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위종 (문단 편집) === 초기 생애 === 1884년 1월 9일 한성부에서 아버지 [[이범진]]과 어머니 [[풍양 조씨]](1855 ~ ?)[* 조병탁(趙秉鐸)의 딸이다.] 사이의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로 '낙동염라'로 통했던 [[흥선대원군]]의 심복 [[이경하]]의 손자이며 아버지는 이경하가 기생 [[첩]]과의 사이에서 얻은 서자 [[이범진]]이었다. 이범진은 왈패 기질이 강한 인물이었는데 오죽하면 [[장안]]에 소문난 주먹패의 두목 민영주와 마주치자 장작개비 하나로 민영주를 두들겨 패 놓았을 정도였다. 젊어서는 경력을 쌓으라는 [[고종(대한제국)|고종]]의 배려로 지방관으로 나가면 [[탐관오리]]로 맹활약했는데 [[황현]]은 <[[매천야록]]>에서 '젖먹이 호랑이'라고 칭했을 정도였다.[* [[매천야록]]에 따르면 기생들을 발가 벗긴 다음에 성적인 놀이를 일삼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범진은 부사로는 임명된 적이 없다. 왈패 기질이나 탐관오리 성향은 있기는 했어도 과장된 소문으로 보인다.] 그랬던 인물이 나라 밖으로 나가고 외교관이 되면서 변했는데 1903년 [[용암포]] 조차 사건 당시에는 러시아 측에 용암포 조차 각서 제출을 거부해서 본국 송환 조치당했을 정도였다. 정가에서 유명한 [[친러]]파였고 억센 기질을 가진 인물이었기 때문에 [[춘생문 사건]]의 주역이었고 결국 [[아관파천]]을 성공시켰다. 이후 법부대신이 되어 [[을미사변]] 수사를 맡았는데 거침없는 수사로 [[일본]]의 기피 대상이 되었으며 일본의 견제가 심해지자 고종에 의해 1896년 주미 공사로 발령받아 [[미국]]으로 떠나게 되었는데 이때 둘째 아들이었던 이위종이 어머니 조씨와 함께 미국으로 동행했다.[* 이범진의 장자이자 이위종의 형인 이기종은 나중에 따로 미국으로 출국했으며 이범진이 러시아로 옮겨간 후 귀국했는데 1907년 헤이그 특사 파견 직후 일제에 체포당해 고문 후유증으로 [[폐인]]이 되었다가 이미 객사했다. 이기종에게는 세 아들이 있으나 [[6.25 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에 모두 [[사망]]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긴 세월 서구 각국을 거쳐 성장하면서 머리가 이미 굳은[* 원래 스스로 무식하다고 인정하던 인물이었다.] 아버지의 부족한 [[외국어]] 능력을 보완해 주는 역할을 했다. 이범진이 미국으로 떠났을 때 이위종의 나이는 10살로 미국에서 4년을 보내고 러시아 공사가 된 이범진을 따라 다시 러시아로 떠났으며 러시아와 [[프랑스]]에서 중등 학교와 초급 장교 과정을 마쳤다. 이후 주러시아 대한제국 [[공사관]]의 3등 참서관으로 아버지를 보좌했는데 그는 여러 [[언어]]에 능통해 7개 외국어가 가능했으며 [[러시아어]], 영어, [[프랑스어]]에 특히 유창했다. 특이하게도 그는 러시아 [[귀족]]의 딸과 [[국제결혼]]을 했고 후일 러시아에 [[귀화]]했다. 이위종은 1905년 옐리자베타 놀켄(Елизавета Валерьяновна Нолькен)과 결혼했는데 그녀의 아버지인 발레리얀 놀켄(Валерьян Карлович Нолькен)은 남작 작위를 가진 [[독일계 러시아인]] 귀족이었을 뿐만 아니라 [[스웨덴]] 주재 러시아 대사를 역임한 외교관 출신이었다.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view.nhn?editNo=15&printCount=&publishDate=1991-12-23&officeId=00032&pageNo=3&printNo=14267&publishType=00010&articleId=&serviceStartYear=1920&serviceEndYear=1999|관련 기사]] 집안에서는 이위종이 공연장에서 옐리자베타 놀켄을 보고 첫눈에 반해 그녀의 오빠와 먼저 친구가 된 뒤 구애 작전을 펼친 것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집안 구전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러시아 정교]]로 개종하고 블라디미르 세르게예비치 리(Владимир Сергеевич Ли)라는 러시아어식 [[이름]]도 받았다고 한다.[* 블라디미르 세르게예비치 이(Владимира Сергеевича И)로도 알려져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