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윤(상) (문단 편집) == 생애 == 유신국(有莘國) 출신의 선비이자 [[요리사]]였다. 어릴 적 부모를 잃고 포인이라는 요리사에게 길러지며 요리와 공부를 배웠다고 한다. 이미 관직에 들어서기 전부터 이름난 선비였으며, 탕왕의 초빙을 세 번이나 받았다고 한다.[* 여기에는 다른 설도 있다. 이윤이 직접 탕왕을 초대하여 직접 요리한 음식을 대접하며 자신을 기용할 것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래서 중국 사상 최초로 이름이 남은 요리사라고 불린다.] 하지만 유신국의 왕이 이윤을 내어주기를 거부했고 탕왕은 번번히 그를 등용하는 데 실패했다. 이에 이윤을 꾀어내기 위해 탕왕은 상나라에 비하면 매우 작은 나라인 유신국에게 혼인동맹을 제안했다. 유신국의 왕은 탕왕의 제안에 감복하여 자신의 딸을 내어주며 이윤을 시종, 즉 전속 요리사로 딸려가게 했다. 이렇게 이윤은 탕왕과 본인이 원하는 대로 상나라에 입조하였고, 탕왕은 이에 파격적으로 곧바로 상(相)에 임명하게 된다. 이후 이윤은 하나라를 무너뜨리기 위한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수차례 하나라에 파견되어 직접 정탐하였고 내부 혼란을 부추기기도 했다. 또한 상나라뿐 아니라 하나라의 다른 속국들까지 상나라에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외교활동을 하기도 했으며, 최종적으로는 군대의 지휘관으로서 결전지의 지리를 미리 탐사하여 이를 전투에 적극 활용함으로써 걸왕을 무찌르고 상나라가 패권을 쥐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당시 사방 70리에 불과했다고 하는 상나라로서는 매우 놀라운 일로 이윤의 역할이 매우 컸다. [[상나라]]의 집권 이후, 외병, 중임 등의 탕왕의 후임 군주들을 재상으로 잘 모셨으나, 탕왕의 손자인 [[태갑]] 때에 이르러 태갑이 부덕한 행동을 보이자 궁궐 내에 별궁을 만들어 태갑을 가두고 3년간 국정을 섭정했다. 이때 태갑을 비판하여 한 말이 '습여성성'(習與性成)이라는 사자성어로, 습관이 쌓이면 성품이 된다는 뜻이다. 이후 태갑이 자신의 부덕을 사과하자 이윤이 권력을 돌려주었다고 한다. 단, 여기에도 이설이 있다. 《[[죽서기년]]》에서는 태갑이 어려 왕권이 약화되자 이윤이 찬탈하여 어린 왕을 폐위시킨 후 별궁에 가두고 자신이 7년 동안 왕 노릇을 했는데, 태갑이 성장한 뒤 궁을 탈출하여 군사를 일으켜 이윤을 죽이고 왕권을 되찾았다고 서술했다. 사실상 권신이 힘이 약한 군주를 쫓아낼 때 대는 핑계에 단골로 나오는 두 사람 중 한명이다.[* 나머지 한명은 [[한나라]]의 [[곽광]].] [[수양대군]]이 [[단종(조선)|단종]]을 쫓아낼 때도 이윤의 고사를 핑계로 대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