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익(실학자) (문단 편집) == 생애 == 재야의 학자로 머무르면서 실용적인 학문을 할 것, 한전론, 호포론, 개병제, [[양반]]의 생업 종사 등을 주장하였다. 이익의 둘째 형인 이잠은 1706년 [[노론]] 대신들이 당시 [[세자]]였던 [[경종(조선)|경종]]에게 이롭지 못할 것이라 [[상소]]를 올렸다가 옥사했던 인물이다. 때문에 동생 이익은 벼슬길이 막히고 말았다. 일부 문벌 가문의 자제들이 쉽게 급제할 수 있는 [[과거 제도]]의 실태를 지적하고 여론과 평판에 의해 인재를 등용하는 공거제를 주장했다.[* 유의해야 할 것은 당시 조선은 두번의 대기근을 통해 제도가 엉망이어서 양반들도 죽어나갔다. 부족한 관료들을 채우기 위해 온갖 부정청탁이 있었다는 것이 씁쓸한 현실.] 또한 과거제도, [[노비]]제도, [[문벌]]제도, 잡술, [[승려]], 게으름을 나라를 좀 먹는 여섯 가지 폐단이라고 주장했으며[* 이익도 양반의 한계인지 노비제도를 개선하는데는 찬성했지만 완전 폐지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검소함을 장려했다. [[허목]]의 학통으로 이잠, [[이서우]]의 문인이며 반계 [[유형원]]을 사숙하였다.[*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는 의미.] 저서는 《[[성호사설]](星湖僿說)》과 《곽우록(藿憂錄)》 등이 있다. 학맥으로는 [[성호학파]] 문서 참조.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