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용상 (문단 편집) === 망국의 황족 === 1174년, [[대월]] 제국의 수도 탕롱[* 승룡(昇龍), 현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 ]에서, 리 왕조 대월 제국의 제6대 황제였던 [[영종(리)|영종]](英宗)의 7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황후 여씨(여미아, 皇后 黎美娥)였다. 무능하고 사치스러우며, 부패해 리 왕조의 전성기를 끝내고 나락으로 빠뜨린 최악의 암군이었던 형 [[고종(리)|고종]]이 붕어하고, 조카인 [[혜종(리)|혜종]]이 즉위했다. 하지만 혜종도 무능하여 국정을 돌보지 않았다. 1213년, 평해공 이군필, 진일조(陳日照)[* 진일조라는 인물은 베트남의 기록이 아닌 중국 측의 기록인 《제동야어》에 나타나는 인물인데, 아마도 진씨 호족인 진사경(陳嗣慶)인 듯하다.]와 함께 3공(三公)이 되어서 조카 혜종으로부터 국정을 위임받았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혜종의 외척이었던 전전지휘사 [[진수도]](陳守度, 쩐투도)가 등장하여 혜종의 신임을 얻고, 혜종으로 하여금 이용상을 비롯한 3공을 대신하여 자신에게 국정을 통솔하도록 했다. 그렇게 진수도는 대월의 권력을 얻게 되자, 전횡을 부리기 시작했다. 진수도가 혜종을 협박하여 황녀인 [[소제(리)|소성공주]]에게 양위시킨 다음, 조카인 [[태종(쩐)|진태종]]과 결혼시켜 여제가 남편에게 선양하는 방식으로 진태종이 황제의 자리에 올라 리 왕조 대월이 멸망하고 쩐(진) 왕조 대월이 건국되었다. 진수도는 통국태사(統國太師)가 되어 전권을 장악한 후 자신의 정적은 물론 이용상을 비롯한 리 왕조의 모든 황족들을 죽이려는 시도를 했는데, 리 왕조의 황족들은 진수도에게 죽임을 당했으나 이용상은 진수도의 계략을 간파했다. 이때 이용상이 진수도의 계락을 간파하는 과정을 담은 몇 가지 다른 이야기가 전해져온다. 하나는 혜종의 장례식에 종친들과 황족들이 다 모였을 때, 진수도가 선제의 피붙이들을 도륙했다. 이 위기를 예견한 이용상은 병을 핑계 삼고 나오지 않다가 배를 타고 최측근과 함께 도피했다. 또 다른 이야기는 진씨 일족 측에서 이용상을 회유하려 했으나 그가 마음을 돌리지 않자 그를 제거하려 했고 이를 눈치챈 이용상이 대란을 피해 고려로 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1226년, 이렇게 진수도가 리 왕조의 황족들을 냉혹하게 차례로 숙청하는 가운데 이용상은 자신의 일족과 부하들을 데리고 바다로 도망갔다. 이렇게 베트남 역사에서 그의 이름은 사라지고, 리씨 황족들은 대부분 멸족을 당했다. 고려가 조선으로 바뀌면서 [[개성 왕씨]]를 죽일 때 왕씨의 후손이 성을 바꿔서 목숨을 보전했듯이, 리조 대월의 시대에서 쩐조 대월의 시대로 넘어갈 때, 리 왕조의 후손들은 '[[응우옌]]'(완)으로 성을 바꾼 채 목숨을 보전했고,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현재 베트남에 남아있는 리 왕조의 계보는 쩐 왕조가 기록한 것으로, 여기에 이용상은 등장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베트남 학계는 쩐조가 전대 리조의 계보를 기록하면서 이용상 뿐만 아니라 황제와 직계 황손이 아닌 많은 방계 황손들을 누락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렇게 권신 진수도는 끝내 리 왕조를 멸망시키고, 쩐 왕조를 건국했지만,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처럼 쩐조는 훗날 권신 [[호꾸이리|호계리]](胡季犛)에 의해 리 왕조가 멸망한 과정을 똑같이 밟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