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이 (문단 편집) == [[일본의 성씨]] == いい, 한자로는 井伊 시조는 1010년 절의 우물에서 ~~버려진~~ 태어났다는 전설을 가진 이이 토모야스. 그래서 성씨에 우물 정(井)자를 쓴다고 전해진다. 그 절의 주지스님이 주워다 길렀다고 한다. 후지와라 토모스케의 [[서양자]]가 되면서 [[후지와라]]씨의 후손을 칭하기도 했다. 이 토모야스의 후손들이 훗날 토토우미국(遠江国)의 이이노야(현 [[시즈오카현]] [[하마마츠시]])지역의 지방 영주가 되었다. 24대 당주 [[이이 나오마사]]가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신하가 되고,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워 그 보상으로 히코네(오늘날의 [[시가현]]) 번주가 되면서, 영지를 옮기고 자손들이 [[히코네 성]]을 쌓고 히코네에서는 유력 가문이 되었다. 에도 막부 시대에는 대대로 명문 가문으로 도쿠가와 쇼군의 가신중에서도 가장 높은 지위인 임시직 다이로(大老)를 4명 배출했다. 그 가운데 가장 유명한 이가 34대 당주 [[이이 나오스케]]. 나오스케의 뒤를 이은 35대 당주 나오노리(直憲)는 1884년 [[화족]]제도가 실시되며 [[백작]]으로 봉해진다. [[1630년]]의 이이 가문의 저택이 무대 배경이 되는 [[하라키리(영화)|하라키리]]라는 영화가 있다. [[도쿠가와]] 가문의 부하로 공을 세운 명문가로 떵떵거리게 잘 살게 된 이이 집안과 [[토요토미]] 가문을 섬기다가 집안이 몰락한 [[후쿠시마 마사노리]] 가문, 그 후쿠시마의 부하 가문이었다가 덩달아 몰락해서 [[로닌]]이 된 집안 가족이 주인공으로 대비를 이룬다. 2019년 기준 일본에서 약 3,500명이 사용중인 성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