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원국 (문단 편집) === 아마추어 시절 === [[중앙중학교(서울)|중앙중학교]] 3학년 때부터 주목을 받았다. 그가 중학교 3학년 말 10월에 [[중앙고등학교]] 입학 예정자 자격으로 서울시 고교야구 추계연맹전에 선을 보였는데 고교 선수들 모두가 깜짝 놀랐다. 그는 186cm의 큰 키에 80kg이 넘는 덩치로 당시 성인야구 선수들보다 커 타자들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1964년 [[중앙고등학교 야구부|중앙고]]에 진학한 이원국은 1학년 때부터 주전 투수로 활약하고 2학년 때는 제 19회 전국지구별초청고교야구대회([[황금사자기]])에서 우승, 팀이 그 대회에서 처음으로 패권을 잡는데 공헌했다. 결승에서 그는 [[부산고등학교 야구부|부산고]]를 만나 단 1안타만 내주고 동료인 [[유격수]] [[이광환]], [[3루수]] 정동건 등의 호타호수비에 힘입어 7-0, [[완봉승]]을 거두었다. 당시는 [[스피드건]]이 없어 구속을 측정할 수는 없었으나 150km/h 내외의 [[패스트볼]]로 성인 투수보다 빨랐다. 이원국과 비슷한 최고의 강속구 투수는 이후 [[최동원]], [[선동열]], [[박찬호]] 정도로 기억된다. [[이광환]]은 “내가 대구에서 중학교에 다니다가 서울 중앙고로 오니 아주 순둥이 친구가 있더군요. 생기기도 어린애같아 덩치가 너무 커 무슨 야구를 할까 했는데 던지는 것을 보니까 놀랄 만큼 강속구였고 재주도 뛰어났어요. 잠깐 반짝했지만 계속했으면 아마도 대표팀 투수로 이름을 날렸을 텐데 갑자기 [[일본]]으로 가 또 한 번 놀랐죠”며 그를 기억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