG를 못 쳤을 수도 있겠지만, [[수정탑|파일런]]이나 숨겨 짓다가 엘리를 당하는 순간까지도 GG를 안 치는 모습은 확실히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었다. 특히 [[김태형(1973)|김캐리]]는 [[스타 뒷담화]]에서 이 행동에 대해 "그럴 거면 배틀넷처럼 디스라도 걸지, 디스는 왜 안 걸었냐?"며 깠다. 이게 프로답지 못한 행동인가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은데, 사실 프로라면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특히 [[팔진도(스타크래프트)|팔진도]]에서 벌인 안기효와의 무승부 경기는 어쨌든 자신이 완전히 밀린 상황에서 [[다크 아콘]]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한 번의 기회라도 더 따냈다는 점에서 전략적으로 매우 좋은 판단이었다. 해당 경기가 나름 중요한 경기였기도 하고, 본인의 패배가 곧 팀 전체의 패배와 같은 상황이었으니 팀을 위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유닛과 스킬을 총동원하여 버틴 것을 욕하기는 어렵다. 이승훈이 비판받아야 될 점이라면 그렇게 버티는 전략을 택한 것보다는 경기 내내 시종일관 상대방을 약 올리듯이 히죽거리고 있었다는 부분 정도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설명을 했는데 그냥 카메라가 보이기에 거기다 대고 환히 웃었다고(...) 한다. --순수하다.--] 이승훈 역시 무승부 사건은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양.[* 사실 잘못이라고 볼 여지도 없다.] 다만 프로리그 결승전에서의 그 일은 [[빼도 박도 못한다|빼도 박도 못하는]] 비매너 맞다. 본인 역시 이에 대해서는 [[셀프디스]]도 하면서 허영무와 삼성전자 팀에게 자신의 잘못이라고 인정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YhCzWWATcI|관련 영상]]. 일단 본인은 악동 이미지가 크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18토스 사건 때는 프로게이머 인생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팀에서 노이즈 마케팅 찬스로 잡았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3개월 동안 미친듯이 숙소에서 연습만 한 결과 팀 프로토스 에이스로 거듭났으니 인생사 새옹지마. 다만 악동 이미지가 [[kt 롤스터/스타크래프트|kt]] 프런트에서 이승훈의 영입을 취소하는 결정적인 요인이었다고 말했으며, 화승과 공군에서도 같은 이유로 전부 자신을 컷해버렸다고 한다. 선수 입장에선 [[e스포츠]] 최악의 팀인 스파키즈에서 명문팀이자 복지의 끝판왕이었던 kt로 갈 천금같은 기회가 날아갔다는 건 확실히 매우 아까운 일일 것이다. 그 후에 09년 [[여름]] 즈음에 본인의 기존 [[연봉]]이 1800만원이었는데, [[이유찬(e스포츠)|이유찬]] 감독에게 연봉 인상을 안하면 입대해버리겠다고 연봉 협상을 했으나, 이명근 감독은 되레 "[[군대]] 잘 가라."라고 회답하여 정말 은퇴와 동시에 현역 입대를 해버렸다고... 그 후 이명근은 전태규에게 연습생 토스 유저 중 2명을 주전급으로 키우란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근데 이게 이승훈 본인 입장에선 정말 [[신의 한 수]]였는데, 입대하고 반 년이 지나자 '''[[스타크래프트 승부조작 사건|승부조작]]'''이 드러나며 팀이 아주 박살이 나 버렸으니...[* 당초 입대하고자 한 공군 ACE에서도 1명이 가담했다.][* 이 시기 승부조작 사건이 터지고 [[하이트 스파키즈|친정 팀]] 선수들이 대거 연루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팀에 연락해 누가 걸렸는지 알아봤는데 신상문 등 일부 선수를 제외하고 팀의 핵심 선수들이 죄다 가담했다는 사실을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먼 훗날 기뉴다의 방송에서 밝혔다. 덤으로 원종서가 한명한명 데려가서 밥 한끼 사주면서 사주했을 거란 점과 원종서 빼곤 전부 다 세상물정을 잘 모르는 착한 친구들이라 사태의 심각성을 몰랐을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스파키즈 출신답게 사태의 흐름을 잘 알고 있었다.][* 이승훈 본인이야 워낙 성격이 강하고 원종서랑 동갑이니 휘둘리지 않았겠지만, 그래도 아예 사건에 연루될 여지가 없게 군 복무도 할 겸 피해 있는 편이 낫기는 했다.] 한때는 [[이성은]]처럼 세레모니를 통하여 관객들의 환호를 얻는 서비스도 즐겨 했다. 08년도 이후 프로리그에선 전 시즌들에 비해서 부진하다가 [[공군 ACE]] 2009년 3월병 모집에 지원했다. 당시 경쟁자가 [[프로토스]] 쪽은 [[서기수]]와 [[박성훈(프로게이머)|박성훈]], [[테란]] 쪽은 --[[김성기(1987)|김성기]]--와 [[민찬기]]였음을 감안했을 때 [[테란]] 둘 다 거진 확실했고, 프로토스 3명 중에선 그나마 실력이 가장 나았으므로 들어갈 확률이 높았다고 볼 수 있겠으나, 당시 공군에는 이미 [[박대만]], [[박정석]], [[오영종]] 세 명이서 프로토스라인을 지키고 있었기에 공군 측에서는 토스보다는 다른 종족들, 특히 [[저그]]가 가장 필요하여 부득이하게 [[물먹다|물 먹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승훈의 이미지가 안 좋았다는 것도 한 몫 했다. 08-09 시즌 4라운드 중이던 2009년 5월 16일에 자신의 [[미니홈피]]에 쓴 '게이머를 그만두고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습니다.^^;'라는 내용의 글을 볼 때, 아마 공군 입대가 좌절되자 [[은퇴]]를 결심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9월 22일에 [[대한민국 육군]] 현역 입대를 했다.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44&oid=236&aid=0000016083|#]] 입대 당시 프로게이머 자격은 그대로 유지된다고 했으나, 제대 이후에도 계속 미복귀인 것으로 보아 사실상 은퇴. 더군다나 팀도 사라져 버렸고, 이승훈 본인도 이미 팀 내에서 입지가 좁아진 상황이었는데다 [[나이]]도 적지 않아졌다 보니... 보직은 장군 [[운전병]]이었으며, 2011년 7월 18일 제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