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준경 (문단 편집) === 이황과의 일화 === 성격 자체는 까칠한 독설가였던 모양. 이황을 '산새'[* 퇴계 이황은 수십번 씩이나 낙향과 상경을 반복한 인물이다. 좋든 나쁘든 중앙정계에 남아서 꿋꿋하게 소신을 지켰던 이준경의 관점에서 걸핏하면 사직소를 올리는 퇴계 이황의 스탠스가 탐탁지 않았을 수 있다. 퇴계 이황은 조광조라든지 이준경, 심지어 벼슬을 받고 사직을 하더라도 '단성사직소' 같은 강직한 상소를 올린 조식에 비해서는 정치적으로 굉장히 노회하고 신중한 사람이었다.]에 비유하여 구설에 오른 일도 있었다. 타인에게 굽힘이 없는 성격으로 선인을 좋아하기는 했으나 그렇다고 자신을 낮추지는 않았다고 한다. 후술할 일화에도 이런 성격이 잘 드러난다. >[[조식(조선)|조식(曺植)]]이 임금의 부름을 받고 서울에 들어왔을 때 준경은 옛 친구의 입장에서 서신은 보냈으나 끝내 찾아가 보지 않았다. 조식이 귀향하려 하면서 찾아와 고별하고 말하기를, >“공은 어찌 정승 자리를 가지고 스스로 높이려 하는가?” >하자, 준경이 말하기를, >“조정의 체모를 내가 감히 폄하할 수 없어서이다.” >하였다. 이황(李滉)이 서울에 들어왔을 때 사대부가 아침 저녁으로 그의 문전을 찾아가니, 이황은 한결같이 모두 예로 접대하였다. 최후에 준경을 찾아가 인사하자 준경이 말하기를, >“도성에 들어오신 지 오래되었는데 어찌 이제야 찾아오십니까?” >하니, 이황이 사대부들을 응접하느라 그럴 틈이 없었다고 하자, 준경이 언짢아하며 말하기를, >“지난 기묘년에도 선비의 풍조가 이러하였으나 그 가운데도 염소 몸에 호랑이 껍질을 뒤집어 쓴 자가 있었으므로, 사화가 이로 인하여 일어났습니다. 조정암(趙靜庵)[* 정암 [[조광조]]이다.] 이외에 그 누구도 나는 인정하지 않습니다.” 일단 이 부분은 이황이 무례를 범한 것이 맞다. 상경할때 조정의 영수를 가장 먼저 찾아보는 것은 조선시대에는 당연한 예의였는데, 자기를 찾아오는 선비들을 먼저 대접하고 정작 영의정인 이준경을 나중에 찾아갔으니 앞뒤가 바뀐 처사였다. 하다못해 이준경이 이끄는 정부가 부패했다거나 불의한 정권이었다면 그나마 변명할 여지가 있겠지만, 이준경은 윤원형이 항상 기세가 등등할때도 그에게 부역한 적이 없는 강직한 대신이니 그런 변명도 통하지 않는다. 이준경이 특유의 그 독설로 이황을 디스한 일도 있었지만 이황과의 사이는 그다지 나쁘지 않았던 모양. 이황은 관직을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선조에게 인재를 추천해달라는 말을 듣고 기대승과 함께 이준경을 추천하며 "큰 일을 맡길 수 있으니 신임하되 의심하지 말라"고 했다. 나중에 이황의 제자들이 이준경을 척신들과 같이 행동했다 하여 공격하자 이를 꼬투리 잡아서 윤원형의 잔당들이 그들을 밟아버리려 했으나 오히려 이준경이 그들을 숙청해버리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