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은석(범죄자) (문단 편집) === 부모 === 이은석은 1976년 8월 29일생([age(1976-08-29)]세)으로,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 [[장교]](최종 계급은 [[중령]])[* 원래의 꿈은 [[서울대학교]] 진학이었지만, 입시에 낙방하면서 군인의 길을 갔다고 한다. 참고로 중령이라 국립묘지 안장이 가능한데 실제로 묻혔는지는 불확실하다.] 출신인 아버지와 [[이화여자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출신인 어머니[* 아버지가 어머니보다 10살 연상이었다.] 사이에서 2남 중 차남인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가정은 [[금수저|경제적으로 풍족한 편]]이었고, 이은석 자신도 [[고려대학교]] [[공과대학]] [[산업공학과]]에 진학했으니, 겉보기에는 [[테드 번디|일류 가정환경에 능력까지 출중한 우수생]]이었다. 하지만 부모를 비롯한 이은석의 가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속속들이 썩어있는 상태였다. 아버지 이모 씨는 전형적인 [[군인]], 그것도 [[해병대]] 출신이자 엄격한 원칙주의자였기 때문에 부하 [[장병]]들을 다루는 것처럼 어린 두 아들에게도 군대식 교육을 시켰으며, 자신이 장교로서 자수성가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이 지나치게 강해 자기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성격이었다.[* 물론 자수성가한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자부심이 강한 것 자체는 그렇다고 넘어갈 수 있다. 자수성가는 자기 능력이 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고, 자기 능력에 자부심을 가지는 것은 그것을 너무 남발하지 않은 이상에야 큰 문제는 안 된다. '''문제는 이은석의 아버지가 그것을 너무 남발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여기까지는 그럴 수도 있다고 하더라도, 정작 자신은 가족들에게 무관심하면서[* 군인 시절, 3달 만에 집에 들어오고도 자식들에게 다정한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본척만척 했다고.] 가족들이 자신에게 다정하게 대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용서를 하지 않는 등 굉장히 [[나르시시즘]]적이고 이기적인 경향과 함께 [[결벽증]]도 있는 사람이었다. 비록 해병대 중령 출신으로 군에서는 [[장군]]의 꿈을 이루진 못했으나, 대신 예편 후 꽤 괜찮은 기업의 [[간부]]로 취업해 나쁘지 않은 대우를 받긴 했다. 어머니 황모 씨 또한 [[사이비 종교]]에 지나치게 심취한 데다 자존심이 매우 강한 완벽주의자였으며[* [[http://www.donga.com/docs/magazine/weekly_donga/news296/wd296ee010.html|참조]]. 이 성격 때문에 주위 사람에게 아는 척과 있는 척을 많이 하여서(즉 허영심이 강한 성격) 따돌림을 당했다고 한다.], 히스테릭 증상이 심했다. 특히 아들들에게는 아버지보다도 훨씬 엄격한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켰다. 부부는 연애가 아닌 중매로 만났으며 성격차이에 10살이나 되는 나이차이가 겹쳐 부부 사이는 결혼 초부터 삐걱였다고 한다. 자식들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이미 각방을 쓰고 있었고[* 이 때문에 이은석의 형은 "[[국민학교]] 2학년 시절 친구 집에 놀러가서 친구의 부모님이 한 방을 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기 전까지는 부부가 원래 각방을 쓰는 것인 줄 알았다."라고 증언했다. 형의 친구는 같은 방을 쓰는 부모님을 보고 놀라는 형을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쳐다보았는데, 형은 '''이 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가정이 비정상적인 곳임을 인지'''하게 되었고, 이후 부모의 막장 행동에 대항해 충돌하면서 싸우는 계기가 되었다고.], [[부부싸움]]이라도 했다 하면 한 달 이상 서로 말 한마디도 오가지 않는 일이 예사였다. 겪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부부싸움의 여파가 겨우 며칠만 간다고 해도 집안의 그 쌩한 분위기를 견디기 어려운데, 그 기간이 '''무려 한 달 이상'''이라면 같이 사는 자식들의 심정이 얼마나 불안하고 불편했을지 상상하기도 끔찍하다.[* 게다가 좀 컸을 때야 그러려니 하거나 그냥 무시해 버릴 수 있지만, 어린 시절에는 마음도 여리고 상처받기 훨씬 쉽다.] 게다가 이 부부는 단순히 부부싸움을 자주 하는 정도가 아니라 서로 한 지붕을 이고 살기가 힘들 정도로 사이가 파탄이 난 상태였는데, 1999년 11월에 쓴 황 씨의 수첩에서는 남편에 대해 "저 자는 양의 탈을 쓴 이리이며 [[사탄]]과 친한 자, 악의 업보다."라고 저주한 내용이 나올 정도였다.[*출처 주간동아 2001년 8월 9일호 기사.] 어이없게도 자신이 남편에 대해 기록한 내용은 이은석과 그 형이 보는 자신의 모습이기도 했다. 자식에게는 어머니라는 가면을 쓴 악마이며 망언, 폭언, 폭력과 친한 자였으니... 그리고 악의 업보를 받았다. 당시에 보도되었던 사실에 기초해서 적자면 "이은석의 어머니가 [[대한민국 해병대|해병대]] 장교인 이은석의 아버지와 결혼한 이유는,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나 [[전두환]]의 부인 [[이순자]]처럼 [[영부인]]이 되어 보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라는 증언이 있었다. 당시에는 박정희나 전두환 등의 사례로 인해 군에서의 출세가 곧 민간에서의 출세로 이어지는 시대였기 때문에 아내도 영향을 받은 것이다. 원래는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만큼 최초의 여자 대통령이 되겠다[* [[박근혜]]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2012년까지는 이은석의 부모가 결혼한 뒤로도 시간이 한참 흘러야 했다. 또한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당했기 때문에 남자 대통령 중 또 누군가가 탄핵당하지 않는 이상 여자 대통령이 나오려면 오래 걸릴 듯 하다.]는 원대한 꿈이 있었지만, 시대 상황상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대신 영부인을 꿈꾸는 것으로 선회한 것이다.[*출처 주간동아 2001년 8월 9일호 기사.] 하지만 남편은 한국에서는 [[육방부]]화로 인해 정치적으로 성공하기는 어려운 [[대한민국 해군]] 출신이다. 해병대는 [[5.16 군사정변]]에 동참했던 덕분에 해병대가 박정희 빽으로 잘 나간 적도 있었으나, 1975년에 [[대한민국 해병대사령부]]가 흡수 해체[* 해병대가 해군으로 흡수되었고, 해군에는 보병 병과가 생겨났는데 해군에서 보병이란 바로 해병대였다.]됨과 동시에 좋은 시절도 금방 가며 성공 가능성은 더욱 줄었다. 운 좋게 대령 이상으로 진급해 윗사람 눈에 들어 정계 입문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래 봐야 애초에 [[대한민국 해병대]]는 [[대한민국 해병대사령관|최고로 높은 사람의 계급]]이 [[중장]] 에 불과한 엄청난 핸디캡이 있는 데다, 굳이 육군과 해병대의 차이가 문제가 아니라 이미 계급부터 밀리고 들어갔으므로 [[대한민국 육군|육군]] 출신들을 이길 순 없었다. 결국 기대와는 달리 남편이 장군은커녕 대령도 못 달고 전역하는 바람에 아내는 남편에게는 기대를 끊어버렸고, 그것이 남편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났다. 그 후로 남편에 대해서는 모든 것을 포기한 대신 [[보상심리|'''아들의 출세에 더욱 매달렸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