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존욱 (문단 편집) ==== 막장 부인 유 황후 및 비참한 최후 ==== 더욱 이존욱을 막장화시켰던 건 유 [[황후]]였다. 그녀 역시 막장으로 살다간 인물로 일생 동안 정말 염치라고는 하나도 없는 [[철면피]]였다. 어릴 때 전란으로 원건풍이라는 자에게 유괴되어 [[능욕]]을 당하며 고생하다가 미색만으로 황궁에 입궐했다. 처음에는 후비였지만 결국 이존욱의 다른 후비들을 제치고 황후가 되었다. 이존욱은 유 황후의 출신이 천하다는 소문을 듣고 끊임없이 놀려댔으며 이걸 확인하기 위해서 유 황후의 아버지라고 [[자칭]]하는 유산인(劉山人)[* 이름이 아니고 '산에 사는 유씨 늙은이'라는 뜻이다.]이라는 [[노인]]을 데리고 오게 했다. 원건풍은 이때 왔는데 원건풍은 분명 이 노인이 유 황후의 아버지가 맞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유 황후는 자신의 신분이 드러날까봐 친아버지가 분명한 그 노인에게 '''"[[패드립|넌 누구야? 우리 아버지는 전란 때 돌아가셨는데 헛소리하지 말고 꺼져]]"'''라는 희대의 [[패드립]]을 날리며 욕설을 마구 퍼붓고 곤장을 쳐서 내쫒게 했다. 유산인은 한숨을 쉬며 떠났으며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 모습을 본 이존욱은 황후의 침소로 갈 때마다 일부러 낡은 옷을 입고 흉내내면서 그 [[패륜]] 행각을 대놓고 조롱하기도 했다. >'''[[부창부수|아비다. 아비가 딸을 보러 왔다!]]''' 그러나 아무리 당시 상황이 난세라 해도 패륜아를 용납할 리는 만무했으니 유 황후는 [[천하의 개쌍놈|천하의 개쌍년]]과 동시에 [[인간말종]]으로 낙인찍혔고 이는 남편 이존욱의 이미지까지 덩달아 실추시켰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수명마저 줄어드는 계기 중 하나가 작용하게 된다. 사실 [[악녀]] 유 황후는 이런 막돼먹은 인성뿐만 아니라 뇌물과 축재를 통해 많은 재산을 불리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했으며 간신 장전인을 양아버지로 삼는 등 패악질로 널리 알려져서 그녀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나 후당에서 [[인플레]]가 일어나 [[임오군란|월급을 못 받은 군인들의]] [[쿠데타]]가 일어나자 유 황후는 '''"[[29만원|나한테는 화장대 하나, 은대야 세 개밖에 없다.]]"'''라며 마지 못해 그것들을 위문품이라고 수만 명이나 되는 병사들에게 나눠주게 했다. 그러자 병사들은 장난 치냐고 하면서 더 빡쳐서 거세게 반발했고 그들의 기세에 겁을 먹은 유황후는 그제서야 많은 재물을 풀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우리 처자는 이미 굶어 죽었는데 이게 뭐가 소용이 있느냐'''며 분노했고 그들은 장종의 양자 [[이사원]]을 옹립하는 동시에 자신들의 한때 주군이었던 이존욱에게로 칼끝을 돌렸다. 이존욱은 이 쿠데타를 스스로 막아내던 도중 날아온 유시(流矢)에 맞아 중상을 입은 채로 궁궐로 후퇴했다. 이렇게 치명상을 입은 이존욱은 ~~[[꿀물]]~~ [[우유]]가 먹고 싶다고[* 이존욱이 굳이 우유를 찾은 이유는 이존욱의 북방민족 출신을 고려할 때, 유목민족의 식문화에 익숙하였기 때문으로 짐작된다.] 유 황후를 찾았으나, 그녀는 그를 환관에게 맡기고 자신은 재물을 바리바리 싸서 어딘가로 [[먹튀]]한 뒤였다. 이존욱은 결국 우유를 먹지 못하고 그렇게 앓다가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이후 이존욱이 총애하던 연극 배우 선우가 사타족의 전통방식대로 이존욱의 시체를 검, 갑옷, 악기 등과 함께 올려놓고 불을 질러 [[화장(장례)|화장]]했다. 이존욱의 유해는 이사원이 즉위한 후 황제의 예로 옹릉에 안장되었다. 하지만 도망친 유 황후 역시 비참한 최후를 피하지 못했다. 유 황후는 어느 암자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어 숨어 살면서 화를 면하려고 했으나, 그를 미워하던 백성들에 의해 발각되어 처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결국 유 황후는 평생동안 더럽게 모은 재물들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비참하게 최후를 마치게 된 셈. 본인의 부정 축재와 남편을 버린 것도 문제였지만 아버지를 매질해 내쫓은 패륜아였기에 보호할 가치를 그 누구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유능한 이존욱이 망한 이유는 기본적으로는 자신의 난행 때문이지만 이런 여자를 황후로 삼은 탓도 있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존욱에게는 일곱 아들들이 있었으나, 아버지처럼 모두 [[요절]]하거나 살해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다만 운좋게 자손들 중 몇몇은 살아남았는지 그의 자손이 [[북송|송나라]] 때에 벼슬을 살았다는 기록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