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정석(가수) (문단 편집) == 활동 == 이정석은 학창시절 [[예술고등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멋있어 보여서 [[성악]]을 공부하고자 예고에 지원했는데 떨어졌다. 이후 [[대중음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기타]]를 독학해서 [[대성고등학교(서울)|대성고등학교]] 1학년부터 '남사당'이란 그룹 사운드에서 기타리스트로 활동했다. 고3 때 대학 시험을 본 이후 신촌 라이브 카페 쉘부르에서 노래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때 동기 부여가 되어서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하게 되었다.[*A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130227158700005|이정석, 〈이정석 "강산이 세번 변해도 난 대중가수"〉, 《연합뉴스》, 2013. 2. 27.]])] 피어선신학대(현 [[평택대학교]]) 작곡과 2학년 재학 중에 참가한 1986년 《MBC 대학가요제》에서 본인이 작곡한 〈첫눈이 온다구요〉로 금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았다.[* (출처: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7071000209208010&editNo=2&printCount=1&publishDate=1987-07-10&officeId=00020&pageNo=8&printNo=20236&publishType=00020|하준우, 〈가요계「10代(대)가수 돌풍」 가요계「10代(대)가수 돌풍」〉, 《동아일보》, 1987. 7. 10.]])] 이후 〈사랑하기에〉, 〈사랑의 대화〉, 〈여름날의 추억〉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1980년대 중후반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원조 '꽃[[미남]] [[발라드]]' 가수다.[* (출처: [[http://enews24.tving.com/news/article?nsId=123778|김지연, 〈[인터뷰]'가수27년' 이정석 "원조꽃미남? 시대적 요인덕분"〉, 《enews24》, 2013. 3. 14.]])] 사실 대학가요제 출전 전에 86년 《[[MBC 강변가요제]]》에도 참가했으나 1차 예선에서 떨어졌다. 참가자들이 너무 많아서 심사위원들이 앞부분 4마디만 들었다고 한다. 이정석은 뒷부분에 가서 성량을 들려줘야 하는데 3마디 부르니 됐다고 했다며 뒷이야기를 전했다.[* (출처: [[https://www.mk.co.kr/star/broadcasting-service/view/2020/12/1312250/|양소영, 〈이정석 "강변가요제 탈락 후 대학가요제 재도전해 금상"'〉, 《스타투데이》, 2020. 12. 23.]])] 이정석은 맑고 고운 미성에다가 열정적인 가창력까지 갖추었으며, 그의 반듯한 외모와 수줍은 미소는 특히 소녀팬들에게 인기가 많아 별명이 '황태자'였다.[* (출처: [[http://www.ikoreadail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56798|곽지영, 〈이정석 얽힌 가요계의 전설 다시 재조명 '화제'〉, 《코리아데일리》, 2014. 10. 29.]])] 1987년 데뷔곡 〈사랑하기에〉는 중·고생들 사이에서 주제가처럼 불릴 정도로 인기가 많았으며, 골든디스크 신인상 및 KBS 2TV 《[[가요톱10]]》 골든컵(연속 5주 1위)을 수상했다.[* (출처: [[https://newslibrary.naver.com/viewer/index.nhn?articleId=1988012900239112009&editNo=1&printCount=1&publishDate=1988-01-29&officeId=00023&pageNo=12&printNo=20559&publishType=00010|김형기, 〈2집 준비로 바쁜 가수 李政錫(이정석) "만남-사랑-이별 노래로 엮어"〉, 《조선일보》, 1988. 1. 29.]])] 1988년 2집을 발표한 이정석은 86년 대학가요제 동기인 [[조갑경]]과의 듀엣곡 〈사랑의 대화〉를 부르며 역시 큰 사랑을 받았다.[* 이정석이 조갑경과 듀엣을 하게 된 계기는, 당시 대학가요제에서 조갑경이 수상은 못했지만 노래를 잘해서 기억을 하고 있었고, 이정석이 직접 제안해 함께 〈사랑의 대화〉를 부르게 되었다. (출처: [[https://www.tvreport.co.kr/240174|원숙영, 〈이정석, 조갑경과 듀엣 떠올리며 “지금은 안불러”〉, 《티비리포트》, 2012. 6. 27.]])] 