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원식(야구) (문단 편집) == 선수 경력 == 대학 2학년이었던 당시 1992년 [[대통령기 전국대학야구대회]]에서 결승전 고대 [[이상훈(좌완투수)|이상훈]]을 상대로 9회말 1대1로 맞붙은 상황에서 끝내기 홈런을 터뜨리며 한양대를 우승에 올려놓았다. 그 공으로 수훈상을 차지한다. 199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라운드 전체 1번으로 입단했다. 하지만 입단은 쌍방울이 아닌 해태에서 하게 된다. 쌍방울에서 포수 [[장채근]]을 영입하기 위해, 해태에게 [[최해식]]+2,000만원+2차 1라운드 지명권을 주면서 해태에 입단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이원식이 프로에서 그저그런 투수였지만, 최해식이 최고의 수비를 보여 주면서 2000년에 [[김상훈(1977)|김상훈]]이 입단하기 전까지 안방마님 역할을 잘 해주었고 현금 2,000만 원을 얻었으니 해태가 큰 이익을 보았다. 반면 쌍방울은 수비 하나는 최고'''였던''' 장채근을 데려갔지만 [[박경완]]의 포텐이 터졌고, 장채근이 [[장재중]]에게 밀려서 백업으로도 못 나오다가 부상으로 2년 만에 은퇴해버렸으니 말 그대로 망했다. 이원식은 입단하고서 불펜 투수로 뛰면서 가끔 선발로 나가는 [[스윙맨]]이었고, 1996년 5점대 방어율을 올렸지만, [[1996년 한국시리즈|그 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어서 우승을 경험하기도 했다. 이듬해 정규시즌에서 3점대 방어율이라는 호성적을 올렸지만, 시즌 중 현역으로 군에 입대하여 [[1997년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지는 않았다. 이후 [[의가사 제대]]를 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곧바로 마운드로 돌아올 수 없었다. 그 뒤 2000년이 되어 다시 복귀했고, 2001년에는 해태 말기 선발로 출전해서 쏠쏠한 투구를 보여주었지만 6회만 넘어가면 대량 실점을 하여 5이닝 투수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그리고 다시는 선발로 복귀하지 못하면서 2003년 [[평균자책점]] 3.08을 기록한 것을 빼면 말그대로 방화를 즐기던 '''불'''펜 투수였다. 결국 2004 시즌이 끝나고 LG 내야수 [[홍현우]] + 외야수 [[이용규]]의 트레이드 상대가 되어 LG 트윈스로 이적하게 된다. 하지만 LG에서 13경기 16이닝, ERA 3.38로 제법 성적이 올랐다. 그러나 시즌이 끝나고 LG에서 방출되었으며, 같이 LG로 이적한 [[소소경]]도 2005 시즌 후 은퇴했다. 그런데 LG에서 KIA로 간 이용규가 각성하는 바람에, 이 트레이드는 LG가 말 그대로 이용규를 조공한 셈이 되고 말았다. 이용규 대신 남은 [[오태근]]은 망했고, [[이대형]]은 2007 시즌 후 주루는 괜찮지만 타격이 망해버린지라 팬들은 이용규를 보내고 이원식&소소경을 받은 [[이순철]] 전 감독을 더욱 혐오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