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종룡 (문단 편집) === 빚이 늘어났던 시기 === 하지만 1997년에 갑작스레 찾아온 [[1997년 외환 위기|IMF 외환위기]]가 닥쳐 오자 사업이 휘청거리기 시작했다. 경기가 안 좋아져서 거래처가 하나 둘씩 끊겼고 어음이 부도나는 경우가 많았다. 매출도 곤두박질쳤다. 그러면서 1억 원의 대출로 시작한 그의 사업 빚은 천정부지로 늘어났다. 시계방은 문을 닫게 되었다. [* 이종룡은 자신이 게으르고 사치스러웠던 탓이라고 자평했다.] 빌려준 돈도 많았는데 상당수 떼이고 말았다. 그는 한 방에 회복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 곳 저 곳에 투자를 하기 시작했지만, 큰 돈을 노리고 투자했던 돈들은 도리어 빚으로 되돌아왔다. 결국 이 씨는 2000년 초에 [[부도]]를 내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처갓집 땅도 다 팔아야 했고 형제들 돈도 가져다 써야 했다. 그래서 최종적으로 남은 빚이 3억 5천만 원이었다. 아내는 [[갑상선암]]으로 투병중이었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그의 아들은 [[재수생]]이었는데 소식을 듣고 충격 받아 [[가출]]했다.[* [[http://woman.donga.com/3/all/12/140761/1|2009년 여성동아]]] 이후 그는 아내와 함께 [[야반도주]] 생활을 지속하며 아내를 차에 태우고 [[부산]]으로, [[부안군]] 변산면 격포리로 가는 등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녔다. 빚쟁이들이 찾아올까 봐 한 곳에 오래 머물 수가 없었다. 고소를 당하기도 했으나 주소지가 불투명한 상태라 기소 중지가 되기도 했고 군산 검문소에 걸려 수갑을 차고 유치장에 끌려가는 경험도 해야만 했다. 끝내 구속 위기에 처한 이 씨는 자신이 이렇게 무너지면 가족을 책임질 사람이 없다는 절박한 심정에 마지막으로 작은 형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4,000만 원을 겨우 받아 합의를 보고 위기를 넘겼다. 어음을 해결하지 못하면 구속을 당하기 때문에, 그 돈과 아파트를 판 돈을 합쳐 어음을 회수했다. 채권자들을 찾아가서 어떻게 해서든 빚을 갚겠다고 약속하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빚에 쫓기면서도 그는 휴대폰 번호를 바꾸지 않았다. 안 그래도 돈 못 받아서 복장이 터지는데 전화까지 안 받으면 채권자들이 얼마나 숨이 넘어가겠냐는 것이다. 그 후 실의에 빠져 1년 가까이 술과 노름으로 세월을 보냈다. 술에 취하지 않으면 잠을 잘 수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