1989년 3집의 〈여름날의 추억〉도 KBS 2TV 《가요톱10》에서 통산 4주 1위를 하며 차트 정상을 차지했다. 〈여름날의 추억〉은 2002년에 [[강타]]가 [[https://youtu.be/Kw3joIMBNL4|리메이크]]하며 다시 화제가 되었다. 그러나 매니저와의 불화, 수년간의 가요계 생활에 회의를 느꼈던[* '''이정석''': "20살에 데뷔해 고생을 모르고 승승장구했다. 매니저와의 불화도 있었지만 내가 너무 세상을 모르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갇혀 사는 것 때문에 탈출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그래서 가수가 아닌 다른 삶을 택했던 것 같다." (출처: [[http://enews24.tving.com/news/article?nsId=123778|김지연, 〈[인터뷰]'가수27년' 이정석 "원조꽃미남? 시대적 요인덕분"〉, 《enews24》, 2013. 03. 14.]])][* '''이정석''': "가수라는 상품으로 대하기보다 인격체로 대해주길 바랐는데, 상품 취급받는 것 같았다. 너무 힘들었다. 제 의견이 수용도 안 되고 지쳐서 쉬고 싶었다" (출처: [[https://www.mk.co.kr/star/broadcasting-service/view/2020/12/1312358/|〈이정석 "1993년 미국行, 매니저와 불화+가수 생활 지쳐"〉, 《스타투데이》, 2020. 12. 23.]])] 그는 1992년 5집을 끝으로 1993년 말 [[뉴욕]]으로 건너가 1998년까지 5년간 미국 생활을 했다.[*A (출처: [[https://www.yna.co.kr/view/AKR20130227158700005|이정석, 〈이정석 "강산이 세번 변해도 난 대중가수"〉, 《연합뉴스》, 2013. 2. 27.]])] [[미국]]에서 음식점, 나이트클럽 운영 등의 사업은 잘 됐지만,[* 유학생을 상대로 하는 가게를 운영하며 유학생과 이야기하고 노래 부르고 즐겁게 보냈는데, IMF가 발생한 이후 유학생들이 짐을 싸서 한국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가게 운영이 어려워졌다고 한다. (출처: [[https://www.mk.co.kr/star/broadcasting-service/view/2020/12/1312358/|〈이정석 "1993년 미국行, 매니저와 불화+가수 생활 지쳐"〉, 《스타투데이》, 2020. 12. 23.]])] 무대가 그리웠던 이정석은 1998년 귀국해 1999년 정규 6집 《이정석 VI》을 발표했다. 하지만 [[아이돌]] 그룹의 등장과 맞물려 예전과 같은 인기를 얻지는 못했다. 이후 [[신촌]]에서 레스토랑을 열어 외식 사업을 했으며, 보컬 트레이닝 강사로 후배 양성에 힘써왔다.[* (출처: [[http://biz.heraldcorp.com/view.php?ud=20130226000091|정진영, 〈“같은 곡도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게 음악”〉, 《헤럴드경제》, 2013. 2. 26.]])] 2007년 10여 곡을 작곡하고 연습도 했지만 조심스러운 마음에 3곡을 담은 싱글 《이정석의 친구야》를 발표했다. 타이틀곡은 〈[[https://youtu.be/4583MK-wUgg|친구야]]〉, 또 다른 버전의 〈[[https://youtu.be/A0XNy2a-USs|친구야 with friends]]〉는 이정석의 오랜 팬이자 후배 3명(성악가 박진형, 가수 차진영, 박경서)이 함께 노래를 불렀다.[* (출처: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7/03/16/2007031600018.html|최승현, 〈음악을 사랑하기에… 이정석이 돌아왔다〉, 《조선일보》, 2007. 3. 16.]])] 그리고 2010년 본인의 곡을 [[커버(음악)|리메이크]]한 싱글 《[[https://youtu.be/bexlbDlG4Jo|첫눈이 온다구요]]》, 2012년 싱글 《...Ing》, 그리고 2013년 싱글 《Love》를 발표했다. 또 꾸준히 콘서트를 열고, 음악 방송에 출연하는 등 음악 활동을 계속 하고 있다. >'''이정석''': "공백기 동안 여러 경험을 하면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건 음악이란 걸 깨달았다. 돌아보니 상도 많이 타고 '첫눈이 온다구요' '사랑하기에' 등의 히트곡이 '100대 애창곡'에 든 건 행운이더라. 그래서 말 그대로 영원히 대중가수이고 싶다. 작은 규모에서라도 콘서트를 열어 팬들과 부대껴보고 내게도 동기 부여를 하고 싶다" >---- >[[https://www.yna.co.kr/view/AKR20130227158700005|이정석, 〈이정석 "강산이 세번 변해도 난 대중가수"〉, 《연합뉴스》, 2013. 2. 27.]]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