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종형 (문단 편집) === 최후 === 그러나 이종형은 마지막에나마 악행의 죗값을 제대로 치르게 된다. 이종형은 국회의원 임기 중이던 1954년 2월 2일에[* 사족으로 이로부터 약 3개월 뒤에 [[제3대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었다.] [[수원시]]로 [[지프차]]를 타고 가다가 [[교통사고|차가 눈에 미끄러지자]] 차가 뒤집히려 할 때 살아남고자 차에서 뛰어내렸는데 이때 [[천벌|뒤집힌 차가 이종형의 가슴 위로 엎어지게 되었고]] 이종형은 곧장 병원으로 실려갔으나 사고 당일에 사망했다.[* 사실 진짜 악질 중의 악질 친일파들은 마지막에는 어느 정도 대가를 치른 모습을 보여줬다. 일단 [[김덕기]]는 [[6.25 전쟁]] 발발 직전에 산에서 실족사했고 [[김태석]]도 6.25 무렵에 행방불명되었으며 육군 [[중령]]으로 승진하면서 잘 나가는 듯 싶었던 [[노덕술]]마저 밀수에 가담한 것이 발각되어 군에서 파면당하고 내리막길을 걷다가 국회의원 선거 낙선, 불법 [[흥신소]]를 운영하면서 검사를 미행하다가 구속 등으로 굴욕을 당하며 쓸쓸히 사망했고 [[신상묵]]도 불법 벌목 행위에 가담한 것이 발각되어 구속되기도 했다. 심지어 반민특위 해산 후에도 '''반세기 가까이''' 사업가로 잘먹고 잘살던 [[하판락]]마저 말년에 그에게 고문당했던 독립운동가 [[이광우(독립운동가)|이광우]]의 일생을 바친 노력 덕분에 1990년대 말에 모든 악행이 폭로당하고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이러한 그의 악행은 사후인 2002년에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 밀정 부문에 수록되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친일인명사전]]에는 수록되어 있지 않았는데 훗날 [[민족문제연구소]]의 팟캐스트에서 밝혀지길, 밀정이었기 때문에 다른 친일파들에 비해 정보가 부족했고 과거 기록보다 해방 이후의 기록만 남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사료가 부족하여서 명단에 넣지 못했다고 한다.[[https://youtu.be/EPLHo6fS1yA?t=206|영상 참고]]]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