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용철(야구) (문단 편집) === 선수/코치 경력 === 현역 시절에는 '''[[사이드암 스로|사이드암]]''' 투수로 1988년 [[단국대학교]]를 졸업하고 1차 지명을 받아 [[MBC 청룡]]에 입단하였다.[* 단국대 입학에 스토리가 있다. 원래는 체육특기자로 영남대 입학이 내정되어 있었는데 경기상고 측에서 서류를 준비하지 못 하면서 입학이 좌절되었다. 그러자 이용철은 학력고사를 응시해 단국대에 지원, 합격하면서 단국대에 입학해 야구부에 합류한다. 즉, 이용철은 '''단국대를 일반 학생으로 들어간 셈.''']입단 첫 해 7승 11패, [[평균자책점]] 2.74로 [[KBO 신인상]]을 수상하였다.[* 1988 시즌에는 같은 해 9월에 열린 서울올림픽 때문에 대어급 신인들의 프로 입단이 늦춰졌고(당시에는 올림픽 출전이 철저히 아마추어에만 국한되었다), 그 결과 이용철처럼 시즌 10승에도 미달하는 성적으로 신인왕이 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프로 입단이 늦어진 대형 선수들(예: 송진우, 강기웅, 이강철, 조계현, 노찬엽 등)은 이듬해인 1989년에 프로 데뷔를 했다. 하지만 1989년 신인왕은 1년 앞서 고졸로 입단해 시즌 19승을 올리며 맹활약한 박정현에게 돌아갔다.][* 같은 해에는 훗날 OB에서 최초의 잠실구장 연고 홈런왕이 된 김상호도 청룡 소속으로 데뷔했는데, 안타 100개와 홈런 10개에 미달해 신인왕을 놓쳤다.] 통산 성적이 20승 28패. 당시 일반적이었던 [[투승타타]]의 관점에서 벗어나면 평균자책점 전체 5위로 꽤 훌륭한 성적인 것은 맞다. WAR도 2.75를 기록했으니 10승만 못 했을 뿐이지 충분히 신인왕 자격이 있는 기록이다. 만약 7승 11패 2.74가 아니라 11승 7패 2.74였으면, 논란의 여지가 훨씬 적었을 것이다. 1994년 은퇴 직후 삼성 라이온즈에서 [[스카우트]] 생활을 하다가 1998년부터는 투수코치로 2년간 있었다. 2001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방송공사|KBS]]와 2019년까지 [[KBS N 스포츠]]의 [[해설자|해설위원]]으로 활동했다. LG 시절인 1990년 8월 17일, 빙그레와의 원정 경기에서 청룡 시절부터 계속되었던 대전 구장 연패 기록을 끊는 공로를 세운 바 있다. [[KBO 리그|한국프로야구]]에서 특정 구장 연패기록은 MBC/LG가 1989년에서 1990년에 걸쳐서 기록한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한밭 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기록한 19연패인데, 7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며 연패 끊고 승리 투수가 되었다. 그 전 8월 7일 해태와의 더블헤더 2차전에서도 1회에 아웃카운트 1개도 잡지 못한 김기범을 구원하여 9이닝 1실점으로 사실상 완투승이나 다름없는 투구로 시즌 첫 승리를 거두며 중요한 순간의 팀의 난세영웅으로 활약했었다. 그해 팀 창단 첫 우승을 경험했으니, 이용철에게는 뜻깊은 해였다. 사실 레전드급 선수들도 의외로 못 경험하는 경우가 많은게 우승인데, 신인시절 이후 주로 1군내 2진선수에 불과했었던 이용철은 신인왕에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경험해봤으니 꽤 운이 좋은 편.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