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준경 (문단 편집) == 생애 == 청렴하고 강직한 정치가였다. [[청백리]]로 추앙받았으며 사후에도 청백리로 선정된다. 부인이 마련한 집에서 평생을 살면서 집에 서까래 하나 늘어나지 않았다. 최후에는 영상까지 지내면서 선조를 옹립하고 권력의 최정상에 섰으면서도 변하지 않은 드문 이력의 소유자. 선조 즉위 얼마 후 칠순이 넘었으니 이제 그만하겠다고 치사를 하자 선조가 궤장을 내리고 은퇴를 허락한다. 그러자 그는 사궤장 연회까지 아주 검소하게 치렀다고. 연산군 5년(1499년)에 태어나 중종 때 젊은 시절을 보냈고[* 이때, [[정광필]] 등으로부터 재목이라고 기대를 받았다], 인종 때와 명종 때를 거쳐 선조 5년까지 관직에 있었다. 선조와 일한 건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선조 묘(廟,사당)에 합사된 배향공신이다. 아들 없는 명종의 뒤를 이어 선조가 왕위에 오르는데 지대한 공이 있으며, 깔끔한 일처리로 선조의 부족한 정통성을 훌륭히 메꿔줬기 때문. 명종 대까지 치열한 암투를 벌인 훈구파와의 대결에서 결국 사림파의 승리를 이끌어낸 인물로 선비들의 대선배가 된다. 까칠한 독설가였으나 유머도 있었고, 동시에 경륜과 수완을 겸비한 유능한 정치인으로 인식됐다. 광주 이씨는 조선 전기 가장 열력이 화려하고 그 세를 자랑하는 집안이었는데도, 이준경은 청렴하고 담백하기가 이를 데 없어 더욱 존경을 받았다. 소위 집안의 세를 가지고 세도를 하려 들었던 가문들에게 일침이 될 큰 인물이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